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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특성 고려않는 밸류업 정책…그냥 주가 올려라?

  • 2024.04.22(월) 07:00

밸류업자문단, 코스피‧코스닥 시장구별 없이 논의
일본은 성장기업 모인 그로스 시장, PBR정책 배제
"밸류업 정책...그냥 주가 끌어올리라는 말" 비판도

금융당국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밸류업(value-up) 프로그램' 계획을 발표한 지도 두 달이 지나고 있다. 당국은 기업가치 제고를 상장기업 자율에 맡기고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세정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기업 자율에 맡기더라도 정부가 원하는 기업가치 제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내릴 수 있어야 한다. 즉 '기업가치 제고'라는 다소 추상적인 문구를 보다 얼마나 구체화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의미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지난 3월 밸류업 자문단을 구성하고 밸류업 프로그램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벌써 3번째 회의를 진행했다. 

다만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둘지, 주주환원을 많이 하라고 요구할지 등 구체적인 밸류업 기준은 아직 논의가 미적지근한 상황이다. 특히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의 특성이 다름에도 두 개 시장을 구별해 가이드라인을 논의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일본이 저PBR 정책, 즉 PBR이 1배 미만인 상장사들에게 수치를 끌어올리도록 권고한 정책을 상장 시장별로 구별해서 적용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결국 시장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밸류업 가이드라인이 나올 경우 여력이 없는 코스닥 상장사들은 금융당국의 밸류업 정책과는 동떨어져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코스피보다 코스닥이 PBR 더 높다

금융당국이 일본의 저PBR정책을 벤치마킹해 밸류업 정책을 내놓으면서 올해 초부터 국내주식시장은 다수의 저PBR종목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아직 일본처럼 PBR지표를 밸류업의 핵심 기준으로 삼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금융당국은 2월 밸류업 정책을 발표하면서 시장별·업종별 PBR·PER·ROE 등 주요 투자지표를 비교 공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만약 PBR을 밸류업 정책의 지표로 삼는다면 주식시장별 PBR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상장시장별 평균 PBR수치를 보면 오히려 코스피보다 코스닥의 PBR 수치가 더 높다. 

거래소에 따르면 18일 기준 코스피 PBR은 0.96인 반면 코스닥 PBR은 1.94로 코스피보다 2배 높다. 금융당국이 밸류업 정책을 발표한 2월 말에도 코스닥 PBR은 1.93인 반면 코스피 PBR은 0.96에 불과했다. PBR수치만 보면 코스닥보다 코스피가 밸류업을 적극 추진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다만 코스닥 상장사들의 평균 PBR수치가 더 높은 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코스피 상장사 대비 적기 때문이다. PBR은 기업이 가지고 있는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지를 보는 지표이기 때문에 분모인 자산이 많을수록 PBR수치는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 성장기업 모인 '그로스 시장' 제외한 일본

금융당국이 벤치마킹한 일본은 시장을 구분해 저PBR 조치를 하고 있다.

앞서 일본 도쿄증권거래소(TSE)는 기존 4개 시장(시장 제1부·시장 제2부·자스닥·마더스)으로 구성했던 주식시장을 지난 2022년 4월 '프라임·스탠더드·그로스' 3개의 시장으로 개편했다. 

이어 지난해 3월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조치'를 통해 상장사의 자본비용, 수익성, 밸류에이션 현황 평가 등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도록 권고하면서 그 대상을 프라임‧스탠다드 시장으로 한정했다. 

그로스시장은 성장 잠재력은 높지만 실적이 잘 나오지 않아 투자 위험이 큰 상장사를 모아 놓은 곳이다. 4월 기준 578곳이 그로스 시장에 상장해있다. 우리나라에 비유하면 기술력이 있지만 아직 매출과 이익은 잘 내지 못하는 코스닥 상장사나 기술특례 상장기업들이 해당한다.

프라임시장은 삼성전자와 같은 안정성 높은 대기업이 속해 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제출하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사들만 모여 있는 탄탄한 시장이다. 스탠더드시장은 프라임만큼은 아니지만 적정 수준의 유동성을 갖추고 중장기적으로 성장이 가능한 중견기업들이 모여 있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 달리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구별하지 않고 밸류업 정책을 전체 상장사에 일괄 적용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2월 코스피 809사, 코스닥 1598사(2023년 말 기준) 전체를 대상으로 밸류업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는 밸류업 자문단도 코스피·코스닥 시장 특성을 구별해서 정책을 논의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PBR이라는 지표를 기준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면 PBR이 높은 코스닥 상장사들은 밸류업 정책을 적용하기가 애매모호해진다. 

또다른 문제는 저PBR 개선의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는 배당,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역시 현금이 충분한 상장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현금 등 자본여력이 부족한 코스닥 상당사들은 금융당국이 원하는 수준의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구별해 각 시장별 특성을 살린 밸류업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에 담길 내용은 결국 각 상장사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적어내는 것인데 기업지배구조보고서도 내지 않는 코스닥 상장사들이 이를 제출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밸류업 정책을 이행하는 곳은 코스피 상장사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도 회사가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일인데 현금없는 코스닥 상장사들은 사실상 적극적인 주주환원이 불가능하다"며 "결국 근본적인 논의는 빠져있고 금융당국이 말하는 기업가치 제고는 그냥 주가 끌어 올리라는 의미로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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