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가 청산 기로에 놓였다.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로 거론된 '긴급운영자금대출(DIP) 수혈' 가능성이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이다. 회생계획안 가결 시한이 열흘가량 남은 상황에서 2000억원의 추가적인 DIP 자금 확보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홈플러스는 파산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첨예한 줄다리기
홈플러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은 지난 17일 홈플러스 DIP 파이낸싱과 관련한 최종 제안 공문을 통해 "19일 오전까지 1000억원을 에스크로(조건부 예치) 계좌에 예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나머지 부족분은 MBK파트너스나 지정회사가 직접 추가로 조달할 것을 제안했다. 메리츠의 대출 조건은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연대보증을 전제로 했다.
업계에선 이 같은 메리츠의 제안을 두고 대주주와의 책임을 분담하겠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회생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금융기관이 긴급 운영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추가 손실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회생을 돕겠다는 의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연대보증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도 대주주의 회생 의지를 실질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평가다.
반면 MBK는 현실적인 자금 동원 여력의 한계를 내세우며 추가적인 책임 부담에는 선을 긋고 있다. 앞서 김 회장은 지난 3월 자택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4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바 있다. MBK 법인 차원에서도 기존 증권사 대출에 대한 연대보증과 외부 차입을 통해 운영자금을 마련하는 등 대주주로서 아낌없는 지원을 이어왔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런 지원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홈플러스는 최근 영업을 잠정 중단한 37개 점포를 폐점하기로 결정했다. 익스프레스를 제외한 대형마트와 온라인, 본사 등 잔존 사업부문을 통째로 매각하는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염두에 둔 사전 정비 작업이다. 부실 점포를 정리하는 대신 핵심 점포에 상품을 집중 배치해 인수자의 재무 부담을 낮추고 매각 매력도를 높이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홈플러스가 운영 정상화에 투입할 수 있는 돈은 여전히 '제로(0)'다. 홈플러스는 이날 하림그룹 계열사 NS홈쇼핑으로부터 익스프레스 매각대금 1206억원을 받았다. 이 매각대금은 그동안 연체된 협력사 물품 대금과 직원 급여 등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있어도 없는 돈'과 다름없는 만큼 추가 자금 조달 외에는 파산을 막을 만한 마땅한 대안책이 없는 셈이다.책임은 누가 지나
이 때문에 업계 안팎에선 'MBK의 책임론'이 불거지는 중이다. 수익을 기대하고 경영권을 인수한 만큼 투자 실패에 따른 책임 역시 감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특히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라면 이해관계자에게 희생을 요구하기에 앞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400억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보증과 대출로 이뤄져 자본 출연으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현재의 위기 역시 대주주의 경영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홈플러스 인수 이후 경영 전략과 재무 구조, 점포 자산 활용, 투자 방향 등 주요 의사결정은 사실상 대주주의 영향권 아래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홈플러스가 처한 상황들을 단순히 유통업 환경 악화나 내수 소비 둔화 등 외부적인 요인만으로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MBK는 지난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7조2000억원 중 상당 부분을 차입으로 조달했다. 이후 2024년까지 점포와 물류센터 28곳을 매각해 4조원이 넘는 자금을 확보했다. 그러나 매각한 자산을 재임차해 영업하는 이른바 '세일 앤드 리스 백' 전략을 구사한 탓에 같은 기간 리스부채는 3조8000억원까지 불었다. 차입금을 줄인 대신 임차료 부담이 커지는 구조가 고착화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부산 해운대점, 경기 안산점 등 이른바 '알짜 점포'를 매각하면서 안정적인 매출 기반마저 흔들렸다는 분석이다. 우량 점포는 부동산 가치와 매각 가격 측면에서의 메리트가 높아 투자자 입장에선 매력적인 현금화 수단으로 꼽힌다. 다만 '규모의 경제'가 곧 경쟁력인 대형마트 사업에서는 점포 수가 줄어들 수록 매출은 물론 수익성 모두 축소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업계에서는 MBK가 홈플러스 생사를 결정할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보고 있다. 메리츠 역시 이날 입장문을 통해 "홈플러스 위기는 지난 10년간 MBK가 투자금 회수에만 집중한 경영의 결과"라며 "MBK는 최대주주이자 경영 책임자로서 투자수익 회수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홈플러스 정상화와 회생을 위해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회생에 필요한 유동성이 확보된다면 상품 공급 정상화, 매출 회복, 영업 안정화를 통해 충분히 정상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며 "임직원들은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고, 협력업체와 납품업체 역시 홈플러스의 정상화를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