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아이스크림시장이 녹아내리고 있다. 반값 아이스크림 탓이다. 아이스크림이 제값을 받지 못하면서 빙과회사들은 수익 악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회사들이 정찰제 도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10년 넘게 굳어있는 '반값 아이스크림' 시장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빙그레는 내년부터 투게더 등 일부 아이스크림에 대해 가격 정찰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투게더는 유통채널에 따라 4000원에서 7000원까지 다양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가격대가 천차만별인 투게더를 내년부터는 5500원 정가에 판매하겠다는 계획이다. 빙과업계 1위 롯데제과도 내년부터 가격 정찰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빙그레 관계자는 "지금 아이스크림시장은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수익 구조를 갖고 있다"며 "현재 상태에서도 적자가 나는 상황이니 기왕이면 제값을 받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그는 "빙과업체들이 극한상황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국내 아이스크림시장이 기형적인 수익구조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반값 아이스크림' 영향이 크다. 2000년대 초반부터 아이스크림은 정가보다 50% 할인된 가격에 팔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제값 주고 사는 소비자가 바보가 되는 시장이 됐다.
'반값 아이스크림' 시장을 주도하는 판매 채널은 동네슈퍼다. 동네슈퍼는 대형마트와 가격경쟁에서 밀렸지만 아이스크림만큼은 경쟁력이 있는 상황이다. 여름철 쉽게 녹는 아이스크림 특성상 집 근처 동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동네 슈퍼는 아이스크림 시장의 70~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동네슈퍼가 대형마트보다 유일하게 바잉파워(구매 협상력)가 센 것이 아이스크림"이라며 "소비자들은 쉽게 녹는 아이스크림을 대형마트보다 집에서 가까운 동네슈퍼에서 산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네슈퍼는 반값 아이스크림을 미끼상품으로 내세우고 있고, 빙과업체들은 동네슈퍼에 끌려가다 보니 출혈경쟁의 늪에 빠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서울 한 동네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이 500원에 할인 판매되고 있다. [사진 = 안준형] |
빙과업체가 정찰제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롯데제과가 일부 아이스크림에 대한 정찰제를 도입했다. 이후 빙그레 등 일부 업체가 동참했지만 정찰제는 자리잡지 못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동네슈퍼에서 너희 아니면 다른 곳에서 물건을 받겠다고 나서면서 정찰제는 흐지부지됐다"며 "빙과회사 모두가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다 보니 출혈경쟁은 더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빙과업체는 어쩔 수 없이 아이스크림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어차피 반값에 팔릴 것이니 출고가격을 비싸게 책정해 수지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10년 넘게 반값 아이스크림이 고착화되면서 '제값에 파는 회사도, 제값에 사는 소비자도' 사라졌다.
하지만 '반값 아이스크림'은 소비자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구입할때 싸게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제값을 주고 사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고무줄 가격정책이 국내 아이스크림 브랜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제품력이 아닌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면서 국내 아이스크림 브랜드력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반면 편의점을 중심으로 고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외국산 아이스크림 '하겐다즈'는 국내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하겐다즈 매출은 2009년 199억원에서 올해 508억원으로 10년만에 2배 넘게 늘었다. 2010년부터 흑자전환에 성공해 올해는 9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빙과 업체 관계자는 "이제는 가격이 아닌 신제품 경쟁과 브랜드력 제고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반값 아이스크림 시장을 정상화시키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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