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주최한 P4G 정상회의가 막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P4G가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P4G는 '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의 약자입니다. 직역하면 '녹색 성장과 국제 목표를 위한 연대'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모르겠네요. 행사가 지향하는 공식적인 목표를 살펴볼까요.
행사를 주도한 외교부는 P4G에 대해 '녹색경제 분야의 공공-민간 파트너십 강화를 위한 글로벌 이니셔티브'라고 정의하며 '녹색경제 관련 5대 중점분야(식량·농업, 물, 에너지, 도시, 순환경제)에서 민관협력을 촉진하고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과 파리협정 이행을 가속화하기 위한 협력체'라고 설명했습니다.
더 복잡하네요. 한 매듭 더 풀어보죠. 녹색경제의 각 분야에서 각국의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의 협력을 촉진하고,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목표를 점검하며, 파리기후변화협약 실천을 끌어내기 위한 행사라는 얘기입니다.
여전히 어렵지만 개념은 잡힙니다. 아주 쉽게 말해 각국 정부와 기업, 단체들이 모여 녹색 경제를 논의했다는 얘기네요. 과연 그랬을까요. 이번 행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들이 나왔는지를 살펴봤습니다.
SK·현대차·한화·포스코 등 협력 다짐
앞서 지난 4월에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인 행사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열린 '기후정상회의'입니다.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제연대를 강화하고자 40개국 정상이 모였습니다. 주제는 P4G와 마찬가지로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실천입니다.
P4G가 기후정상회의와 다른 점이 있다면 행사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더 다양합니다. 기후정상회의는 말 그대로 각국의 정상들이 주도했지만, 하지만 P4G는 각국 정상은 물론 해당 국가의 기업과 공공기관, 사회단체들이 참여합니다. 한국과 덴마크, 네덜란드, 베트남 등 12개국과 SK텔레콤, 도요타, 네슬레 등 140여개 기업이 P4G를 위해 모였습니다.
무엇보다 기업이 기후변화 등 녹색경제 분야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의가 깊습니다. 오랜 시간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느라 기후변화를 부추겼다는 '악당' 역할을 벗어나기 힘들었죠.
최근의 트렌드는 달라졌습니다. 기업들이 앞장서서 온실가스 감축과 이를 위한 RE100 캠페인 등 에너지 전환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여러분은 기업이 환경 문제의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라는 물음으로 비즈니스 세션 기조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화석연료에 대해 각국 정부가 보조금을 줄이지 않는 한 기업들은 단기적 이윤에 집착하게 될 것"이라는 소신을 펼쳤습니다. 따끔한 지적이죠.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을겁니다.
최 회장은 "석탄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가격은 1kWh에 5센트지만,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8센트는 포함하지 않았다"며 "이런 결과를 기업의 회계기준과 기업공시체계 자체에 반영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최근의 ESG 경영에 대한 글로벌 트렌드를 정확하게 짚어내며 기업의 역할을 강조한 것입니다.
최 회장이 던진 화두는 P4G에 참석한 다른 기업가들에게도 고민입니다.
탄소 부분 세션 기조강연을 맡은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은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정 회장은 "모빌리티 부문이 온실가스 주요 배출원"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차의 주요 사업이 온실가스 배출 주범이라는 고백이네요. 이어 "이를 해결하는 수단은 전동화(Electrification)"라고 답도 내놓았습니다.
정 회장은 "현대차는 전동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이미 전 세계에 13종의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다"며 "올해 200대 이상의 수소 버스가 공급될 예정이며 내년엔 한국 주요 도시의 청소차도 수소 트럭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너지 세션에서 기조연설을 발표한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도 기업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김 대표는 지구를 위한 저탄소 에너지 해법으로 수소 혼소(混燒) 발전을 들고 나왔습니다. 수소 혼소 발전은 가스 터빈의 연료로 수소와 액화천연가스(LNG)를 함께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이산화탄소 배출이 기존 방식보다 30% 이상 줄어들고 산화질소의 배출도 막을 수 있습니다. 한화솔루션의 자회사 한화종합화학이 국내에서 최초로 확보한 기술이죠.
국내 온실가스 발생을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포스코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수소경제 확산을 위해서는 범지구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포스코는 제철 공장에서 석탄 대신 수소를 활용하는 '수소환원제철'을 연구한다고 합니다. 이 기술은 포스코의 경쟁사인 현대제철과 함께 연구하는 과제입니다. '범지구적인 노력'은 빈 말이 아닌가 봅니다.
P4G 공식성과 서울선언문…"국제 협력 강화하자"
이 밖에도 많은 기업들이 P4G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노력을 인증하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P4G가 끝난 뒤 4대 그룹 총수들을 불러 "RE100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앞장서줘서 감사하다"고 치켜세웠습니다. P4G에 해당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외교적으로도 한국의 위상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P4G의 회원국이 아님에도 행사에 동참해 지지를 밝혀 화제입니다. 이를 두고 한국이 기후협력 분야에서 외교적인 공간을 찾았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P4G 마지막 날 참가국과 각 단체들은 '서울선언문'을 채택했습니다. 이번 P4G의 공식적인 성과입니다.
선언문에는 참가국과 각 단체들은 녹색 성장을 위해 서로를 돕자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태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을 늘리고,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 협력을 강화하자고 합니다.
그 밖에 해양 플라스틱 문제와 녹색기술 투자, 재사용 장려, 녹색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특히 한국은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에 대한 공적 금융 지원을 중단하고, 탄소 감축이 어려운 분야에선 청정수소 사용을 촉진하겠다고 합니다.
강제성 없는 선언…NDC 상향 없어 아쉬워
아쉽지만 이번 P4G는 한계도 있습니다.
우선 P4G에서 논의하고 채택한 내용은 강제성이 없습니다. P4G를 통해 수많은 기업들이 당장의 사업을 전면 재수정할 만한 선언을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선언입니다. 방향을 제시하긴 했지만 그를 위한 당장의 행동을 강제하지는 않습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P4G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강제성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가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향후 해당 기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세우고 실천하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정부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 P4G를 앞두고 가장 기대한 부분은 정부의 새로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발표였습니다.
NDC는 '선언'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UN을 통해 인증도 받습니다. 강제력은 없지만 억지력은 상당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연초 UN은 지난해 한국이 새롭게 내놓은 NDC를 두고 기존과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를 내리면서 수정한 목표를 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4월 기후정상회의에서 '2005년 대비 26~28% 감축'이라는 기존 NDC를 '2005년 대비 50~52% 감축'으로 크게 높였습니다. 이에 고무된 다른 국가들도 앞다퉈 NDC를 크게 높여 잡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P4G 개최와 함께 새로운 NDC를 발표하리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번 P4G에서 "새로운 NDC는 11월에 발표한 계획'이라는 입장만 내놓았습니다.
P4G 폐막 이후 이에 대한 아쉬움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별위원회는 "서울선언문에는 다른 나라의 NDC 상향을 환영한다면서 정작 개최국인 우리나라는 6년 전 박근혜 정부가 제출했던 감축목표를 상향하겠다는 말을 몇 달째 반복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도 "구체적인 2030년 NDC 상향 방안이 없고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허가를 전면 중단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현재 지어지고 있는 국내외 신규 석탄발전소를 중단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환경운동연합도 "다른 국가를 독려하기 전에 한국 먼저 배출 절반 수준의 NDC를 확정해야한다"며 "개최국부터가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선언문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꼬집었습니다.
새로운 NDC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에 참여했지만 이후 온실가스 배출을 전혀 줄이지 못했습니다. 민망한 일입니다.
한국은 그 사이 '기후악당'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구체적인 변화가 없는데 정부가 목표만 상향한다고 될 일은 아닐 겁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P4G 같은 행사가 더 필요한 게 아닐까요. 아쉬움이 남는다면 이제 '실천'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