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바이오 산업의 인공지능 전환, 이른바 'AX(AI 트랜스포메이션)'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설계, 제조 및 품질관리까지 AI의 활용 범위가 산업 전주기로 넓어지면서다.
하지만 AX 현장에서는 AI 모델의 화려함보다 더 근본적인 과제가 부상하고 있다. 연구실과 임상, 생산 현장에 흩어진 데이터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할 것인가, 그리고 AI가 도출한 결과를 규제기관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다.
다쏘시스템코리아의 조한규, 서웅식 파트너는 비즈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제약바이오 기업의 AX를 단순한 최신 기술 도입이 아니라, '데이터 무결성'과 '글로벌 규제 대응 체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시프트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 기업 다쏘시스템은 신약개발 분야에서 바이오비아(BIOVIA)와 메디데이터(MEDIDATA)를 포함한 강력한 솔루션 포트폴리오를 통해 후보물질 탐색, 연구개발, 임상시험, 생산·제조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AI와 데이터 기반으로 통합 지원하고 있다.
속도전 된 신약개발…AX, 선택 아닌 생존
조한규 다쏘시스템코리아 파트너는 "제약바이오 업계가 AX를 서두르는 이유는 신약개발의 치열한 속도전과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글로벌 규제라는 두 가지 생존 압박 때문"이라며 "블록버스터급 합성신약이 고갈되고 바이오의약품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R&D 난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AI 활용은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의 AI 활용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인실리코메디슨은 AI를 활용해 단 46일 만에 후보물질 설계부터 전임상 진입까지 끝냈고, 한 글로벌 제약사는 메디데이터 솔루션으로 임상 기간을 30~40% 앞당겼다. AX는 선택이 아니라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문제는 AI를 통해 신약개발 속도가 빨라진 만큼 글로벌 규제의 문턱도 함께 높아졌다는 점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글로벌 규제기관들과 협력해 의약품 및 의료기기 개발 전주기에 AI를 접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인 'Good AI Practice(양질의 AI 관리 기준)'를 발표했다. 이제는 단순히 "결과가 좋다"는 데이터만으로는 규제 문턱을 넘을 수 없다는 뜻이다.
조 파트너는 "최신 규제는 AI가 왜 이러한 결과를 도출했는지에 대한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을 과학적 근거로 증명하고, 인간이 최종 검증해 신뢰성을 확보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엄격히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AX를 단순한 기술 도입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흩어진 R&D 데이터, '디지털 실'로 꿰어야
결국 규제기관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전 과정의 데이터 투명성이 확보돼야 하지만, 현재 기업들이 겪는 가장 큰 고민은 부서별로 뿔뿔이 흩어진 파편화된 데이터다.
AI 기반 신약개발 역시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Garbage In, Garbage Out·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동일 화합물을 부서마다 다른 이름으로 기록하거나 핵심 메타데이터를 누락해 AI 학습 자체가 왜곡되는 일이 빈번하다. 파편화된 데이터 '진주'들을 하나의 '실(Thread, 스레드)'로 잘 꿰어야 근사한 진주 목걸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조 파트너는 "연구실부터 공장까지 단절된 '데이터의 섬(Silo)'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는 '디지털 스레드(Digital Thread)'를 구축해야만 AI의 가치를 제대로 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쏘시스템은 디지털랩, 분자 모델링, 전자품질관리(QMS) 등을 아우르는 전주기 통합 플랫폼 'BIOVIA' 포트폴리오를 통해 기업들이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데이터 출처와 추적성을 즉각 증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조 파트너는 "다쏘시스템은 가장 빠른 AI보다 규제 기관의 기준을 충족하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산업용 AI'를 지향한다"며 "실험 자동화부터 품질 문서 작성까지 복잡한 규제를 완벽히 이해한 신뢰성 높은 모델을 제공해 고객사가 안심하고 혁신에 집중하도록 돕는 것이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가상 세계서 먼저…버추얼 트윈이 여는 신약개발
다쏘시스템이 내세우는 차별력은 가상 공간에 현실을 구현하는 '버추얼 트윈(Virtual Twin)' 기술이다. 이는 실제 생물학적 규칙과 물리적 현상이 그대로 작동하는 정밀한 가상 모델로, 실패는 가상 세계에서 미리 겪고 현실에서는 성공만 거둘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서 파트너는 "디지털 트윈이 현재 상태를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면, 버추얼 트윈은 물리학 기반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래 결과를 예측(Projection)하는 단계"라며 차이점을 짚었다. AI 단독 접근이 갖는 '도출 과정의 불투명성'을 물리학적 정밀도로 보완해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과학적 신뢰성을 확보한다는 설명이다.
규제 관점에서도 이는 매우 혁신적인 의미를 갖는다. 실제 환자에게 약을 투여하기 전 가상 환경에서 안전성을 예측하거나, 임상시험에서 대조군 환자 모집 대신 '가상 대조군'을 활용해 윤리적 문제와 시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 파트너는 대표적인 분자 모델링 툴인 '디스커버리 스튜디오(Discovery Studio)'를 예로 들며 "단순히 알려진 데이터베이스 기반의 AI 예측에 의존하지 않고 물리학 기반 시뮬레이션을 함께 제공한다"며 "현장 연구원들이 복잡한 코딩 없이 비주얼 스크립트 언어인 '파이프라인 파일럿(Pipeline Pilot)'을 활용해 전체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가상 데이터와 실제 데이터를 교차 피드백하며 예측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를 임상 솔루션 및 생산 단계의 가상 시운전 등과 연계할 경우, 임상 기관 재설계 편차를 줄이고 공장 시운전 시간을 단축하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K-바이오 AX, 개별 AI 도입 넘어 전주기 연결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우수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나, 생태계적 구조와 현장 수용성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조 파트너는 "국내 제약사나 바이오텍은 R&D부터 생산까지 전주기를 독자적으로 아우르기보다, 임상 초기 단계에서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 수출(라이선스 아웃)하는 전략에 집중하는 구조적 환경에 놓여 있다"며 "상업화나 생산 단계를 직접 겪지 않다 보니, 후보물질 발굴 등 특정 단계의 AI 도입에만 치중할 뿐 R&D 전주기를 아우르는 AI 생태계 구축에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많은 기업이 AI 기술을 개별적으로 도입하고 있지만, 이를 전주기로 연결하는 데는 여전히 미흡하다. 물질 탐색 AI, 임상 설계 AI 등 각기 다른 솔루션을 파편적으로 도입하다 보니, 결국 기술 간의 단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조 파트너는 "특정 단계의 AI 모델 하나에 의존하기보다 데이터가 끊김 없이 흐르는 전주기 인프라 구축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도입 못지않게 현장 연구원들의 심리적 장벽을 해소하는 '변화 관리'도 핵심 변수다. 서 파트너는 "연구원들 입장에서는 데이터 표준화로 인해 자신만의 실험 노하우가 시스템에 귀속되거나 일자리가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며 "조직 내에 디지털 문화를 자연스럽게 안착시키는 노력이 병행돼야 AX가 형식에 그치지 않는다"고 제언했다.
다쏘시스템은 국내 AX 확산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인력난과 비용 부담으로 디지털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국내 초기 바이오텍을 위한 실질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고도화된 AI·시뮬레이션 솔루션을 도입하더라도 이를 운용할 전문 분자 모델링 인력과 데이터 분석 역량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현장의 한계를 겨냥한 전략이다.
조 파트너는 "다쏘시스템은 소프트웨어 제공을 넘어 본사 소속 전문가들이 직접 바이오텍의 연구 워크플로를 이해하고, 단기간 내 고품질의 결과값을 도출하는 공동 연구 및 계약 연구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초기 바이오텍이 겪는 전문 인력 공백과 연구개발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 신약개발의 경쟁력은 더 빠른 AI 모델을 보유했는지가 아니라, AI가 도출한 결과를 얼마나 안전하고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조 파트너는 "다쏘시스템이 생명과학 분야에서 추구하는 방향은 사람의 목숨과 직결된 규제 환경에서 가장 안전하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산업용 AI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K-바이오의 AX 성패 역시 알고리즘 자체를 넘어, 규제기관을 설득할 수 있는 '연결된 데이터 생태계'를 얼마나 튼튼하게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