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세계 2위 엘리베이터 업체인 쉰들러 홀딩 AG(이하 쉰들러)에게 2차례에 걸쳐 현대엘리베이터 매각을 시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비즈니스워치가 단독 입수한 쉰들러 측의 법원 진술서(2012년 제출)와 현대그룹과 쉰들러가 맺은 LOI(인수의향서. 2004년 체결)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지난 1999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쉰들러에 현대엘리베이터 매각을 타진했다.
이 진술서는 지난 2012년 말 쉰들러의 전 고위 임원이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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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고위 임원이 지난해 말 국내 법원에 제출한 5페이지 분량의 진술서. 첫 페이지에 'confidential'(기밀)이란 글자가 적혀있다. |
이 진술서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는 1999년 양측이 합작사를 설립하고 이 합작사의 지분 30%를 쉰들러가 먼저 취득키로 했다. 이후 지분을 늘려 쉰들러가 최대주주로 올라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합작사 설립은 2000년 고 정몽헌 회장이 재검토한 후 반대해, 결국 무산됐다.
두 번째 계약이 이뤄진 것은 2004년 2월. 현대엘리베이터는 승강기 사업(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을 분할해 신규법인을 설립하고 이후 쉰들러는 이 신규 법인의 지분 60%를 인수한다는 내용의 LOI를 맺었다.
현대엘리베이터 측에서는 현대그룹 회장이 LOI에 직접 서명했다. 또 현대그룹 회장은 부친인 고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과 모친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을 대신해 서명했다.
쉰들러 측에서는 알프레드 쉰들러(Alfred Schindler) 쉰들러그룹 회장과 이사회 멤버이자 쉰들러 회장의 최측근인 알프레드 스포리(Alfred Sporri)가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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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회장은 고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과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을 대신해 LOI에 서명했다. |
하지만 이 계약은 무산됐다. 쉰들러 측은 국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등에 막혀 실행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양측 모두 법적인 규제를 피할 방법을 모색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현대그룹 회장은 이 계약의 종료를 요청했고 쉰들러 측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쉰들러 측 주장이다.
반면, 현대엘리베이터에서는 쉰들러 측이 먼저 LOI 해지를 요청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쉰들러 측이 KCC 보유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양측간 협력의 상징인 LOI 해지를 요구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쉰들러는 LOI 해지 이후인 지난 2006년 현대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인 KCC 보유 현대엘리베이터 지분(21.47%)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에 올라섰다.
당시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인수하면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양측은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현대그룹에서도 쉰들러의 KCC 보유 지분 인수를 긍정적으로 봤다.
그러나 이런 우호적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현대상선의 파생상품 손실 때문이었다. 2006년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상선 지분 26.68%를 취득하며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전략적 제휴사 넥스젠 캐피탈(Nexgen Capital Ltd), 케이프 포춘(Cape Fortune B.V) 등과 스왑·옵션 계약을 체결해 간신히 경영권을 지켜냈다. 하지만 파생상품 거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현대엘리베이터가 2009년부터 최근까지 입은 파생상품 거래손실은 710억원에 달한다.
쉰들러는 최근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그룹의 지배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정면으로 현대그룹을 공격했다. 현대그룹은 “쉰들러의 진정한 목적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승강기 사업부를 인수하려는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