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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해진 제약바이오 공시 기준, 업계 신뢰 확 키울까

  • 2022.02.08(화) 13:50

임상 결과·기술이전 등 공시 기준 크게 강화
부실 공시 근절‧제약바이오 신뢰도 제고 기대
"임상 예측 어려움 등 산업 특수성 고려해야"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코스닥에 상장한 제약바이오 기업의 임상시험 공시 기준이 강화됐다. 기업들은 임상시험 종료보고서 대신 임상시험 결과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 또 품목허가 범위와 기술이전 계약 내용도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 최근 바이오 기업들의 부실 공시 행위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한국거래소가 강력한 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이번 개정안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신뢰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개정 가이드라인이 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특성상 임상시험의 성공률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데다 계약 내용을 모두 공개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임상시험 공시 기준 강화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최근 '제약바이오 기업의 특성을 반영한 포괄공시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했다. 코스닥 상장법인의 공시 업무를 돕고 일반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개정 가이드라인은 지난 7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포괄공시는 상장법인이 의무 공시 사항 이외의 모든 중요 정보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 공시하는 제도다.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은 강제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불성실공시에 해당, 거래정지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앞선 지난 2020년 2월 금융위원회와 거래소는 제약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한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바 있다. 금융위와 거래소는 당시 제약바이오 기업이 공시해야 할 주요 경영활동으로 크게 △임상시험 △품목허가 △기술이전 계약 △국책과제 △특허권 계약 등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제약바이오 기업의 임상시험 관련 공시는 투자자의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부 상장법인이 주가를 띄우기 위한 '불량 공시'를 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기술이전 계약을 했다고 공시를 하거나 선계약금 대비 총계약 규모를 부풀리는 식이다. 여기에 최근 오스템임플란트의 횡령 사건, 신라젠 상장폐지 결정 등 제약바이오업계에서 잇따라 악재가 터지면서 거래소가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개정 가이드라인에서 주목할 점은 △임상시험 종료 가이드라인 정비 △품목허가 범위 명확화 △기술이전 및 도입 공시 구체화 등이다. 우선 거래소는 임상시험을 마치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하는 '임상시험 종료보고서'를 공시대상에서 제외했다. 대신 임상시험 수탁기관(CRO)으로부터 받은 임상시험 결과보고서(CSR)를 공시대상에 포함했다.

또 임상시험의 결과는 CRO에서 받은 1차 평가지표 통계값(P값) 및 통계적 유의성 여부 등을 충실하게 기재해야 한다. 보통 1차평가지표 P값이 0.05 이상 나오면 임상시험 실패, 이하로 나오면 성공으로 분류한다. 통계적 유의성 등 검증이 면제되는 경우엔 CRO의 확인을 거쳐 해당 내용을 포함하도록 공시해야 한다.

임상시험 종료가 아닌 임상 결과를 공시하도록 수정한 셈이다. 제약바이오 기업은 임상 시작이나 종료 공시만으로도 주가가 크게 움직이는 만큼 투자자를 보호하려는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품목허가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고 기술이전 공시대상도 확대했다. 품목허가 공시 대상을 신약 후보물질로 구체화했다. 오리지널 신약은 물론 개량신약과 복제약(바이오시밀러)도 해당한다. 기술이전의 경우 계약금액이 매출액이나 자기자본의 10% 이상이면 관련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5% 이상으로 강화됐다.

확정 마일스톤·로열티 수령 금액이 중요성 판단 기준에 해당하면 공시대상이다. 기술이전 계약 상대방의 국적, 설립일자, 최근 매출 등 구체적인 정보도 추가해야 한다.

"제약바이오 특수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이번 개정 가이드라인을 통해 제약바이오 기업의 부실 공시 행태를 근절하고 업계 전반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기업으로선 보다 구체적인 공시 기준이 제시된 만큼 담당자의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역시 신약개발 과정과 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김형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가이드라인 시행으로 신약개발 기업에 대한 신뢰도 확대, 투자자 이해 증대, 업체 공시 담당자의 부담 경감이 예상된다"면서 "그동안 제한적이던 정보를 공시에서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어 업체에 대한 신뢰와 투자자의 이해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도 이번 조치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는 분위기다. 특히 제약바이오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온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 업계의 투명성을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가이드라인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다. 신약 개발은 임상시험부터 최종 신약 승인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신약개발 성공 확률도 약 10% 미만일 정도로 낮다. 기업이 신약개발의 성공 확률이나 허가 확률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개발 산업은 기업이 모든 임상 단계의 확률을 예측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많은 투자자가 제약바이오 기업이 임상에 실패하면 신약개발 자체를 실패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임상 디자인을 통해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특수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상시험의 세세한 부분까지 과도하게 언급하는 게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제약바이오 산업은 지식재산권(IP)이 중요한 만큼 계약 내용을 모두 공개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임상시험 종료마다 결과값을 공시하거나 기술이전 공시 대상을 대폭 확대한 것은 오히려 과도한 정보를 드러내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면서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기술이전이나 위탁생산 계약은 거래 과정에서 비공개로 협의해 공개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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