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업이건 승계작업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오너 기업일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오너 일가가 다음 대(代)에도 계속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내부에선 많은 시나리오를 짭니다. 그 과정을 비밀리에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기업의 승계작업에 불신의 시선을 보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의 승계작업이 늘 의뭉스럽지만은 않습니다. 투명하게 진행하는 곳도 많습니다. 신세계가 대표적입니다. 국내 유통업계 강자인 신세계는 오래전부터 승계작업을 차근히 진행해왔습니다. 신세계의 승계 구도는 명확합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자녀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의 영역을 명확히 나눠뒀습니다.
정용진 부회장은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사업 등을 책임집니다. 정유경 총괄사장은 백화점과 면세 및 화장품 사업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영역구분이 확실하다 보니 잡음이 없습니다. 어머니인 이명희 회장이 승계의 핵심인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의 지분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분쟁의 소지를 없애는 안전판 역할을 합니다.
신세계는 꽤 오랫동안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의 영역을 확실히 구분하는 데 힘을 쏟아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영역이 거의 확실히 나뉘었습니다. 이명희 회장의 지분 승계 시 잡음을 없애기 위한 사전 작업인 셈입니다. 다만 아직 일부 지분 및 사업은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근 신세계가 진행하고 있는 계열사 간 지분 양도 및 매입 등이 바로 이 부분을 해소하려는 목적입니다.
가장 최근 광주신세계의 대형마트 사업 양도가 대표적입니다. 광주신세계는 보유하고 있던 이마트 광주점을 이마트에 양도키로 했습니다. 이로써 광주신세계는 온전히 백화점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습니다.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 간 영역 구분에 따라 지분 및 사업 구조도 그것에 맞게 재편한 겁니다.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사진=이명근 기자/qwe123@). |
광주신세계는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의 대표적인 '교집합'입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광주신세계의 최대주주는 정 부회장입니다. 지분율이 52.1%에 달합니다. 하지만 광주신세계는 백화점입니다. 따라서 정 총괄사장이 운영합니다. 최대주주는 백화점 사업에 관여하지 않는 정 부회장인 반면 사업은 정 총괄사장이 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심지어 그동안 이마트 광주점까지 안고 있었습니다.
이번 양도로 이제 이마트 광주점은 정 부회장의 이마트 밑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마트 광주점을 제외한 광주신세계는 오롯이 백화점 사업만 남았습니다. 향후 정 부회장이 가지고 있는 광주신세계 지분은 정 총괄사장에게 넘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야만 신세계가 그려 놓은 '정용진=대형마트, 정유경=백화점'이라는 승계 시나리오가 맞아떨어지니까요.
하지만 이것을 언제 정 총괄사장에게 넘겨줄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지금까지 신세계가 진행해 온 승계 시나리오상 정 부회장은 이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높은 건 분명합니다. 정 부회장이 이 지분을 정 총괄사장의 ㈜신세계에 매각하면 사업구조뿐만 아니라 지배구조 정리에도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지분을 승계할 땐 실탄이 필요합니다. 정 부회장이 어머니인 이명희 회장으로부터 이마트 지분을 증여받으려면 증여세를 내야 합니다. 광주신세계 지분 매각대금이 그 재원이 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현재 정 부회장이 이명희 회장의 이마트 지분 18.22%를 증여받기 위해 내야 할 증여세 규모는 5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됩니다. 따라서 광주신세계 지분은 정 부회장에게 무척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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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정 부회장 입장에선 광주신세계의 주가가 가장 고점일 때 매각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광주신세계의 주가는 지난 6월 14일 24만5500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계속 내리막길입니다. 지난 22일 종가는 17만4000원으로 최고점 대비 29.1%나 하락한 상태입니다. 증여세를 위한 실탄 마련이 시급한 정 부회장에겐 광주신세계의 주가에 신경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시점에서 정 부회장이 보유한 광주신세계의 지분가치는 1900억원 정도입니다. 증여세를 내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정 부회장은 광주신세계의 주가가 올라줘야만 승계를 위한 실탄 마련이 좀 더 수월해집니다. 따라서 광주신세계는 향후 신세계의 승계 과정에서 무척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일단 업계에선 신세계가 우선적으로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의 사업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광주신세계뿐만 아니라 신세계페이먼츠 등 공동기업에 대한 지분 정리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양쪽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깔끔하게 정리하면 이명희 회장의 지분 증여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어찌 됐건 신세계의 승계작업은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 중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가 등 아직 여러 가지 변수가 남아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남매경영이라는 큰 틀을 바탕으로 이에 맞게 차근히 준비해나가는 모습은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업계에선 신세계의 승계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키(Key)는 이명희 회장이 쥐고 있는 셈입니다. 신세계의 승계 작업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