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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바이오니아, 30년 뚝심 '코스메르나' 결실

  • 2023.05.23(화) 08:35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이사 회장
세계 최초 RNAi 탈모 화장품 출시
"신약 개발 지속…목표는 글로벌"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이사 회장. /사진=바이오니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퀀텀점프에 성공한 기업이 있다. 국내 1호 바이오벤처이자, 유전자 전문 기업 바이오니아다. 이 회사는 분자진단 기술을 활용한 진단키트로 지난 3년간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19년 연결 기준 363억원이었던 매출은 2020년 2070억원, 2021년 2237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기술성장기업부에서 우량기업부로 한국거래소 코스닥 소속부가 승격됐다.

회사가 팬데믹 특수를 톡톡히 누릴 수 있던 것은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적자를 지속하면서도 30년 동안 연구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은 박한오 회장의 뚝심이 만들어 낸 결과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박 회장은 1992년 바이오니아를 창업했다. 당시는 국내 바이오 기업이 대부분 유전자 기술을 미국에서 수입해서 쓰던 시기였다. 그는 '유전자 기술의 완전 국산화'를 목표로 매년 연 매출의 30%를 연구개발비로 지출해 왔다.

올해 바이오니아는 또 한 번 퀀텀점프를 준비 중이다. 최근 출시한 세계 최초 리보핵산간섭(RNAi) 기반 탈모 완화 화장품 '코스메르나'를 통해서다. 나아가 RNAi 신약도 개발, 궁극적으로 연 매출 10조원을 넘기는 글로벌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다. 22일 대전 유성구 바이오니아 글로벌센터에서 만난 박 회장은 "캐시카우로 자리 잡은 분자진단, 건강기능식품 사업에 코스메르나, RNAi 신약 등의 역량을 더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겠다"며 "자회사 매출을 합쳐 연 매출 10조원 이상을 올리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차세대 의약품 RNAi, 원천기술로 승부

합성의약품이나 항체의약품 등 기존 의약품은 이미 몸속에 형성된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기능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약효를 낸다. 반면 RNAi 신약은 질병을 일으킬 만한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한다. 잘못된 유전정보를 가진 메신저 리보핵산(mRNA)을 선택적으로 분해해 단백질의 합성을 원천적으로 막는 원리다.

박 회장은 RNAi 신약이 기존 의약품을 대체할 차세대 의약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된 이후 암 등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수많은 원인 유전자가 밝혀졌다"면서 "이렇게 축적된 엄청난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질병 유발 단백질을 직접 공략해 근본적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RNAi 신약이 미래 난치병 치료의 강력한 플랫폼으로 등장했다"고 강조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유전체를 구성하는 약 30억쌍의 데옥시리보핵산(DNA) 염기서열 전체를 분석해 유전자 지도를 만든 연구 작업이다.

RNAi 신약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질병 유발 유전자의 염기서열만 알아내면 해당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 박 회장은 "합성의약품이나 항체의약품의 경우 질병 유발 단백질 가운데 10~15% 정도만 약물 표적으로 사용 가능하다"며 "RNAi 신약은 모든 mRNA를 선택적으로 분해할 수 있는 만큼 타깃 질병에 제한이 없다"고 했다.

바이오니아의 RNAi 원천 기술./자료=바이오니아

핵심은 RNAi 물질을 원하는 세포나 조직에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이다. RNAi 물질은 혈액 속에서 쉽게 분해되고 간을 통과하면서 대부분 사라진다. 전 세계 RNAi 신약 후보물질이 간질환을 중심으로만 개발되는 이유다. 선천 면역 자극 부작용도 문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처음으로 허가한 RNAi 치료제인 앨라일람의 '온파트로'는 투여 시 발열, 구토, 호흡곤란, 복통 등 부작용이 보고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투여 전 반드시 스테로이드 제제, 해열제,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해야 한다.

바이오니아는 원천 기술 'SAMiRNA'로 RNAi 신약의 한계를 극복했다. SAMiRNA는 친수성*과 소수성** 원리를 활용, 스스로 구(球) 형태로 뭉쳐지는 초분자 구조체다. 친수성 고분자들이 약물 바깥쪽을 감싸고 있어 RNAi 물질이 혈액이나 세포 내 효소에 의해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는 게 박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영장류 실험 결과 간 외에도 폐나 신장 등으로 전달 효율이 우수하게 나타났고 기존 RNAi 신약에서 나타나는 선천 면역 자극 부작용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친수성: 물 분자와 쉽게 결합하는 성질. 
**소수성: 물 분자와 쉽게 결합하지 못하는 성질.

세계 첫 RNAi 탈모 화장품…안전성·편의성 강점

바이오니아는 지난 3일 SAMiRNA를 적용한 탈모 완화 화장품 코스메르나를 유럽 시장에 출시했다. 당초 계획이었던 RNAi 신약 대신 RNAi 화장품 출시로 전략을 선회한 것이다. 진입 장벽이 낮은 화장품으로 캐시카우를 우선 확보한 뒤 이를 기반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회사에 따르면 전 세계 80억명 가운데 20억명가량이 탈모 증상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박 회장은 "기업가로서 새로 발명한 물질로 미충족수요가 큰 시장에서 최대한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 결과"라면서도 "코스메르나를 내놓기 위해 신약개발 임상을 미룬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바이오니아는 화장품 개발에, 미국 자회사 써나젠테라퓨틱스는 신약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써나젠이 개발 중인 RNAi 기반 섬유화증 치료제 후보물질은 올해 안으로 호주 임상1상에 진입할 것"이라고 했다.

코스메르나의 안전성·유효성 데이터. /자료=바이오니아

박 회장이 꼽은 코스메르나의 강점은 낮은 부작용과 높은 편의성이다. 현재 출시된 탈모 치료제는 탈모의 원인인 남성호르몬(안드로겐)을 억제한다. 이와 달리 코스메르나는 안드로겐이 안드로겐 수용체에 달라붙지 않도록 막는다. 호르몬을 직접 건드리지 않아 부작용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용 방법도 간편하다. 2주에 한 번 탈모 부위에 도포하면 되는 데다 화장품으로 출시돼 별도의 처방전이 필요 없다.

그는 "코스메르나는 국내외를 포함한 총 네 번의 인체 적용 시험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받았다"며 "독일 더마테스트로부터 장기간 제품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피부 이상반응에 대해 가장 높은 안전성 등급(5-star)을 획득했다"고 했다. 이어 "무엇보다 아직 여성에게 처방할 이렇다 할 처방이 없는데 코스메르나의 경우 인체 적용 시험에서 탈모 증상이 있는 여성에게 부작용 없이 효과를 내는 것을 입증했다"고 덧붙였다.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이 역시 SAMiRNA 덕분이다. SAMiRNA는 단일 분자로 구성돼 복잡한 제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량 생산할 수 있다. 코스메르나 전용 대용량 합성기도 구비했다. 박 회장은 "처음 바이오니아가 RNAi 원료로 탈모 완화 화장품을 상품화한다고 했을 때 비싼 원료로 화장품을 만드는 게 의아하다는 분위기였다"면서 "당사는 자체 기술을 통해 1mg당 30만원이나 하는 RNAi 원료 단가를 1mg당 1000원 수준으로 낮췄다"고 강조했다.

다만 해결 과제도 남아있다. 코스메르나는 유럽 출시에는 성공했지만 국내 출시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코스메르나의 화장품 허가를 반려한 바 있다. 당시 식약처는 추가 임상시험을 통해 코스메르나를 화장품이 아닌 치료제로 개발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남들이 하던 것만 쫓아서는 절대 국내에서 글로벌 바이오 기업이 탄생할 수 없고 새로운 기술에 도전해야 한다"면서도 "규제 당국이 의약품이나 신기술을 허가할 때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안전성에만 치중하고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새로운 건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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