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게임인 줄 알았습니다. 예상을 깨고 인수 후보자들이 여럿 나섰고 그중 유력 후보자도 나왔습니다. 이례적으로 후보자들이 인수 가격으로 얼마를 써냈다는 이야기까지 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과 발표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편의점 미니스톱 매각 이야기입니다.
미니스톱 매각설이 불거진 것은 작년 8월경입니다. 당신 한국미니스톱은 "매각 계획이 없다"라고 못 박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 미니스톱의 최대주주인 일본 이온그룹이 한국미니스톱 매각을 결정했고 작년 말 인수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인수 여부를 타진했습니다.
애초 편의점 업계에서는 업계 1, 2위인 CU와 GS25가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지만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대신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롯데와 이마트24를 운영하는 신세계가 나섰습니다. 여기에 뜻하지 않게 글랜우드PE까지 나서면서 미니스톱 인수전은 새 국면을 맞게 됩니다.
업계에선 미니스톱의 매각 가격을 3000억원 선으로 예상했습니다. 일본 이온그룹도 그 정도 가격을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유통 강자인 롯데와 신세계가 맞붙는 형국이 되면서 가격이 크게 뛰었습니다.
롯데와 신세계 모두 미니스톱 인수에 상당한 의지를 보이면서 기준점이던 3000억원을 넘어서는 금액을 적어낸 겁니다. 현재 롯데는 4000억원대 중반, 신세계는 3000억원대 중반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의욕을 갖고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글랜우드PE도 3000억원대 중반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니스톱 인수전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인수 후보자들의 상황이 그만큼 절박해서입니다. 롯데의 경우 점포 수 기준으로 업계 3위입니다. 편의점 산업은 점포 수가 많을수록 유리한 사업입니다. 롯데는 미니스톱을 인수해 CU와 GS25를 바짝 추격할 심산입니다.
▲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
신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의점 사업 후발주자인 신세계는 야심 차게 이마트24를 출범시켰지만 편의점 시장에서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미미했습니다. 따라서 미니스톱을 인수해 점포 수를 늘리고 시장 내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계산을 세워뒀습니다. 이것이 두 유통 대기업이 사활을 걸고 맞붙은 이유입니다.
하지만 인수 희망가격에서 큰 차이를 보이면서 미니스톱 인수전은 롯데가 승리하는 모양새로 굳어졌습니다. 다른 경쟁자들보다 월등히 많은 액수를 써낸 결과입니다. 업계에선 롯데의 통 큰 베팅에 적잖이 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롯데가 미니스톱 인수에 의지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을 발표뿐입니다. 애초 우선협상대상자 발표는 지난달 중순으로 예정돼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발표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계속 미뤄지다가 결국 해를 넘기고 말았습니다. 다 된 밥인데 왜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이런저런 추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우선 일본 이온그룹 내부의 의견 차이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온그룹의 주요 주주들은 미쓰비시상사, 미즈호은행, 농림중앙금고 등입니다. 일본 내 대표적인 보수 성향 기업들입니다. 이온그룹은 일본에서 롯데와 경쟁하는 거대 유통기업입니다. 경쟁자에게 한국미니스톱을 넘기는 만큼 주주 간 의견이 달라 진통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편의점 사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도 이유로 꼽힙니다. 작년 말 편의점 근접 출점 자율규약이 통과되면서 앞으로 기존 편의점 업체들은 신규 출점이 어렵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미니스톱의 가격이 종전보다 더 뛰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받고 싶은 이온그룹의 입장에선 호재입니다. 이온그룹이 미니스톱의 가격을 상향조정하면서 롯데와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출점 제한과 맞물려 '승자의 저주' 이야기도 들립니다. 사실 롯데가 미니스톱을 인수하더라도 기존 미니스톱 편의점이 모두 세븐일레븐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점주들은 자유롭게 편의점 브랜드를 갈아탈 수 있습니다. 이미 미니스톱 점주들을 상대로 기존 편의점 업체들이 소위 '작업'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롯데로선 거금을 써고도 미니스톱을 온전히 세븐일레븐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겁니다.
▲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
한 편의점 업체 관계자는 "롯데의 경우 이미 예전에 바이더웨이를 인수하고도 세븐일레븐으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며 "점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선 결국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비싸게 인수하고도 추가로 더 비용이 들어간다는 걸 고려하면 미니스톱 인수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롯데 내부에서 이번 인수 건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여러 정황상 굳이 큰돈을 들여가며 미니스톱을 인수하는 것이 맞느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롯데가 미니스톱을 온전히 가져오기 위해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비용은 물론 유무형의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미니스톱 인수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결국 롯데가 미니스톱을 가져가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일각에선 재협상 혹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재검토 등의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롯데가 워낙 크게 베팅한 상황이어서 전체 판도를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다만 시간은 생각보다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롯데와 이온그룹 사이에서 큰 틀의 합의는 했지만 세부 사항에서 조율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아직 롯데와 이온그룹 양측 내부의 사정이 정리되지 않은 데다, 생각 외로 내부 반발도 있다. 신세계와 글랜우드PE쪽은 인수 의사를 접은 것으로 전해진만큼 롯데의 협상력이 더 커졌다. 이 점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최종 발표까지 시간은 좀 더 걸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가 늦어질수록 이온그룹이나 롯데 모두 부담스럽다는 점일 겁니다. 여기저기서 갖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는 미니스톱 인수전. 미니스톱의 새 주인 발표는 언제쯤에나 이뤄질까요? 정말 모두의 예상대로 롯데가 가져갈지, 아니면 예기치 않은 또 다른 변수가 생겨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지 유심히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