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전 세계적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산업계가 비상이 걸렸다. 미국·중국의 무역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끝을 알 수 없는 대내외 악재도 위기감을 더한다. 기업들은 생산과 투자를 줄이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며 방어막을 쌓아 올리고 있다. 반도체·배터리·스마트폰 등 각 산업 분야의 내년 성적표를 전망해본다.[편집자]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집콕' 열풍으로 호황기를 누렸던 가전 시장이 글로벌 경기 침체에 휘청이고 있다. 생활가전과 TV의 수요가 빠르게 줄면서 국내 업체들은 매출 축소뿐 아니라 수익성도 챙기지 못하는 실정이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수요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가전업체들은 정공법인 프리미엄 전략을 유지하며 버티기에 돌입했다.
코로나 특수 사라지며 불황
가전업계의 불황은 코로나19 특수가 사라지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가전업계는 소비자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며 수요가 급증해 이례적인 호황기를 누렸다. 하지만 일상 복귀가 시작되면서 수요는 빠르게 줄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으로 소비 심리는 더욱 얼어붙었다.
주택 시장 침체 역시 가전업계 불황에 영향을 미쳤다. 신규 주택 건설이나 주택 매매가 활발해야 가전 구매 수요가 늘어나는데,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가전 수요도 급감한 것이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GfK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소비자 가전 시장은 전년 대비 7% 감소할 전망이다. 특히 불황 영향을 적게 받던 프리미엄 시장 역시 주춤할 것으로 예상된다. GfK는 올해 글로벌 프리미엄 가전제품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3%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TV 시장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옴디아 조사 결과 올 3분기 글로벌 TV 누적 출하량은 1억4300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4.4% 감소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TV 시장 규모 역시 723억9000만 달러로 12.7% 감소했다.
실적 침체기 시작
이에 따라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의 실적은 올해부터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올 3분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가전 사업부 매출은 14조7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67.1% 감소한 2500억원이었다. 이는 생활가전과 TV 매출을 합한 성적인데, TV만 떼어보면 적자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생활가전과 TV 실적을 별도로 공개하는 LG전자를 보면 이같은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LG전자에서 TV 사업을 담당하는 HE사업본부는 지난 2분기부터 적자를 기록 중이다. 올 3분기 영업적자는 554억원으로 전 분기 189억원 적자에 비해 손실폭이 커졌다.
여기에 더해 LG전자에서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H&A사업본부의 3분기 영업이익은 2282억원으로 전년 동기비 감소했다. 이에 따라 두 사업부분의 합산 매출은 11조1851억원, 영업이익은 1729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률은 전년 동기 6.3%에서 1.5%로 떨어졌다.
4분기 전망 역시 흐림이다. 블랙프라이데이 등 대형 할인 행사의 영향으로 매출은 늘었으나 경쟁 심화로 마케팅 비용이 늘어 영업이익은 감소할 전망이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VD·가전 사업부의 경우 4분기 계절성 영향으로 TV 판매량은 늘어나지만 수익성 확보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가전 사업의 경우 매출액도 전 분기 대비 감소하고 연말 재고조정 등 비용 증가로 영업이익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LG전자 H&A사업본부는 올 4분기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LG전자의 4분기 매출은 22조8592억원, 영업이익은 5366억원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4분기 매출 84조3934억원, 영업이익 3조9959억원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낮은 성적 전망이다. 초호황기를 누렸던 H&A사업본부가 부진한 영향이 크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가전은 상대적으로 견고했던 미국의 수요 둔화까지 현실화하고 있으며, TV는 유럽 경기 침체의 영향이 지속되고 있다"며 "파이가 줄어드는 시장 환경에서 경쟁 강도가 거세지고 있고 재고 소진을 위한 비용 집행이 뒤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내년 전망도 불투명하다. 전 세계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줄어든 수요가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다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LG전자의 가전 사업부는 팬데믹으로 호황 사이클이 길어지며 2017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3조원대의 이익을 달성했지만 올해는 2조원대 초중반에 그칠 전망"이라며 "금리 인상의 누적 효과 등을 감안하면 올해보다 내년이익이 크게 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국내 가전업체들은 고객에게 한층 더 집중하는 맞춤형 프리미엄 전략을 꾸준히 전개해 불황을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내년 1월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 2023이 그 시작이다.
삼성전자는 CES 2023에서 '맞춤형 경험으로 여는 초연결 시대'를 제안할 계획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기고문을 통해 "삼성은 지속가능한 혁신을 기업 경영의 본질적 가치이자 핵심요소로 인식하고 있다"며 "이번 CES 2023에서 삼성전자는 한층 강화된 보안과 사물의 초연결 생태계에서 누리는 확장된 스마트싱스 경험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도 '고객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의미인 브랜드 슬로건 'Life's Good'을 주제로 고객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한 혁신을 소개할 예정이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대표 연사로 등단해 고객 경험 확장을 위한 다양한 혁신 제품과 스마트 라이프스타일 솔루션을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