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10여 년 전만 해도 온라인 쇼핑(이커머스)으로 상품을 주문하면 2~3일이 걸리는 게 당연했습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주문한 물건은 택배가 오지 않는 주말을 거쳐 4~5일이 걸리기도 했죠. 이 때문에 급하게 사용해야 하는 물건이나 금세 상하는 신선식품을 온라인 쇼핑으로 주문하는 건 도박에 가까웠습니다.
지금의 풍경은 천지개벽에 가깝습니다. 어느 이커머스에서 주문을 해도 주문 다음 날 받아볼 수 있는 게 '기본'입니다. 오전에 주문한 제품이 오늘 저녁에 오기도 하고, 저녁 즈음 주문한 제품을 채 잠이 들기 전에 받아볼 때도 있죠. 쿠팡이 '로켓배송'을 앞세워 당일배송과 익일배송, 새벽배송을 구현한 뒤 업계에 벌어진 일입니다.
로켓배송이 등장한 지 10여 년. 이제 새벽배송은 쿠팡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컬리나 오아시스 등 신선식품 전문 이커머스는 물론 SSG닷컴 등 대형 플랫폼들도 새벽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택배업계 1위인 CJ대한통운도 새벽배송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죠. 이쯤되면 과장을 섞어서 새벽배송을 하는 곳이 하지 않는 곳보다 많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든 새벽배송이 최근 논란입니다. 새벽배송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겁니다. 지난달 22일 열린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 회의에서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조가 '자정~5시까지의 초심야시간 배송을 제한하고 오전 5시 출근조가 새벽배송 물품을 배송하자는 안을 내놨는데, 이게 '새벽배송 금지'라는 워딩으로 퍼지면서입니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 등은 불타올랐습니다. 막상 새벽배송을 하는 기사들은 업무 효율이 좋고 급여도 높아 만족하는데 왜 일을 못 하게 하냐는 비판도, 새벽 시간대에 업무량이 과도하면 사고 위험이 높다는 우려도 나왔죠. 모두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은 새벽배송인데,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벽배송, 삶의 혁신일까요 노동자를 갈아넣는 악습일까요.
동전의 양면
'새벽배송 금지 추진' 보도가 나오고 타깃이 된 건 물론 쿠팡입니다. 쿠팡 로고가 새겨진 택배 차량은 새벽배송의 상징입니다. 실제로 새벽배송을 수행하는 쿠팡 택배 기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2만명에 달하는 쿠팡 위탁 택배기사들로 구성된 '쿠팡파트너스연합회'는 자체 조사 결과 93%의 기사가 새벽 배송 제한에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6500여 명이 소속된 쿠팡 정규직 택배 기사로 이뤄진 쿠팡 노조 역시 "민주노총을 탈퇴한 쿠팡 노조에 대한 보복"이라며 반발 중입니다.
'새벽배송 존치'를 주장하는 측은 새벽배송의 업무 강도가 높은 건 맞지만 그만큼 수입 역시 높다는 걸 강조합니다. 본인의 판단으로 수익성이 높은 일을 선택했는데 이를 막을 수 있냐는 겁니다. 일견 일리가 있습니다. 위험도가 높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면 새벽 운전보다 위험한 일들은 누구도 해선 안 되겠죠. 진짜 새벽배송 인력의 건강을 걱정했다면 '새벽배송 금지'가 아니라 '업무환경 개선'을 주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오히려 새벽배송이 더 편하고 안전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새벽 시간대엔 차량과 보행자가 많지 않아 빠르게 더 많은 배송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아파트 등 엘레베이터를 이용해 배송을 하는 경우 낮 시간대엔 주민들과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만 새벽 시간엔 자유롭게 엘레베이터를 활용할 수 있죠.
새벽배송 금지 혹은 제한을 주장하는 측의 논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새벽배송 중 졸음운전이나 과로로 사고가 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당장 지난 10일에도 제주에서 쿠팡 새벽배송 노동자가 차량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학영 국회부의장이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연구용역 자료에 따르면 2019~2023년까지 새벽배송 중 발생한 사망 사고는 8건이었습니다. 2019년 10명이었던 재해자 수는 2023년 151명으로 늘었습니다. 위험한 게 뻔한 데 개인의 선택이니 놔두라는 건 정부의 역할을 잊은 주장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한 발 물러서면 해답이 보입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일을 하고 온 직장인 A씨가 퇴근 후에 또 새벽배송을 나가는 걸 찬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1년 365일을 쉬는 날 없이 배송하길 바라는 사람도 없겠죠. 새벽배송 소비자 대부분은 다른 순간엔 노동자일 테니까요. 새벽 5시까지 배송을 중단하자는 주장 대신 노동권과 휴식권, 행복추구권이 조화된 근무 환경을 조성하자는 주장을 내놨다면 지금같은 분위기였을까요?
새벽배송을 금지하자는 측이 '새벽 근무 자체가 악'이라고 주장하려는 건 아닐 겁니다. 현대사회는 해가 진다고 멈추는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잠을 자는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가장 열심히 일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뤄야 하는 건, '새벽배송 금지'가 아닌 '건강한 새벽배송'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