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변호사협회 김현 회장(오른쪽 두번째) 등 변협 임원들이 지난 2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세무사법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변협 |
변호사 자격을 얻으면 세무사 자격도 자동으로 주는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곧 처리될 전망이다.
세무사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1년간 계류중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법사위 장기계류법안의 본회의 상정을 요구하면서 이 법안 역시 이번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대한변호사협회가 반발하고 나섰다. 집행부들이 돌아가며 국회 앞 1인 시위를 벌이는 한편 세무사법 개정안 저지를 위한 대규모 집회도 열겠다고 밝혔다.
변호사들은 개정안이 '국민의 선택권을 박탈'하며 '전문 변호사를 양성하는 로스쿨 제도에 반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여론은 변호사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오히려 '집단 이기주의'나 '기득권의 밥그릇 지키기'로 평가하는 시선이 더 많다.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를 자동으로 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국회는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찾아봤다.
# 변호사와 세무사는 다른 일을 한다
우선 변호사와 세무사는 기본적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변호사도 세무사 자격이 있으니 세무사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법률에서 정한 두 자격사의 업무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세무사법상 세무사의 직무는 납세자의 위임을 받은 세무대리다. 구체적으로는 세금의 신고와 신고를 위한 장부작성을 대행하고, 세무조정계산서 등 서류작성도 하며 납세자의 이의신청이나 조세불복 중 소송 이전의 단계인 심사청구와 심판청구 등을 대리하는 일 등으로 규정돼 있다.
변호사법상 변호사의 직무는 소송에 관한 행위 및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일반 법률사무를 하는 것이라고만 폭 넓게 정의돼 있다. 여기에서의 '일반 법률사무'라는 광범위한 규정에 세무대리가 포함된다는 것이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변호사들이 장부기장이나 세금신고 대리업무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변호사들도 자신의 세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무사를 찾는 것이 현실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있는 것의 차이다.
# 변호사는 세무전문가가 아니다
앞서 세무사법 개정안을 심사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법안심사보고서를 통해 "일부 세무대리의 전문성이 부족한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세무사 및 변호사의 전문성에 대한 국민 신뢰를 훼손시킬 수 있다"며 개정안의 타당함을 인정했다.
기재위가 '일부'라는 표현을 썼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세무대리 전문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
우선 자격시험 과목에서부터 변호사의 세무 전문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세무사 시험은 회계학개론, 재정학, 세법학개론(국세기본법, 국세징수법, 조세범처벌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부가가치세법, 국제조세조정에관한법률) 그리고 상법, 민법, 행정소송법 중 1과목을 선택해서 1차 시험을 치르고 재무회계, 원가관리회계, 세무회계 등 회계학과 세법학으로 다시 2차 시험을 치른다. 모든 시험과목이 세무대리인의 전문성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변호사 시험은 공법(헌법, 행정법), 민사법(민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법(형법, 형사소송법) 그리고 전문법률분야 선택과목(국제법, 국제거래법, 노동법, 조세법, 지적재산권법, 경제법, 환경법)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문 법률분야 선택과목 중 조세법을 선택하는 경우 세무전문성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기본세법(국세기본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부가가치세법)에 내용이 국한돼 있고, 무엇보다 응시자의 조세법 선택률이 저조하다는 점에서 연관성이 떨어진다.
실제 2015년 변호사 시험의 조세법 선택률은 1.9%에 그쳤고, 같은 해 사법고시에서의 조세법 선택비율은 그보다도 낮은 0.5%에 불과했다.
실무교육의 유무도 전문성의 차이를 만든다. 세무사들은 자격시험에 합격한 이후 세무사회에서 6개월 이상의 전문적인 실무교육을 따로 받는 반면 변호사들은 변협이나 그 어디에서도 세무와 관련한 공적인 교육을 받지 않는다.
세무사들의 실무교육은 세무신고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방법에서부터 연말정산, 사업자의 전표관리 등 그야말로 세무현장에서 사용하는 실무 전반에 관한 교육이다. 세무사들조차 이 교육을 이수해야만 기획재정부에 세무사로 등록하고 정식으로 세무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변호사는 이런 실무교육을 받지 않고도 세무사 자격이 자동으로 부여된다.
▲ 그래픽 : 변혜준 기자/jjun009@ |
# 있어도 사용하지 않는 자격증
세무사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는 변호사 전체의 움직임이라기 보다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대한변호사협회(변협)나 지방변호사회 집행부 중심이다. 바꿔 말하면 변호사들의 호응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무사 자격이 없더라도 변호사는 '일반 법률 사무'의 범위에서 세법에 대한 자문과 법률대리를 할 수 있다. 특히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소급입법이 아니어서 기존 변호사들의 세무사 자격은 유지되기 때문에 기존 변호사들에게는 로스쿨 신입 변호사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변협이 입법 저지를 위한 확실한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 로펌 조세전문 변호사는 "변호사들 개개인은 사실 세무사 자격이 있건 없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세무사 자격이 없어도 변호사의 직무 내에서 충분히 세법에 대한 법률자문도 가능하다. 다만 협회는 앞으로 회원이 될 로스쿨 출신들을 신경써야 하니까 보여주기식 대응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일반 변호사들의 공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지만 선거를 통해 자리를 지키는 변협 차원에서는 신경 쓰이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세무사자격 자동부여가 사라질 경우 변리사자격 자동부여에 대한 폐지 움직임도 빨라질 전망이어서 직역을 대표하는 변협에는 부담이 되고 있다.
현행 변리사법도 세무사법과 마찬가지로 변리사시험 합격자와 함께 변호사에도 변리사 자격을 자동으로 주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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