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 여파로 지난 2008년의 '리먼 사태' 때와 같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브렉시트 충격으로 주요국 증시가 급락하고 신흥국 투자자금 유출 및 안전자산 선호 현상 등 당시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다만 리먼 사태 때와 달리 예측된 이벤트인 만큼 리먼 사태 만큼의 충격파가 크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그마나 위안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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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 본질은 경제가 아닌 정치
브렉시트의 파장은 리먼 사태와 비교해 먼저 위기의 본질에서 차이가 있다. 지난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의 둑이 한방에 무너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몰고갔다. 대형 금융사의 파산으로 금융시스템이 훼손되면서 급격한 글로벌 자금 경색으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브렉시트는 경제의 문제라기 보다 정치적인 사건이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형태다. 리먼 사태 때 리스크를 확산 및 증폭시킨 핵심적 경로가 금융 시스템이었다면 이번 브렉시트는 경제 시스템 자체가 고장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시장이 받는 충격이 과거 만큼의 '패닉' 수준은 아니다. 지난 24일 브렉시트로 인한 코스피지수 하락치는 3.09% 수준으로 2008년 9월15일 리먼브라더스 파산 때(-6.1%)보다 낮다. 코스피와 코스닥를 합친 외국인 순매도액 역시 631억원으로 통상적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국가 부도위험을 뜻하는 CDS프리미엄 상승폭은 6.5bp에 그쳐,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주요국에 비해 상승폭이 작았고 리먼 파산(23.6bp)에 비해서도 상승폭이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국거래소는 27일 '브렉시트에 따른 증시 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2008년 리먼사태 또는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와 달리 실체적 리스크가 부재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전례 없는 정치적 이슈로 향후 상황을 예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EU 중심의 글로벌 정책 공조와 한국의 양호한 펀더멘털 부각 등으로 금융시장 충격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리먼 사태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으나 브렉시트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널리 알려진 악재였다는 점도 근본적 차이점으로 꼽힌다. 영국 국민투표 결과가 투표 직전의 예상과 딴판으로 나오긴 했으나 브렉시트 자체는 이미 예고돼 있던 이벤트라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발빠른 대응을 보였다.
실제로 영란은행은 2500억파운드의 긴급 유동성을 준비했으며, 미 연방준비제도는 기존 통화스왑을 통해 필요시 신속히 유동성 공급에 나서는 등 시장 안정화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중앙은행은 현재보다 더 심각한 위기 상황을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미리 실시한 바 있고, 투표를 전후해 이같은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충분한 건전성과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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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4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 결과에서 탈퇴 결정으로 나타나자 장중 코스피지수가 급락하고 환율이 폭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명근 기자 qwe123@ |
◇ 영국발 혼란, 장기간 서서히 진행
이에 따라 브렉시트가 세계 경제에 몰고 올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7일 열린 금융권역별 대응체계 점검회의에서 "브렉시트는 실제로 현실화되는 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므로 리먼 파산으로 위기가 곧바로 발생한 2008년과는 다르다"며 "리먼 파산이나 2011년 미국신용등급 강등 등 직접적인 금융 시스템 훼손이나 자산가치 급변동을 유발한 위기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브렉시트가 실물 경기에 미칠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KTB투자증권은 "영국의 국민투표 이전부터 브렉시트 관련 불확실성은 이미 높아져 왔다"라며 "이는 역으로 불확실성 확대가 향후 제한되거나 또는 불확실성이 커지더라도 사안의 성격상 서서히 진행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율변동을 매개로 한 투기자본의 급격한 이동 및 시장교란, 심리적 요인 등이 제한된다면 브렉시트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또한 제한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EU에 속한 다른 유럽 국가들의 연쇄 탈퇴가 진행되거나 과도한 실물부문 둔화 등 브렉시트 이후 새로운 균형으로 이행하기까지 다양한 변수들이 남아 있어 영국발 혼란이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이제부터 장기적으로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브렉시트는 일회성 이벤트 혹은 단기 이슈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체계적 위험 요인으로 간주해야 한다"라며 "이제는 브렉시트가 파생할 수 있는 정치 이슈들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