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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 농심, 적수를 만났다

  • 2016.02.05(금) 08:59

'닮은꼴' 농심·오뚜기, 라면 시장서 격돌

목표달성. 박준 농심 사장이 병신년 새해를 맞아 발표한 경영지침은 농심의 경영스타일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거나 어려운 고사성어를 쓰지 않고, 간결하게 핵심만 전달한다. 이는 제품명 작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새우깡, 너구리, 신라면, 수미칩, 짜왕 등 제품명을 에둘러 짓지 않고, 핵심을 찌른다.

돌파.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2015년 신년사에서 화두로 던진 메시지다. 함 회장은 “2014년 오뚜기는 라면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며 “라면시장에서 취급률 목표 100% 등 목표를 올해 확실하게 돌파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돌풍과 달리 돌파에는 구체적인 타겟과 방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개성상인의 피가 흐르는 함 회장은 단순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농심과 오뚜기는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은 식품회사다. 회사보다 제품을 앞세우고, 브랜드보다 품질을 중요시 한다. 창업자인 신춘호 농심 회장과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 일가는 언론 등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경영에만 집중한다.

농심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땀 흘려 일한 결실에 감사하자는 성실이고, 오뚜기의 생활신조는 ‘머리 쓰고 땀 흘리자’다. 땀은 두 회사의 근성 있는 영업력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1등 DNA가 각인됐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농심은 라면업계에서, 오뚜기는 식료품에서 1등 제품군을 거느리고 있다.

그간 오뚜기와 농심은 부딪힐 일이 많지 않았다. 오뚜기가 1988년 진라면을 출시하며 라면 시장에 진출했지만,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았다. 라면 시장에서 농심은 삼양라면, 팔도 등과 경쟁했고, 오뚜기는 다른 식품분야에서 대상과 CJ제일제당 등과 싸웠다. 라면 경쟁은 싱거웠다. 농심은 독보적인 1위를 지켜나갔다.

하지만 2013년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오뚜기는 삼양식품을 제치고, 국내 라면시장 2위에 올랐다. 1등 농심과 2위는 큰 격차가 났지만, 삼양식품과 오뚜기의 무게감은 달랐다. 오뚜기가 1등이 되는 법을 알고 있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오뚜기는 카레, 참기름, 후추 등 24개 식품군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하고 있다. 케첩과 마요네즈는 글로벌 회사와의 경쟁을 물리치고 압도적인 점유율을 지키고 있다. 1등 제품에서 남긴 이윤을 2등 제품에 지원사격하는 방식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인다.

한발 늦게 뛰어든 시장에서도 오뚜기는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100원이라도 싸게 팔아 야금야금 점유율을 늘려나간다. 오뚜기는 진라면에도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특히 작년 10월 출시된 진짬뽕은 소비자들로부터 제품력으로 인정을 받았다.

 

▲ 농심이 제공한 닐슨코리아 라면 점유율. 농심은 소규모 라면 회사의 점유율을 제외하고, 오뚜기와 삼양식품 등 대규모 라면회사 실적만으로 라면 점유율을 구했다.

오뚜기가 제공한 닐슨코리아 자료에 따르면, 국내 라면 판매 수량 기준 오뚜기 점유율은 2014년 18.3%에서 2015년 20.6%로 늘었다. 판매 금액 기준으로는 2014년 15.7%에서 지난해 17.6%로 증가했다. 반면 농심의 수량기준 점유율은 2014년 58.9%에서 2015년 57.5%로 줄었다.

라면 왕국 농심의 지위는 여전히 굳건하다. 신라면,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등 매출이 1000억원이 넘는 라면 브랜드를 4개나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매출 2억1000만 달러로 사상최대치를 기록했고, 국내서 짜왕으로 프리미엄 라면 시장을 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국내 시장을 내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성적표(점유율)를 받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농심은 또 다른 과제도 있다. 오뚜기가 성장동력으로 라면을 밀고 있다면, 농심은 생수 사업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국내 1위 브랜드로 키워놓은 삼다수 사업권을 광동제약에 허탈하게 넘겨준 농심은 백산수에 집중하고 있다. 백산수 공장에 2000억원을 투자하고, 국내와 중국 시장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라면 시장의 수성(守城)과 생수 시장의 공성(攻城)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두 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작년 라면 시장은 또 다시 2조원대를 회복했다. 소비자들도 새로운 맛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독보적인 1등이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면서 식어가던 국내 라면 시장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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