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일부 생명·손해보험사들이 보험사 약관대출(보험계약대출)에서 불합리하게 높은 이자를 매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월 내놓은 '보험계약대출 가산금리 산정체계 점검결과' 보도자료를 통해서죠.▷관련기사 : 이 와중에…고객 몰래 대출이자 더 받은 보험사들(2023년 11월10일)·보험계약대출 금리 왜 높나 했더니…법인세비용도 가산(1월9일)
보험 약관대출 금리는 '기준금리+가산금리'로 산정합니다. 기준금리 격인 공시이율과 예정이율은 결국 계약자에게 귀속되는 이율이라 실제 부담하는 이자는 가산금리가 됩니다.
자료를 보면 생보사 9곳에서 약관대출과 관련 없는 시장금리 변동 기회비용(대출금을 다른 데 투자하면 벌 수 있는 돈)을 가산금리에 부당하게 반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생보사 3곳과 손보사 1곳에서는 인건비 등 업무 원가와 무관한 법인세 비용을 가산금리에 임의로 포함하기도 했고요. 생보사 6곳과 손보사 4곳은 가산금리 확정 후 기타 원가 요소를 차감해 마진율인 목표이익률을 부당하게 산정하기도 했죠.
약관대출은 기존 계약한 보험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쌓여있는 해지환급금의 70~80%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별도 대출심사가 필요하지 않고 신용등급과도 무관한 데다, 중도상환수수료도 없어 서민들의 대표적 급전 마련 수단으로 쓰이죠. 바꿔 말하면 보험사들이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부당하게 더 높은 이자를 챙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떼먹힌 이자 못 돌려받는다
문제는 피해자인 보험계약자들이 떼먹힌 이자를 돌려받을 길이 없다는 겁니다. 보도자료에서도 생·손보사로 뭉뚱그려 놓기만 했으니 어떤 보험사에서 부당 사례들이 발견됐는지, 부당 수취한 이자액수가 얼마인지 확인하기도 어렵습니다.
지난달 말부터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미래에셋생명 △흥국생명 △삼성화재 △DB손해보험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등이 금리확정형 약관대출에 적용하는 가산금리를 0.5%포인트가량 인하하고 있죠. 보험사들은 "기존 대출자와 신규 대출자 모두 인하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요. 이는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상생금융 방안의 일환으로, 보험사 자율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고요. 부당 이자에 대한 피해보상 및 해결책이 나온 건 아닙니다.
앞서 금감원은 "확인된 불합리한 사항을 대출금리 산정기준이 되는 보험협회 표준모범규준에서 개정토록 지도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한달여가 지난 지금도 감감무소식입니다. 부당 이자분이 현재까지도 계속 나가고 있는 상태라는 얘깁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모범규준 개정이 확정돼야 전체 보험사가 움직일 수 있다"고 했고요.
금감원도 보험사도 '고개 절레'
금감원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금융권 대출금리 등 원가 산정은 업계 자율협약이나 모범규준에 따라 회사가 자율적으로 산출하는 영역이라서죠. 보험업법 등 관련 법규를 어긴 것이 아니니 금감원이 환수조치 등 강제 권한을 행사할 여지가 제한적이라는 겁니다. 가산금리 산정을 건건마다 들여다보고 '이래라저래라' 입을 대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입장입니다. 당국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 논란이 제기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
금감원 관계자는 "관련 법이 없는 상황에서 환급 명령을 내리는 건 권한을 벗어난 행위가 된다"며 "협회 모범규준 개정을 통해 합리적으로 개선하라고 권고하는 게 감독원이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했습니다.
보험사들은 회사가 특정될까 손사레를 치는 모습이죠. 일부에서는 "금감원이 상생금융 동참을 압박하기 위해 무리한 대출금리 점검을 벌였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결과적으로 약관대출 가산금리 부당산정 문제는 향후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가산금리 산정이 보험사 자율이라는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있고, 감독당국은 금리인하 과업으로 생색낼 수 있는 카드라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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