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양시장이 초여름 뙤약볕처럼 뜨겁다. 건설사들은 인기 있는 택지지구나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뿐 아니라 땅을 확보해두고도 시장 형편 때문에 묵혀뒀던 물량까지 시장에 쏟아내고 있다. 수요자들은 옥석가리기에 여념이 없다. 돈 될만한 아파트는 경쟁률이 '수백대 1'에 달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미분양 물량도 나오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요즘 분양시장의 속살을 들여다 봤다. [편집자]
건설사들이 주택 사업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시장 활성화 대책과 저금리 기조가 맞물리며 주택 수요가 회복세를 보이자 이를 기회 삼아 사업을 벌리고 있는 것. 금융위기 이전 호(好)시절 땅을 샀다가 사업성 악화로 장기간 묶였던 사업부터 새로 확보한 사업까지 분양시장에 풀어내는 등 이른바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게 요즘 주택시장을 대하는 건설사들의 모습이다.
작년부터 차오르기 시작한 아파트 분양 '밀물'은 최근 들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변동성이 큰 경기 흐름을 감안하면 올 하반기 또 어떤 변수가 시장을 냉각시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인 이 달 6만채 가까운 물량이 쏟아지는 이유다. 한 대형건설사 주택 담당 임원은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을 때 빨리 사업 물량을 털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 '힐스테이트 태전' 모델하우스. 지난달 3000여가구를 동시에 내놓은 이 단지는 현대건설이 금융위기 직전 사업을 계획해둔 사업지다. /윤도진 기자 spoon504@ |
◇ 주택사업 늘려라
최근 건설업체들은 호황을 맞은 주택사업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시공능력평가 6위 GS건설이 대표적이다. 이 건설사는 최근 연간 주거상품 공급계획을 아파트(주상복합 포함, 임대·조합원분 포함) 2만9175가구, 오피스텔 1132실로 늘렸다.
올 초 잡았던 1만7889가구보다 63.1%(아파트 기준) 많은 규모다. 사업장 수는 연초 18개에서 33곳으로, 아파트 일반분양 물량은 1만2837가구에서 2만3328가구로 2배 가까이 확대했다. GS건설은 2013년까지는 한 해 5000~6000가구의 주택을 공급해 왔다.
최근에는 대형 건설사들이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검토하지 않았던 조합주택사업에까지 손대고 있다. 충남 천안, 충북 청주 등 주로 지방 물량이다. 한 주택업체 관계자는 "조합주택은 종전까지 중견건설사들의 사업 영역이었지만 요즘은 GS건설뿐 아니라 현대건설도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강남 재건축 수주를 위해 새 브랜드 런칭을 계획할 만큼 적극적이다. 올 초에는 과거 재건축 수주전 과열 시기 문제가 됐던 임직원들을 재기용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대림산업, 롯데건설 등도 최근 주택사업 인력을 보강했으며, 두산건설 역시 최근 주택사업 강화 차원에서 이병화 건축본부(BG)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 분양가 더 받겠다
건설사들 입장에서 주택사업의 관건은 '빠른 시간 안에, 많은 물량을, 높은 가격에' 팔아치우는 것이다. 최근에는 청약 대기수요가 늘어나자 분양가를 슬금슬금 올리는 경우도 잦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의 3.3㎡ 당 평균 분양가는 지난 1월 1557만원에서 5월에는 1962만원으로 405만원 상승했다. 같은 기간 경기도는 991만원에서 1051만원으로 60만원가량 올랐다.
대림산업이 재건축한 서울 서초구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는 2013년 말 1회차 분양때 분양가가 3.3㎡당 평균 3985만원이었지만 작년 10월 2회차 분양 때는 3.3㎡당 평균 4130만원, 최고(전용 112㎡) 5000만원까지 분양가가 높아졌다.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의 경우 2013년 초기 분양물량은 3.3㎡당 900만원대에 나왔지만 요즘은 1100만원선까지 올랐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전문위원은 “분양시장에 청약자들이 몰리자 이를 틈타 건설사들이 공격적으로 분양가를 높이고 있다”며 "주변 시세보다 싼 새 아파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 서울과 경기도에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지역에서 분양했던 4월을 제외하면 연초 이후 분양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자료: 부동산114) |
◇ 공짜는 없다
인기지역 새 아파트는 발코니 확장비용은 물론 옵션 비용까지 모두 챙겨서 받는다.
'위례 우남역 푸르지오'의 경우 3.3㎡ 당 평균 분양가는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아 1730만원으로 책정됐지만 발코니 확장비(83㎡ A타입 1390만원), 추가선택 품목(방1 드레스룸 패키지 210만원), 천장형 에어콘 설치 등 옵션을 포함하면 실 분양가는 3.3㎡ 1800만원 안팎까지 올라간다. 이는 작년 분양한 위례자이(1799만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2~3년 전 미분양이 속출할 당시에는 건설사들이 중도금 무이자 융자 등 금융지원에 나섰지만 지금은 '중도금 무이자' 판촉을 찾아보기 어렵다. 계약금도 진입 문턱을 낮추기 위해 사용했던 '1000만원 정액제' 방식은 거의 사라졌다. 일부 단지는 분양가의 20%를 한번에 받는다.
▲ 위례 우남역 푸르지오 유니트 안 거실 펜트리의 경우 외장 문은 발코니 시공비에 포함된 품목이지만 내부 수납장은 따로 비용을 추가해야 하는 플러스옵션 품목이다. /윤도진 기자 spoon504@ |
수요가 넘치는 분양시장이라고 해서 건설사들이 마냥 고자세만은 아니다. 입지가 떨어지는 단지나 주변 시세보다 분양가가 높은 단지는 발코니 무료 확장, 옵션 무료 설치 등 '당근'을 내건다.
부영주택은 지난 2013년 위례신도시에서 공급한 ‘부영 사랑으로’ 아파트가 청약에 참패하자 전 가구 인테리어를 무상으로 업그레이드하며 미분양 물량을 털어냈다. 하지만 이 단지는 최근까지도 입주자들과 시공 품질 및 브랜드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다.
부가 혜택으로 고분양가를 가리는 '꼼수'도 등장했다. KCC건설이 지난주 경기도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분양한 '한강신도시2차 KCC스위첸은 요즘 보기 드물게 중도금 무이자에 더해 발코니 확장, 현관 중문과 주방 쿡탑·빌트인오븐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분양에 나섰다.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3.3㎡당 평균 1013만원으로 주변 시세보다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