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안준형 기자 ] "그 안에 방부제 들었죠?"
지난 2013년부터 중국에서 참치캔을 팔고 있는 동원F&B는 예상치 못했던 난관에 부딪혔다. 아직 중국 소비자들에게 참치캔이 생소해서다. 참치캔의 유통기한이 5~7년에 이르는 것을 보고 방부제 사용을 의심할 정도다.
김재성 동원식품상해유한공사 법인장은 "중국인들도 참치샐러드나 샌드위치로 참치를 먹고 있는데, 평소 먹던 참치가 참치캔에서 온 것인지 잘 모른다"며 "국내서도 참치캔이 대중화되는데 6년정도 걸린 만큼, 참치캔 문화가 중국에 정착되기 위해선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 '끓인' 라면과 '차가운' 샌드위치의 교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교묘히 섞인 중국은 엄밀히 말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 테두리는 매년 높아지고 있다. 인건비, 임대료 등도 치솟고 있다. 하지만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순 없다. 포화된 한국 시장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지난달 말 중국 상하이에서 국내 식음료 기업 주재원들로 부터 중국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해 들어봤다. 그들은 “식품보다 문화를 먼저 팔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맛과 품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음식 문화가 먼저 정착되지 않으면, 중국 시장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문화를 보급하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보다 시간이 몇 배 걸린다. '신라면'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운 농심은 중국에서 성공한 몇 안 되는 국내 식품 기업 중 하나다. 지난해 중국에서만 매출 1억8000만달러를 거뒀다. 하지만 1999년 중국에 진출할 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고민거리 중 하나는 라면을 끓여 먹는 문화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중국인은 보통 봉지라면을 빈 그릇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부어 익혀 먹었다. 팔팔 끓은 냄비에 라면을 넣어 가스 불로 5분을 더 익혀 먹는 한국과 비교하면 이해가 안 되는 문화였다. 지속적인 시식 행사 등을 통해 끓여 먹는 라면이 더 맛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
▲ 농심이 중국의 한 대형마트 시식행사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다. (사진 농심 제공) |
구명선 농심 중국 영업본부장은 “중국인들은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불려 먹는 게 익숙했다”며 “가정에는 가스레인지, 냄비 등 라면을 끓여 먹을 만한 도구도 마땅치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끓인 라면을 주는 라면 시식 행사 등을 통해 조금씩 한국의 라면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중국인들에게 차가운 음식인 샌드위치가 익숙해지는 데만 5년 넘게 걸렸다. 중국인들이 차가운 것보다 따뜻한 음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맥주도 냉장고에 넣지 않고 상온에서 보관해 마실 정도다. 박진호 SPC 상하이법인 마케팅팀장은 "10년전만 해도 중국에서 샌드위치는 거의 안팔렸다"며 "그런데 4~5년전부터 샌드위치가 파리바게뜨 매장 매출의 10%가 될 정도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중국 주류 시장을 두드리고 있는 하이트진로는 한국 술 문화를 어떻게 중국에 퍼뜨릴지 고민이다. 백주가 지배하고 있는 중국 주류 시장에 소주를 팔기는 쉽지 않은 상황. 중국인에게 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40도가 넘는 백주에 비하면 싱겁다. 무작정 ‘소주를 마셔라’고 시음행사를 여는 것도 한계가 있다.
▲ 상하이에 위치한 국내 치킨 프렌차이즈 매장에서 중국인들이 '치맥'을 즐기고 있다. (사진 하이트진로 제공) |
이에 따라 회사 측은 한국 술 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지난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자, 치맥(치킨과 맥주)이 덩달아 잘 팔렸던 것이 좋은 예다. 성관기 하이트진로 상하이지사 팀장은 “소주를 함께 팔 수 있는 술집이나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中 자국식품 불신..韓업체에 기회
문화를 팔기에 앞서 먼저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다. 오리온은 중국에서 초코파이를 팔 때 국내 광고 콘셉트였던 정(情)을 버렸다. 대신 중국인들이 인간관계의 기본으로 여기는 인(仁)을 정면에 내세워, 중국인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오리온은 올해 중국에서만 4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동원F&B가 중국어로 표기된 용기를 새로 만들어 참치캔을 수출한 것은 중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사례 중 하나다. 식음료 안전사고가 많은 중국은 자국 식품에 대한 불신이 깊다. 그래서 외국산 식품을 선호한다. 특히 한국산 식품의 안정성에 대해 신뢰하는 편이다. 중국어보다 한국어가 쓰인 참치캔을 더 믿는 다는 얘기다. 김재성 법인장은 “일년 간 시행 착오를 겪었다”며 “올해부터는 한국에서 파는 참치캔에 중국어가 쓰인 스티커를 붙여 팔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훈 CJ푸드빌 상하이 법인장은 "중국에선 식품안전 사고가 빈번하다보니, 중국 소비자들은 식품을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며 "과일 주스를 만들때도 눈 앞에서 과일을 갈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CJ오쇼핑도 중국 사업 초기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홈쇼핑에 대한 인식 자체가 워낙 나빠서다. 신우균 동방CJ 부장은 “중국에서 홈쇼핑은 노인들이 물건을 사는 채널이었다”며 “젊은이는 홈쇼핑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CJ오쇼핑은 물건을 팔기보다 신뢰를 쌓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국내와 달리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제품 100%를 창고에 쌓아두고 팔았다. 주문 다음 날 바로 제품이 배송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신 부장은 “홈쇼핑은 본질적으로 물건을 보지 않고 사는 것”이라며 “고객이 믿지 않으면 절대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