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직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설치되면서 남과 북은 사회문화교류와 철도, 도로, 산림,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는 등 남북 경협의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남북경협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기대와 우려를 함께 나타낸다. 남북경협이 재개되면 우리나라 경제와 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명확하나 퍼주기 논란에 대한 우려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에 대한 대외 투자는 회계 기록의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지난 10월 31일 한국공인회계사회 산하 남북회계협력위원회(지난 7월 발족)는 수개월간의 연구 끝에 이 부분에 대해 나름의 해법과 방향성을 제시했다. 관련기사☞ 북한 회계는 어떤 모습일까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인 북한의 회계는 계획경제 관리와 통제를 위한 도구로서 기능할 뿐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른 경영성과 측정 및 보고, 이해관계자에게 충실한 정보 제공 등의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1990년대에 심각한 경제 위기상황을 거치면서 2002년에 과거와는 다르게 시장경제 체제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7·1 경제관리제도 개선지침을 내렸고, 회계부문에도 경영회계와 종합회계 개념을 도입했다.
또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진·선봉, 황금평 등 여러 경제특구에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회계 관습을 따르도록 방향을 틀었다.
특히 한국기업이 진출했던 개성공단의 경우에는 지난 2005년 남한 주도로 당시의 기업회계기준이 대부분 반영된 개성공업지구회계규정을 제정했는데, 이는 향후에 북한에 국제적 회계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초 모델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밖에도 북한은 여러 학술 논문에서 국제회계기준 이용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발표하고 있음은 물론 싱가포르와 베트남 등 해외에서 회계 관련 교류와 연수를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있다.
남북회계협력위원회에서 중국과 베트남의 회계제도 단계별 발전과 북한의 회계제도 현황을 비교 분석한 결과, 베트남은 중국에 비해 최소 15년 정도 뒤쳐져 있고 북한은 2005년 베트남의 상황보다 낙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남한 회계전문가들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제도 도입과 관련된 시행착오를 줄여나간다면 이러한 시간 차이를 보다 이른 시일내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개발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출발점은 무엇보다도 국제사회에서의 '신뢰'가 기본이 돼야 할 것이며 국제사회로부터의 신뢰는 북한 사회에 대한 정보와 자료 등의 투명성과 정확성이 확보돼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이 신뢰를 얻게 되면 자연스럽게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경제기구에 쉽게 편입될 수 있고, 글로벌 투자자들의 투자도 증대될 것이라는 게 남북회계협력위원회가 그리는 '남북회계협력 그랜드 디자인'의 핵심이다.
'남북회계협력 그랜드 디자인'은 회계제도, 통제(회계감사), 교육제도, 국제교류, 경제특구, 표준화 등 6가지 남북회계협력의 전략적 핵심 의제를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반구축, 경협확대(일부개방), 글로벌화(완전개방) 등 3단계 로드맵으로 이뤄져 있다.
1단계로 정부와 학계가 남북한 회계제도에 대한 연구를 통해 기반을 구축한 후 2단계에선 한국공인회계사의 북한 내 활동과 남북한 회계전공자 교환학생 제도를 추진한다. 전면 개방이 이뤄지는 3단계에서는 남북 공인회계사 교차 응시를 위한 시험제도 개선과 북한 내 거래소 설립 관련 제도구축을 수행하는 로드맵이다.
남북회계협력위원회가 제시한 단계별 로드맵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회계학계와 회계업계는 물론 정부기관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북한의 이해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제 남북회계협력위원회에서 '남북회계협력의 기본방향'을 제시했으니 향후 많은 논의를 통해 보다 정교해지고 실행 가능한 모습으로 발전해나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