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범후 처음으로 여당 인사들과 생명보험·손해보험협회장 및 12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얼굴을 맞댄 자리에서 '금산분리 완화'라는 묵직한 건의가 전달됐다. 생보업계 1위인 삼성생명을 통해서다. 향후 법 개정 등 후속상황에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가진 이날 간담회는 저출산·고령화 등 보험업계가 직면한 무거운 현실을 반영하듯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기존 오후 2시에서 3시까지로 예정돼 있던 간담회가 30분을 넘겨 3시30분까지 이어졌다는 전언이다.▷관련기사 : 여당-보험업계, 규제개혁 논의…'숙원사업' 탄력받나(8월4일)
정희수 생보협회장의 발언부터 절박한 기류가 나타났다. 정 회장은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혁신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적극적으로 정비하는 등 법적·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정지원 손보협회장 역시 "손보산업이 소비자에게 신뢰받는 산업으로 재도약 하기 위해 업계가 직면한 현안 해결이 필요하다"고 힘을 보탰다.
이후 진행된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업계의 요구 사항이 가감없이 나왔다. 이중 주목을 받은 것은 생보업계 1위사 삼성생명이 가장 처음으로 '금산분리 완화 관련 정책적 지원'을 외쳤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8.51%) 등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문제가 금산분리와 얽혀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다만 발언 수위는 원칙적이고 온건했다.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금융사들의 비금융 분야 진출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는 수준에 그쳤다. 보험사가 자회사·부수업무 등을 통해 진출할 수 있는 사업영업은 금융업 및 보험 밀접 업무로 제한되며, 금산법에 따라 비금융사에 대한 출자한도도 5% 미만으로 제한된다.
발표자로 나선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은 "금융사의 비금융 진출을 엄격하게 제한해 온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보험산업의 신성장과 글로벌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련법 개정과 함께 실행 가능한 정책부터 신속한 추진이 필요하다"며 "출자규제 완화는 법 개정 사항이지만 정책당국의 재량이 큰 자회사 설립, 부수업무의 범위에 대한 판단기준이나 절차 등은 빠른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하나의 그룹내에 생·손보 각 1개의 라이선스만 보유하도록 한 '1사 1라이선스 규제 완화'도 건의됐다. 현행처럼 1사 1라이선스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동일 그룹내 생·손보사를 운영하고 있을 경우 소액단기전문(미니보험)보험사나 특화 전문보험사를 설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CM(사이버마케팅) 채널을 자회사로 분리한 경우는 판매채널의 중복이 불가한데 이에 대한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온라인플랫폼에서 다양한 채널을 활용한 상품 출시와 이를 통한 사업모델 추진이 어려워 보험산업 혁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번엔 교보생명과 한화손보가 나섰다. 이 규제에 걸려 있는 대표 사례로 거론되는 회사다. 예컨대 한화손보는 자회사인 캐롯손보가 CM 채널로 자동차보험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CM으로 자동차보험을 판매하지 않고 있는데, 한화손보도 CM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두 회사는 "소액단기전문보험사 설립과 CM 채널 운영은 1사 1라이선스 규제를 빗겨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외에도 업계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한화생명) △비급여 관련 제도 개선(삼성화재) △보험민원처리 효율화(푸본현대생명) △실손의료보험금 청구 간소화(현대해상) △연금보험 활성화 지원(교보생명) △요양서비스 공급 확대 및 품질 제고 제도 개선(KB손보) △빅테크와 공정경쟁을 위한 규율 체계 마련(신한라이프) 등을 건의했다.
국민의힘 정책위는 "신사업 분야로의 성장동력 확충, 보험산업 디지털화 등 보험업계의 미래를 좌우할 과제들의 진척을 막는 낡은 금융규제 혁신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이어 "각 업권과의 간담회를 통해 시대변화에 뒤떨어지고 불필요한 규제들을 과감히 정리토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