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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계급사회]대한민국에서 임대주택은……

  • 2020.12.01(화) 11:13

엘사‧휴거 등 비하 은어까지…임대주택에 대한 인식 저조
다가구‧비주택 리모델링 차별화…공급량·계층 확대 고민 필요

"가난한 사람이라고 나쁜 집에 살 필요는 없다"
"사회주택(임대주택의 한 유형)이 살고 싶지 않은 곳으로 낙인찍혀 있지 않아 중산층 중에서도 사회주택 거주 수요가 있다"(네덜란드 사회주택 관계자)

엘사=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집에 사는 사람
휴거=휴먼시아(LH의 임대주택 브랜드)에 사는 거지

대한민국 임대주택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임대주택 공급 확대로 서민들의 주거복지를 실현하겠다는 목표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여전히 임대주택 주민들은 차가운 시선을 느낀 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전세시장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가구 주택 매입임대나 호텔과 공실 상가 리모델링을 통한 임대주택 공급 방안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임대주택 내에서도 계급이 나뉘며 엘사와 휴거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들도 나온다.

이 같은 임대주택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임대주택의 품질개선이나 공급확대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하는 문제여서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 공급에 주력했던 임대주택 대상을 중산층으로 좀 더 확대하고 일반 주택과 섞여 거주할 수 있는 '소셜 믹스'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복잡한 공공임대, 낮은 인식도 문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공공임대주택 유형은 총 7가지(공공주택 특별법 기준)다. 입주자격과 임대료, 거주면적과 거주기간이 임대 유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임대주택 유형은 수요자의 경제적 수준과 거주 여건 등에 맞추기 위해 나눠진 것이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복잡한 유형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소득기준과 공급 대상이 복잡해 수요자들이 제대로 임대주택의 혜택을 누리기 어렵고, 유형에 상관없이 '임대'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일반 시민들의 인식도 낮아지고 있다.

실제 서울시가 저소득 청년층 주거 부담 완화를 위해 추진하는 청년임대주택은 인근 주민들이 빈민주택으로 인식하고 집값 하락을 우려해 건립을 거부하는 '님비(NIMBY)'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복잡한 유형과 함께 질 낮은 주거환경도 원인이다. 대다수 임대주택이 도심 외곽 지역에 동떨어져 있어 공실인 경우도 많고, 품질 자체도 일반 주택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하자 민원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총 3만5778건의 하자 민원이 제기됐다. 최근 들어서는 아파트 균열 하자 피해도 늘면서 작년에만 86건이 접수됐다.

결국 임대주택은 품질이 낮고 사회취약계층이 사는 곳이란 인식이 강해지면서 엘사와 휴거라는 은어까지 만들어졌다. 정부가 임대주택 유형을 통합하고, 소셜 믹스를 통해 임대주택과 일반주택 구분 없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쉽지 않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공임대가 민간 주택과 비교되다보니 품질이 낮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아파트의 경우 도심 외곽에 위치하고, 도심 내에서는 정부가 직접 지어 공급하는 형태가 아닌 구축을 매입해 공급하는 형태(매입임대)가 많다보니 관리도 어렵고 품질도 낮다"고 지적했다.

최경호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장은 "공공임대 도입 초기부터 특정 단지에 최하위계층만을 대상으로 입주하도록 했기 때문"이라며 "이들 지역에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면서 인식이 지속적으로 나빠졌다"고 설명했다.

◇ 임대 꼬리표 떼려면

지난 달 발표한 서민주거 안정방안은 임대주택 문제에 또 다른 악재가 되고 있다. 전세시장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 채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을 더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방안에는 다가구 등을 매입해 전세로 공급하거나 호텔과 공실 오피스 등 비주택을 주거용으로 리모델링해 임대로 공급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단기간 임대주택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비아파트인데다 과거 실패했던 사례도 있어 서민들의 거부감이 더 커진 상태다. 엘사와 휴거는 그나마 아파트 형태의 임대주택이란 점에서 임대주택 내에서도 주거 환경에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주거복지 선진국인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등은 우리나라의 공공임대 역할을 하는 사회주택 비중(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이 높고 일반 주택과 비교해 외관 디자인에서 차이가 없다. 오히려 디자인에서 차별화한 사회주택들이 많다.

내부 주거 환경 역시 일반 주택과 다르지 않다. 사회주택에 산다고 해서 일반주택 거주자에 비해 경제적 능력 등이 부족하지 않고, 설령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사회주택이 일반주택보다 질적으로 떨어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시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관련기사 ☞[남의집살이 in 유럽]⑦취준생도 안정감…"주거는 권리", [남의집살이 in 유럽]⑨-1"가난한 사람, 나쁜 집에 살 이유는 없다"

결국 비아파트 주택이라도 아파트와는 차별화된 콘셉트로 '살기 좋은 집'의 성공사례가 나와주는게 관건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사회주택 박물관 및 사회주택 전경(사진: 노명현 기자)

정부도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주거 품질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2025년까지 장기 공공임대 재고율 10%를 확보, OECD 평균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공공임대주택 공급평형을 넓히고 입주자격을 완화해 일부 중산층도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질 좋은 평생주택'을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최경호 위원장은 "임대주택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저소득층 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충분한 물량을 확보하고 소셜 믹스도 시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공급 대상을 중산층으로 넓히는 방안을 적극 고민해야 하는데,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임대주택에 함께 산다면 단지 전체적으로 소비력도 높아져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중산층 입주로 임대주택 입주 기회가 사라지는 저소득층을 위한 새로운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영 교수는 "지금처럼 주택 기금을 활용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계층을 중산층으로 넓히기에는 한계가 있는 탓에 공공임대 공급 대상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대상을 확대하려면 주택기금 대신 더 많은 재정 투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종합부동산세로 확보한 재정 등을 활용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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