조세심판원은 억울한 납세자의 구제를 위해 설치된 행정심판기관이지만 세법을 잘 모르는 납세자 혼자서 심판을 청구하고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심판 청구에서 대리인이 중요한 이유다. 특히 전직 세무관료 출신이 대리인으로 나설 경우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평가다.
10일 비즈니스워치가 조세심판청구 사건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일부 사건들에서는 전직 국세청장과 전직 조세심판원장이 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려 성과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 차바이오, 한상률 전 국세청장 선임
최근 제대혈 불법 사용으로 논란이 된 차바이오는 2014년말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2009년 이후 5년동안 잘못 신고납부한 법인세를 추징당했다. 차바이오는 이에 불복해 2015년 8월 조세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쟁점은 15년 단위로 판매되는 제대혈 보관상품의 보관료를 수익이 발생한 시점에 몰아서 수익으로 인식하느냐 매년 균등하게 나눠서 인식하느냐의 문제였다.
차바이오(차바이오텍)는 대형 종합병원인 차병원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상장사다. 2015년 연매출만 3900억원이 넘었다. 보통 대기업이나 상장사의 경우 로펌이나 회계법인을 심판청구 대리인으로 내세우지만 차바이오의 선택은 달랐다.
차바이오는 세무법인 리앤케이라는 설립된 지 4년밖에 안된 작은 세무법인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국세청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세무법인 리앤케이는 매출 규모도 드러나지 않고 변변한 홈페이지도 없는 작은 세무법인이다.
하지만 차바이오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다. 세무법인 리엔케이는 외형과 달리 국세청 전직 고위관료들이 즐비하게 포진해 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2014년에 회장으로 취임했고 지금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자리를 옮긴 임창규 전 광주지방국세청장을 포함해 신재국 전 중부지방국세청 조사3국장, 김영환 전 역삼세무서장 등이 운영했다. 모두 세무조사분야 경력이 화려한 전관들이다.
결과적으로 차바이오의 선택은 적중했다. 조세심판원은 사건이 접수된 지 10개월도 채 안된 2016년 5월 17일 국세청이 세금을 경정해 돌려줘야 한다고 차바이오의 손을 들어줬다.
# 대우인터, 허종구 전 조세심판원장 선임
지난해 7월에도 흥미로운 심판사건이 등장했다. 지금은 포스코대우로 이름을 바꾼 대우인터내셔널이 세금을 돌려받은 사건인데 대리인이 전직 조세심판원장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이명박 정부 때 해외자원개발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2014년 6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으로부터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았다.
국세청은 당시 대우인터내셔널 해외 현지법인이 거래처에 제공한 커미션 비용을 접대비로 처리하는 등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고 보고 500억원대의 법인세를 추징했다. 접대비는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되지만 리베이트 목적의 커미션은 비용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조세심판 결정문에는 대우인터내셔널이 자원개발 과정에서 현지 대통령 친인척에게 커미션을 뿌린 내용이 포함돼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세금 추징에 불복해 심판청구를 진행했는데 허종구 전 조세심판원장을 대리인으로 선정했다. 조세심판원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옛 재정경제부 산하에서 분리돼 국무총리실 산하 독립기관으로 재탄생했는데 허 전 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초대 조세심판원장이다. 보통 조세심판원장급의 고위직 출신은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에 취업하지만 허 전 원장은 2010년 퇴직 후 개인 세무사 사무실을 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선택 역시 통했다. 조세심판원은 지난해 7월11일 대우인터내셔널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서 법인세액 일부를 돌려주라고 '경정'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