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이해관계에 얽힐 수 밖에 없는` 사정 때문에 제 목소리를 소신있게 내지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 리서치 담당자들은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정작 억울해 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공짜 리포트를 당연시하는 문화가 리서치의 질을 떨어뜨리는데 한 몫 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리서치의 유료화가 과제로 이어진다. 하지만 과연 유료화할 만큼의 질을 갖췄느냐에 대해서는 또 다시 물음표가 달린다. 이런 와중에 국내에서도 독립리서치가 등장해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다. 리서치섹터가 위기에 몰렸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수익원 없는 리서치 `유료화` 화두
외국계 증권사들의 경우 산업이나 시장 보고서를 기관투자가 등 `고객`에 한정해 배포한다. 어지간한 네트워크가 있다고 해도 일반인이 접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반면 국내의 경우 리서치 자료는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증권사와 거래하지 않더라도 증권사에 가입한 아이디(ID)만 있으면 열람이 가능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비교적 수월하게 찾아진다.
리서치 애널리스트들에게는 이것이 큰 불만이다. 그래서 최근 일부 증권사들은 일반 고객이 아닌 PB고객이나 기관투자가들에게 보고서를 따로 제공하기도 하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개인 투자자들은 주식매매를 하면서도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며 "정보 역시 공짜로 얻기를 원하지만 제대로된 서비스를 받으면서 더 지불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다른 애널리스트도 "정보기술 발달로 증권사가 단순히 수수료를 가지고 먹고 살 수는 없게 됐다"며 "새로운 수익원 발굴 차원에서도 고려할 만하지만 증권사 입장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루트가 리서치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유료화를 하면 그만큼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더 냉철한 의견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관계`중시하는 국내 정서와는 괴리
이렇다보니 국내 리서치에도 유료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료화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는 동시에 더 양질의 정보를 선별적으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필요성에는 다들 공감하고 있지만 일종의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일 수 있다"며 "보고서를 표면적으로 유료화하지는 않더라도 거래 관계가 전제된 고객에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돈을 물리는 것이 아니라 증권사 입장에서 거래 관계에 있는 고객을 선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보제공기관을 끼고 유료로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는 쪽도 여전히 많다.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콘텐츠 유료화는 언론도 실패한 일"이라며 "비슷한 구도에서 본다면 현실적으로 여전히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 `할 말하는 리서치` 외국사례 주목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독립리서치가 생겨나 주목받고 있다. 독립리서치는 기존의 리서치센터와 달리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리서치 제공을 목적으로 설립된 전문회사다. 외국만해도 독립리서치의 위용은 대단하다. 기업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만큼 오히려 할말은 하기 때문에 신뢰로 먹고 산다. 이들이 신뢰받는 이유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에는 약 250여개 독립리서치가 있으며 전문가 네트워크를 포함해 상당히 체계화돼 있다. 유럽에서도 50여개가 활동하고 있고 25년 이상의 업력을 가진 독립리서치도 존재한다.
유럽의 경우 50%에 육박하는 기관투자자가들이 독립리서치 서비스를 이용 중이며 독립리서치 활용이 확대되는 추세다. 최근 아시아 독립리서치 제공회사협회 회장은 '아시아 독립리서치 서밋'에서 "금융위기 이후 투자은행 내 리서치센터의 객관성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며 독립리서치 회사에 대한 수요 확대를 예상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판매사는 판매지향적인 균형감각을 지키려다보니까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마련이지만 글로벌 독립리서치의 경우 이에 좌우되지 않으면서 정보 제공 측면에서 효과적"이라며 "리서치센터는 지표 확인을 통한 후행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독립리서치는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선제적으로 접근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 국내도 독립리서치 시동 `관심 고조`
국내에서는 아직 독립리서치가 활발하지 않다. 과거에도 몇차례 시도는 있었지만 크게 흥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기존 증권사 리서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증시 분위기와 맞물려 다시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초에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출신이 의기투합해 독립리서치를 세웠다.
신한금융투자 리서치 센터장 출신인 강관우 올라FN 대표는 "유료콘텐츠에 대한 저항이 여전히 있지만 목표시장을 분명히 하면서 고급 리서치 컨텐츠가 필요한 고객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며 "초기 반응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 증권사 리서치의 경우 내용에 차이가 없고 기업 의도대로 끌려갈 가능성도 많다"며 "오랜 경륜이나 퀀트 등 여러 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고 정곡을 찌를 수 있는 직관과 독립성이 있는 것도 큰 차별점"이라고 자신했다. 기존 증권사 리서치가 갖출 수 없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올라FN은 지난 1월초 출범했고 개인 고객뿐 아니라 기관 투자가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강 대표는 최근 증권사들이 리서치 관련 비용 부담을 느끼고 인력을 축소하면서 독립리서치에서 기회가 있다고 판단해 또다른 센터장 출신인 임홍빈 대표와 의기투합했다. 리서치 분야 역시 기존 증권사나 소위 재야 주식전문가들이 다루지 못하는 쪽으로 잡았고 투자목표 기간도 증권사보다는 길지 않으면서 단타매매가 아닌 중기적인 시각을 실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대부분 독립리서치에 대해 냉소적이지만 증권사 리서치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필요성은 계속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독립리서치 시도는 있었지만 비용을 지불하는 유료화에 대한 거부감 탓에 실패했다"며 "하지만 최근 리서치에 대한 불신과 맞물려 관심이 부쩍 커질 수 있는 시기인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