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곧 ‘돈’인 시대, 길게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국내 대기업들은 다양한 성장사(史) 만큼이나 사명(社名)에 얽힌 얘기가 다채롭다.
1938년 고(故) 이병철 창업주가 대구에 차린 잡화상 ‘삼성상회(三星商會)’가 근원인 삼성은 많다는 뜻의 ‘삼(三)’ 자(字)와 밝고 영원하다는 의미의 별 ‘성(星)’ 자를 따서 지었다. ‘현대(現代)’라는 이름은 고 정주영 창업주가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세우면서 처음 썼고, 정 창업주는 새로움을 지향해서 발전된 미래를 살아보자는 생각에서 ‘현대’를 택했다.
1990년대 들어 글로벌화 흐름을 타고 LG, SK처럼 옛 그룹명 ‘럭키금성(Lucky Goldstar)’, ‘선경(鮮京)’의 영문 약자를 쓰기도 하고, ‘코리아(KOREA)’와 ’나일론(NYLON)’을 줄인 ‘코오롱(KOLON)’이란 상표가 유명해지자 아예 상호로 바꾼 코오롱과 같은 대기업도 적지 않다. 롯데는 괴테의 명작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로테(Lotte)’의 이름이 간판으로 굳어진 경우다.
이렇듯 대기업의 사명은 많은 사연과 기업이 꿈꾸는 저마다의 가치, 문화, 지향점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엮여있지만, 이를 관통하는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을 갖는다. 한결같이 기업의 번성과 사세 확장을 위한 강렬한 바람이 담겨져 있다는 점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재계 10위권 동부그룹의 이름 ‘동부(東部)’도 독특한 데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이름에 중앙이 있고 동·서·남·북이 있는 것처럼, 대기업 중 유일하게 방위(方位)를 가지고 쓰고 있다. ‘동부’는 해가 떠오르는 쪽, 즉 생명의 근원이며 희망을 나타내는 ‘태양’의 다른 이름이다. 이런 맥락에서 동부가(家)에서 한 핏줄의 방계기업 ‘동도(東都)’가 만들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일지 모른다.
동부는 잘 알려진 대로 정치가 집안이다. 동부그룹 창업자 김준기(70) 회장의 부친 고 김진만(1918~2006) 선생은 1954년 제3대 민의원을 시작으로 4대 민의원, 6~10대 의원 등 7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국회 상공위원장, 공화당 원내총무, 국회부의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이어 1997년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을 거쳐 2001년부터 2006년 별세전까지 민족중흥회 회장을 지낸 한국 정치사의 거물이었다.
김 회장의 바로 아랫동생 김택기(64)씨도 정치가로 활동했다. 동부고속, 동부화재 대표이사를 지낸 뒤 19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새천년민주당(현 열린우리당의 전신) 창당준비위원으로 정치에 입문, 16대 국회의원(강원 태백·정선)을 지냈다. 원로 정치인 이철승(92) 전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의 맏사위이기도 하다.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맏형 고 김진구(1906~1987) 선생도 근대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사(人士)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과 1960년 초대 참의원을 지냈고, 특히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이 정치 입문이래 자유당, 공화당에 이르기까지 줄곧 여당에서 활동한 반면 김진구 선생은 야당인 민주당에 몸담고 동생과는 정치 노선을 달리했다.
1982년 겨울, ‘동도실업’이란 개인 시설관리 회사가 만들어졌다. 20대 청년이던 1969년 1월 미륭건설(동부그룹의 모태로서 1989년 사명이 바뀐 동부건설의 전신. ‘동부’라는 이름은 1971년 설립된 ‘동부고속’에서 처음으로 쓰인다)을 창업한 뒤 중동 건설시장에 뛰어들어 ‘주베일 신화’를 일궈낸 김 회장이 동부그룹을 창업 10여년만에 재계 30위권 반열에 올려놨을 무렵이다.
김준기 회장이 부친과는 다른 경영자의 길을 걸어왔던 것처럼, 동도실업을 창업해 기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가 김진구 전 의원의 3남2녀 중 셋째아들 김유기(66) 현 동도(東都)시스템 회장이다. 동도시스템은 동도실업을 1990년 3월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김유기 회장은 현재 동도시스템만 붙잡고 있지는 않다. 2000년대 중반 무렵 부터는 계열 확장에도 부쩍 애를 써 시설관리·경비보안 업체 동도시스템 외에도 IT시스템 관리·컨설팅 업체 레이원(2005년 6월 설립), 자산관리회사 이도리(2007년 8월), 건축물 내장 불연재 생산 업체 그린파이어킬러(2012년 10월)와 같은 계열사를 두고 있다.
사회 활동도 활발히 해왔다. 강원 동해 북평고와 건국대 조경학과 출신인 김유기 회장은 한국 건축물관리연합회 부회장, (사)한국건물위생관리협회 회장(2002~2007년), WFBSC세계건물관리연맹 회장(2004~2007년) 등을 역임했다. 2004년 9월 몬트리올 총회에서 WFBSC세계건물관리연맹 회장으로 선출된 뒤에는 2년여 준비기간 끝에 2006년 20여개국의 회원국이 참가한 WFBSC 서울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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