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모든 포장재를 100%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소재로 바꾸는 '올 페이퍼 챌린지'에 나섰던 컬리가 6년여 만에 고집을 꺾었다. 올해 들어 택배 상자에 사용하던 박스 테이프를 종이 테이프 대신 플라스틱 테이프(OPP 테이프)로 교체하고 있다. 배송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라는 설명이지만 이면에는 수익성 개선을 위한 비용 절감 목적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꿈은 컸는데
지난 2019년 9월. 김슬아 컬리(당시 마켓컬리) 대표는 새로운 도전을 천명했다. 지구를 위해 모든 포장박스를 친환경·재활용 가능 소재로 교체하는 '올 페이퍼 챌린지'다. 일반적으로 쓰이던 플라스틱 테이프를 전량 종이 테이프로 바꾸고 공기를 넣은 비닐 완충재도 종이 완충재로 교체했다. 아이스팩도 100% 물만 사용한 '워터팩'으로 바꿨다.
당시는 쿠팡과 컬리를 시작으로 새벽배송과 익일배송 서비스가 시장에 확산하기 시작하던 시점이다. '빠른 배송' 서비스는 필연적으로 물동량의 증가를 가져온다. 이전에 여러 물품을 모아서 주문하던 소비 습관이 빠른 배송에 따라 적은 양을 여러 번 주문하는 방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택배의 시대'가 열리면서 과도한 박스 사용에 대한 경각심도 커졌다. 플라스틱 테이프, 완충재, 아이스팩 등 한 번 사용되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이 화두로 떠올랐다. 컬리는 이 지점을 노렸다. '올 페이퍼 챌린지'를 통해 새벽배송도 친환경적일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새벽배송을 메인 콘텐츠로 내세우면서 착한 기업 이미지까지 가져가겠다는 전략이었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당시 컬리는 매출 4200억원에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던 창립 5년차의 신생 스타트업이었다.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올 페이퍼' 전환은 부담이다. 그런 만큼 김슬아와 컬리의 도전은 도덕적 소비에 관심이 높은 컬리의 주 고객층 3040을 매료시켰다. '컬리는 다르다'는 평판이 따라왔다. 2020년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컬리의 '친환경 행보'를 더 돋보이게 했다.
김 대표의 '올 페이퍼 챌린지' 선언으로부터 6년이 지난 2026년 봄. 컬리의 배송 박스엔 다시 플라스틱 테이프가 붙기 시작했다. 일부 제품에는 비닐 포장까지 사용됐다. 6년 전의 화려한 도전 선언과는 다른 조용한 변화였다.
현실은 가시밭길
사실 컬리의 '올 페이퍼 챌린지'를 모두가 반긴 건 아니다. 특히 컬리 배송 기사들 사이에선 종이 테이프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냉장·냉동 제품을 배송할 때나 장마철에는 박스가 젖기 십상인데 종이 테이프가 함께 젖어 찢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접착력도 문제였다. 무거운 제품이 들어 있을 경우 종이 테이프가 견디지 못하기도 했다.
이에 '올 페이퍼 챌린지'가 한창일 때도 배송 기사들은 따로 플라스틱 테이프를 이용해 박스를 다시 한 번 감싸 배송하기도 했다. 냉장·냉동·상온 제품을 각기 포장하는 컬리의 특성상 한 번의 배송에 여러 박스가 사용될 때는 플라스틱 테이프로 동여매는 방식도 종종 사용됐다. 현장에서만큼은 '올 페이퍼'가 이뤄지지 못했던 셈이다.
실제로 컬리 측은 "배송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플라스틱 테이프를 다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접착력이 떨어지는 종이 테이프로 인해 배송 기사들과 소비자에게서 종종 불만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하필 최근부터 컬리가 플라스틱 테이프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이런 이유만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종이 테이프는 플라스틱 테이프보다 비싸다. 시중에서 종이 박스테이프는 40m 기준 2000~3000원 꼴이다.
반면 일반 플라스틱 박스테이프 40m 제품이 개당 1000원 이하다. 저렴한 제품은 400~500원대에도 구매할 수 있다. 연간 수십만개 이상의 박스테이프를 사용하는 컬리가 모든 테이프를 플라스틱 테이프로 교체하면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마침 컬리는 지난해 창립 이후 첫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올해 역시 흑자 유지가 목표다. 컬리의 사업이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이라는 점을 확인한 뒤 다시 상장에 나서야 한다. '올 페이퍼' 챌린지는 이미지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만 수익 개선엔 도움이 되지 않는, 그리고 배송 기사들에겐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계륵'이었다. 결국 '친환경'이라는 상징성과 '효율·비용감축'이라는 실리 중 실리를 택한 셈이다.
다만 컬리가 '친환경'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다. 2021년부터 다회용 택배박스인 '퍼플박스'를 내놔 이용자를 늘리고 있다. 쿠팡의 프레시백과 비슷하지만 배송 기사가 아닌 소비자가 관리하는 방식이다. 주문 뒤 '퍼플박스'를 내놓으면 배송 기사가 그 안에 상품을 담는 방식이다. 쿠팡의 프레시백 방식이 배송 기사에게 과도한 노동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정책은 필연적으로 비용 증가를 불러온다"며 "최근 컬리가 수익성 중심 경영을 강화하면서 효율을 선택하는 기조를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