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주부 박미경(49세, 가명)씨는 정수기, 비데 등을 렌탈하고 있다. 미세먼지가 심해지면서 작년부턴 공기청정기도 새로 들여놨다. 한 달 렌탈비만 13만원에 이른다. 박 씨는 "사서 쓰면 (가격이) 더 싸겠지만, 필터 교환과 소독 등이 엄두가 나지 않아 렌탈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 말 정수기에서 시작된 국내 랜탈 시장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공기청정기와 음식물쓰레기 등으로 생활가전제품이 다양해지면서 박 씨와 같은 '헤비 유저'(Heavy User)가 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 5가구 중 1가구가 생활가전제품을 렌탈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 렌탈 시장 급성장
최근엔 렌탈 문화가 생활가전을 넘어 일상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렌탈 품목이 패션·그림·장난감 등으로 다양해지면서다. 그림렌탈회사 오픈갤러리는 그림을 크기에 따라 3만9000원에서 40만원에 빌려주고 있고, 레고대여회사인 레츠고는 장난감 레고를 9900~2만9900원에 대여해준다. 여행지에서나 빌려 타던 렌터카서비스도 장기렌터카 시장이 크면서 올해 시장규모가 65만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따라 국내 렌탈 시장 규모도 급성장하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국내 렌탈 시장은 25조9000억원(산업기계·장비 포함)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1년 15조5000억원이던 시장 규모가 5년 만에 67% 성장 것이다. 가전생활용품 렌탈업체 코웨이 매출도 2010년 1조5839억원에서 지난해 2조3152억원으로 늘었다.
대기업도 잇따라 렌탈 사업에 발을 들이고 있다. 작년 현대홈쇼핑은 600억원을 투자해 현대렌탈케어를 600억원에 설립, 렌탈 사업에 뛰어들었다. 롯데그룹도 작년 렌터카업체인 KT렌탈(현 롯데렌탈)을 1조200억원에 사들였다. LG그룹은 2009년 정수기 시장에 진출하며, 최근 렌탈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 "비싸니까 팔지 말고 빌려주자"
렌탈산업은 '불황을 먹고 사는 산업'으로 불린다. 코웨이가 정수기 렌탈 사업을 처음 시작한 것도 IMF 광풍이 불던 1998년이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자서전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에 따르면, IMF때 코웨이 정수기 매출이 절반으로 줄자 고심 끝에 찾아낸 방식이 렌탈사업이었다. 윤 회장은 "비싸니까 팔지 말고 빌려주자"는 발상으로 렌탈사업을 구상했다고 한다.
권명준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경기침체와 불황으로 청년층부터 장년층까지 구매력이 약화되면서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렌탈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저성장 내수 기반 경기상황에서 렌탈 시장은 커진다"고 말했다.
여기에 '굳이 새것을 사야 되나'는 소비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대여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지고 있다. 최근엔 렌탈에서 한 단계 진화한 공유문화가 확산될 정도로 소비자들의 소비문화가 '소유'에서 '사용'으로 전환되고 있다.
◇ 렌탈 바가지 주의
렌탈 시장이 커지면서 소비자 불만도 많아지고 있다. 지난달 얼음정수기에서 니켈 성분이 검출된 코웨이 사건이 대표적이다. 아직 공식적인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정수기 렌탈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계기가 됐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렌탈서비스 민원 중 정수기 불만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렌탈비가 무조건 싼 것도 아니다. 일시불로 구입할때보다 오히려 비싸 소비자가 바가지를 쓰는 경우도 많다. 이번 달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바디프랜드 안마의자의 렌탈비용이 일시불 가격보다 최대 49만원 더 비싸다고 지적했다. 넥센타이어의 타이어 렌탈도 일시불로 살 때보다 7만4000원(2개 기준)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