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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정책+]매년 1조 적자 자동차보험②주범은 '나이롱 환자'

  • 2021.02.09(화) 17:06

보험료 인상 악순환…"과실 반영해 치료비 지급해야"
진단서 의무화 등 보완책 필요…사회적합의 필요성도

코로나19로 자동차 운행량이 줄면서 지난해 일평균 사고건수가 예년대비 8% 이상 줄었다. 하지만 지급된 보험금은 오히려 크게 늘었다. 대인보험금이 매년 10% 이상 증가하며 전체적인 보험금지급 규모를 끌어올리고 있어서다.

자동차보험 사고당 평균보험금 추이

2019년 사고건당 평균 대인보험금 지급액은 270만원으로 전년대비 25만원, 10.2% 증가한데 이어 2020년에는 전년대비 29만원, 10.7% 증가한 299만원을 기록했다.

자동차보험 사고 건당 손해액 추이 대인

장기적으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15년 3조685억원 수준이던 대인보험금은 2019년 4조1859억원으로 1조1174억원, 36.4% 증가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1~11급 중상해 지급보험금이 1조3190억원에서 1조3995억원으로 6.1% 증가한데 반해 12~14급 경상해 지급보험금은 1조7495억원에서 2조7864억원으로 59.3% 증가했다. 증가한 보험금 대부분이 경상해에 지급된 셈이다.

자동차보험 상해급별 지급 보험금 변화

대인배상 보험금은 교통사고 시 상대방의 치료비를 보장하는 담보다. 필요에 의해 보험금이 지급되고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보험금 '누수(漏水)'다. 수리비가 50만원 미만인 초경미사고인데도 고액의 합의금을 목적으로 수개월간 입원과 통원을 반복하는 '나이롱 환자' 같은 도덕적해이가 극소수가 아닌 다수로 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도 다 하는데…', '못 받으면 바보'라는 인식들로 인해 자동차보험 적자가 매년 1조원을 넘나드는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보험사가 매년 수천억원의 수익을 내는데 어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100%가 넘는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결국 자동차보험 가입자에게 귀속된다. 손해율에 따른 손실이 자동차보험료 인상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관련기사 ☞[보험정책+]매년 1조적자 자동차보험①올해는 바뀔까)

누군가 대수롭지 않게 공돈 먹듯 가져간 보험금을 내 주머니에서 채워야 하는 셈이다. 실제 가벼운 접촉사고에 상대 과실이 90% 이상인데도 상대 운전자가 병원치료를 오래 받아 과도한 보험금이 지급돼 보험료 할증을 우려하는 민원도 최근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자동차보험료는 대다수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부가 인상률을 일부 억제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매년 손실이 누적되는데다 대인보험금 지급이 빠른 속도로 늘면서 그동안 억눌러온 것들이 한꺼번에 터질 경우 보험료 인상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 12~14급 경상환자에 과실비율 적용 추진

보험업계는 코로나19가 진정국면으로 돌아서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토교통부가 보험업계와 함께 경미사고 보험금 누수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들을 고심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핵심사안 중 하나는 '12~14급 경상환자의 치료비에 과실비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자동차보험은 사고의 과오를 따져 자기과실 비율을 설정하는데 경미사고 치료비에도 이를 적용해 치료의 계속 여부를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대인배상Ⅰ은 자동차사고로 타인을 사망하게 하거나 상해를 일으켰을 경우 최소한의 보상이 가능하도록 가입을 강제한 것으로 보상한도는 사망 시 최고 1억5000만원, 부상 시 상해급수별로 3000만원까지 보상한다(후유·장애 시 후유장애 등급별 보상한도 내에서 보상). 상해급수별로 보상한도가 달리 적용되기 때문에 대인배상Ⅰ만으로 치료비가 부족한 경우를 대비해 대부분 대인배상Ⅱ를 통해 거의 무한대로 치료비를 보장받을 수 있다.

상해급수 12~14급은 단순 타박상이나 손가락·발가락·척추 염좌가 대부분이며 3cm 미만 안면부 열상 등 수술을 시행하지 않는 상해를 포함해 보통 경상해로 치부된다. 하지만 현재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하 자배법)상 100대 0의 일방과실 사고가 아니라면 90% 과실을 저지른 가해자도 피해자의 보험사로부터 치료비 전액을 받을 수 있다.

당국과 업계는 제도적 허점을 악용하거나 오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법적으로 보호되는 책임보험인 대인배상Ⅰ은 보장하되 이를 넘어서는 대인배상Ⅱ에 한해 자기 과실을 반영하는 것을 추진할 방침이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상 상해급수 및 한도금액

과실비율을 적용하면 5:5 과실 사고에서 단순 타박상으로 14급을 받은 경상환자는 상대방보험에서 50만원까지 치료비를 보상받고 이를 초과해 50만원이 더 나왔다면 이중 25만원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여러 방안 중 경상환자의 과잉진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료비에 과실비율을 적용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 중에 있다"며 "높은 합의금을 받기 위해 필요 이상의 치료를 받는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박사는 "제도적 허점으로 작용하는 가장 큰 문제는 교통사고 환자는 진단서 등 객관적인 근거 없이 주관적 통증호소 만으로 장기간 치료비 전액을 보상받을 수 있는 점"이라며 "치료비 일부를 부담해야한다는 점에서 과도하고 불필요한 치료 유인을 억제하는 효과가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실에 따른 자기부담이 적용된다고 해서 보상을 아예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가입한 '자기신체사고'나 '자동차상해' 담보를 통해 자동차보험에서 보장을 받을 수 있고 추가 치료 시 실손보험을 통해 보상받는 것도 가능하다.

전 박사는 "과실비율 적용을 통해 과잉진료가 줄어들게 되면 그동안 불필요하게 지불해온 경상환자 과잉 치료비 규모를 좀 더 정확히 추정할 수 있다"라며 "이에 따라 경미사고 환자에 대한 적정한 치료비, 치료방법, 치료기간 등의 기준 근거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진단서 등 객관적 근거 있어야

당국과 보험업계는 경상환자 과실비율 적용 이외에도 ▲통상 진료기간을 넘어설 경우 진단서 제출 의무화 ▲경미사고 표준 치료 가이드라인(기준) 마련도 함께 논의하고 있다.

객관적인 근거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점이 대인배상 보험금이 늘어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인 만큼 치료방법과 기간의 적정성을 따져볼 수 있는 근거로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그동안의 경미사고 분석을 통해 경과 기간별 지급액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보험업계에서는 경미사고 유형별 충격량에 따른 상해위험 분석도 추진한다. 보험개발원이 실제 탑승자 추돌시험을 통해 과속방지턱이나 포트홀, 급가속 등 일상생활 충격과 경미사고 유형별 충격량을 분석한다. 의사의 진단과 더불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들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보험개발원은 연간 약 200건의 탑승자 상해위험을 분석해 상해위험 분석 보고서를 제공하고 매해 이를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경미사고에 대한 표준 치료 가이드'에 대한 공론화도 추진한다. 주요국의 경상환자 과잉진료 대응 사례를 참고해 자동차보험 경상환자 과잉진료비 규모를 추정하고 의료기관별 평균진료비, 입원률, 진료기간 등 과잉진료 관리지표를 만들어 적정한 기준을 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 전세계적 문제…제도개선 필요성 대두 

경·요추 염좌 진료비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 비교

자동차보험이 유독 과잉진료에 민감한 건 건강보험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똑같은 경추부염좌에 대한 치료비로 건강보험에서는 1인당 진료비가 7만563원인데 반해 자동차보험에서는 33만6049원으로 나타났다. 자동차보험이 4.8배 더 높다. 요추부염좌의 경우도 건보에서 1인당 진료비가 7만7378원인데 반해 자동차보험은 이보다 4.3배 높은 33만5178원을 기록했다.

경상환자 과잉진료비 문제는 이미 전세계적인 문제로 많은 국가에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목·등·어깨의 연조직 상해 시 의사의 진단서 발급을 의무화 하고 ▲진단서에 따른 치료기간 한정 ▲경미상해의 지속기간별로 위자료(합의금) 정액화 ▲진단서 없는 합의관행 철폐 등의 제도개선을 오는 4월부터 실시한다.

미국, 영국과 일본은 피해자의 진단서, 치료계획서, 합의 시 상해 회복 여부 확인 등 객관적인 근거를 통해 보상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스페인은 경상환자가 MRI 등 의학적 도구를 통해 상해가 있음을 증명해야 보상하도록 보상 기준을 강화했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과잉청구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영국은 제도개선을 통해 매년 약 11억파운드, 우리돈 1조6000억원 가량의 보험금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영국식 제도 도입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외에도 건보와 자보의 진료수가 일원화, 적정한 자보 진료수가 마련을 위한 정책심의회 신설, 자보 원가지수 개발 등도 검토하는 과제다.

물론 의료계의 진단서 교부 지침에 따른 치료 기간과 실제 치료기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치료방법도 달라질 수 있어 이를 일괄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또한 환자의 치료권이나 의사의 재량권 침해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시민사회와 의료계 등 이해관계자가 많은 만큼 충분한 사회적 합의도 이뤄져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쉽지 않은 길이고 사회적인 합의와 논의, 공감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라면서도 "일부의 과잉진료 문제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대다수 자동차보험 가입자가 지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 편에서는 남은 과제와 제도 추진의 애로점 등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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