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상속처럼 보였다. 작년 9월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이 별세하며 남긴 오뚜기 주식은 46만5543주(13.53%)에 이르렀다. 당시 주가로 3500억원 수준. 상속세·증여세법에 따르면, 30억원 이상의 상장 주식 증여세는 50%다. 고 함 명예회장의 자녀들이 내야 할 세금은 17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인생에서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옛말처럼 오뚜기가(家)에 상속세는 현실이 됐다. 주식은 소유자가 죽는 날 바로 직계가족에 상속되고, 상속자는 6개월 이내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고 함 명예회장의 장남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재벌이라도 천억원대 상속세는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작년 9월 한 상속세·증여세법 전문 세무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왜 그랬을까?"라며 의아해했다. 고 함 명예회장은 1990년대 말부터 경영권을 함영준 회장에게 넘겼고, 주식 상속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덜 내기 위해 갖은 편법을 동원하는 여느 기업들과 비교하면, 오뚜기 상속은 오히려 특이해 보였다.
결국 지난달 함영준 회장이 주식 전량을 상속받았다. 함 회장은 오뚜기 지분 28.91%를 가진 최대주주에 오르며,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 지었다. 천억원대로 추산되는 상속세는 5년간 분납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뚜기 상속을 '이해할 수 없다'는 세금 전문가의 의견과 일반인의 시각은 달랐다. 오뚜기가 승계과정에서 천억원대 상속세를 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앞으로 '진라면'만 먹어야겠다"는 댓글을 남기며, 박수를 보냈다. 그간 수많은 기업들이 승계과정에서 갖은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는 것을 지켜본 네티즌에게 '정직하게 상속세를 낸' 오뚜기가 특별하게 다가온 모습이다.
다시 보니, 철저하게 준비된 상속이었다. 고 함 명회예장은 2015년 11월 밀알복지재단에 오뚜기 3만주(0.87%)를 기부했다. 300억원대 주식을 선뜻 내놓으면서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뒤늦게 기부사실이 전해지면서 노기업인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는 별세 사흘 전인 2016년 9월9월엔 10만5000주(3.06%)를 오뚜기재단에 기부했다. 법대로 상속세를 내라는 것도 고인의 뜻이었을 것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고 함 명예회장의 생전 지론이었다고 한다. 오뚜기 관계자는 "특별할 것 없는 (법에 따른)일반적인 상속"이라며 언론의 조명 받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다. '특별할 것 없는' 오뚜기 상속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 2011년 오뚜기 센터에서 열린 '새 생명 3,000명 탄생 기념행사'에 참석한 고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 오뚜기는 1992년부터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후원해 현재까지 4000명이 넘는 심장병 아동들을 후원했다. [사진 = 한국심장재단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