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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노조 추천 사외이사, 노동가치 높일 것"

  • 2022.03.04(금) 16:45

수출입은행 노조 집행부 인터뷰
"수은의 보증 확대, 수출 경쟁력 높인다"
"금융허브 위해서라도 지방 이전은 반대"

수출입은행 직원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 집행부가 최근 새로 꾸려졌다. 은행권 최초로 노조추천 사외이사제를 도입하는 등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수출입은행 노조이지만 과제도 산적하다. 이들이 생각하는 수출입은행이 나아가야 할 길과 노동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편집자]

지난 2월초, 한국수출입은행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 자체 개발 무기인 K9 자주포를 이집트에 수출했는데, 수출입은행이 이집트에 대출을 해줬다는 부분에서 논란이 발생한 탓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집트 순방길에서 나온 성과라 정치적 관심사도 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논란거리가 아니다. 외국 정부나 기업이 사업을 발주할 때 통상 파이낸싱(금융지원)을 요구하고, 수주에 참여하는 국내 기업들은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도움을 요청한다.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 수주에 참여하는 대다수 국가가 금융지원을 통해 자국 기업들의 수주를 돕는다. K9 수출 과정에서 전체 계약 규모의 80%를 이집트에 대출하기로 한 수출입은행도 마찬가지다. 금융지원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수주를 돕고 수주 경쟁력을 높이는 것, 수출입은행 존재 이유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역할. 수출입은행의 이런 노력을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은행권 처음으로 노동조합 추천 사외이사제 도입에 성공한 수출입은행 노조 집행부의 고민 역시 '수은의 역할을 어떻게 확대해 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맞닿아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노동조합 집행부

'노조 추천 사외이사' 첫 도입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수출입은행 노조가 추천한 이재민 해양금융연구소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국책은행을 비롯해 국내 은행 중에선 처음이다.

어떤 일이든 첫 깃발을 꽂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보수적인 기조가 강한 금융권이라면 더 그렇다. 수출입은행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도 그랬다. 정부 기관은 물론 국회를 찾아 설득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당(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찾아가 1인 시위를 시도하기도 했다. 국내 은행 최초로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은 노조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박요한 수출입은행 노동조합 위원장

박요한 수출입은행 노조위원장은 "노조 추천 이사라고 하면 노동계 인사만을 생각할 수 있는데 수출입은행은 국책은행인 만큼 공공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며 "수출입은행 내부를 이해하고 발전했던 역할을 맡았던 것은 물론 공공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인물을 추천했던 게 선임의 가장 중요한 열쇠였다"라고 말했다.

새 집행부는 이재민 사외이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손발을 맞춰야 한다. 우선 사내근로복지기금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박요한 위원장은 "수출입은행은 공공기관인 만큼 노조가 임금인상 등 조합원들 요구가 가장 큰 부분에선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돼 있다"며 "공공기관 임금인상률은 기획재정부가 배정한 예산내에서 공무원 수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률 등도 기재부에서 정해져 내려오는데 이번 이사회에선 의사록을 남기려고 한다"며 "사내복지기금 출연은 법에서 보장된 것임에도 지침에 따라 기관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노동단체 교섭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요한 위원장은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을 위해 달리고 있는 다른 은행 노조들에게도 힘을 보탰다. 최근 IBK기업은행과 KB금융 노조가 사외이사를 추천, 선임을 추진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기업은 자본 투입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구성원 주체로 노동을 공여해서 운영되고, 노조 추천 사외이사제는 노동자 목소리를 담는 도구로써 바람직하다"며 "이사 한 명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들이 이사회에서 반대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다른 사외이사를 설득하는 등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 추천 사외이사제로 전문성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노동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외 채무보증 확대, 수주 경쟁력 높일 것"

최근 수출입은행을 둘러싼 최대 화두는 대외 채무보증 확대 여부다. 정부는 지난해 말 수주 기반 확대를 위해 수출입은행의 대외채무보증 여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무역보험공사 당해 연도 보험인수 금액 35%까지 보증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를 50%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다.

김철민 수출입은행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정부 부처(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가 국가 수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출입은행의 대외채무보증을 확대하기로 합의한 것"이라며 "최근 국내 수주가 줄어드는게 보였는데 기업들이 요구하는 금융 지원 부분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철민 수출입은행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또 그는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수주가 무산된 사례를 보면 수출입은행의 금융 지원이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라며 "발주처에선 다양한 형태의 금융 지원을 요구하고 있어 이 수요를 맞추지 못하면 다른 나라에 빼앗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단순하게 보면 다른 나라가 수주할 경우 (대외채무보증에 대한) 보증료가 해당 국가 금융기관으로 가는 수준이지만 큰 관점에서 보면 수출 국가가 바뀌는 것이라 국익 차원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김 수석부위원장의 생각이다.

대외채무보증 확대는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신남방 정책에도 힘을 보탤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박요한 위원장은 "대외채무보증은 특히 개발도상국에 진출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수요가 많아 보증 여력이 확대되면 큰 힘이 될 것"이라며 "더 이상 기존의 중동 플랜트나 유럽 등에서 대형 수출을 노리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발도상국에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비슷한 영역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무역보험공사와의 갈등은 대외채무보증 여력 확대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이다. 현재 무역보험공사 노조는 수출입은행이 허위 자료를 통해 국가 정책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감사청구와 민원청구, 담당자 형사고발 등을 진행중이다.

이에 대해 수출입은행 노조는 감사 결과 등을 보고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요한 위원장은 "무보 노조에선 우리가 제출한 해외 수주 실패 사례를 허위라고 하는데 감사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며 "우리는 감사원 앞으로 탄원서를 넣었고 결과를 지켜본 후 대응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국책은행 지방이전? 실효성 없다"

수출입은행은 선거철마다 나오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이슈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다. 산업은행과 함께 주요 국책은행인 만큼 금융허브를 조성한다는 미명 아래 정치권에서 지방이전 대상 기관으로 꼽는다.

하지만 노조 입장은 명확하다.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오히려 금융 경쟁력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이랑 수출입은행 노동조합 부위원장

김이랑 수출입은행 노동조합 부위원장은 "국가 균형 발전이 중요하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특정 지역의 이익보다 국가 전체 이익을 고려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금융기관들은 서로 모여 있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는데 수출입은행만 떼서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것은 균형발전 효과보다 금융 경쟁력을 퇴보시키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출입은행 노조가 지방 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 환경과 수주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배경이다. 

박요한 위원장은 "금융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금융수법이 점차 다양해지고 고도화되고 있다"며 "발주처들이 금융 경쟁력을 사업자 선정시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어 더 이상 한 금융기관이 혼자서 할 수 없고 여러 기관들과 함께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수출입은행은 개발도상국에 진출하는 민간 기업들의 금융지원 전담기관이 돼야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경제 안보 차원에서 사업 파트너들과 외교적 관계가 중요한데 이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지방 이전은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MZ세대가 조합원 절반 이상이에요"
박요한 위원장은 인터뷰 첫 마디에 MZ세대 이야기를 꺼냈다. 70%가 넘는 조합원이 1980~90년대 생인만큼 노동에 대한 개념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중요한 것은 조합원들의 노동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노조위원장의 역할이라는 게 박 위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서의 시간이 가치있는 시간이면 좋겠고, 어떻게 하면 직원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까 고민한다"며 "조직내에서 스트레스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편에서 이야기를 듣고 조합원 한 사람 한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인터뷰 마무리는 김이랑 부위원장이 맡았다. 수줍게 입을 연 그는 "각자 모르던 사람들이 노조를 위해 팀을 꾸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며 "수출입은행에 진심인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진심 노조'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임기 동안 수출입은행이 더 잘 되길 바라는 조합원들이 많아지도록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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