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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신동빈의 '화해'는 달랐다

  • 2019.01.16(수) 09:59

신동주 전 부회장 '화해' 편지…본심 "일본롯데 달라"
신동빈 회장 "먼저 주주·이사회 지지 받아라" 자신감


*화해(和解) : (명사) 싸움하던 것을 멈추고 서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연초부터 롯데그룹에 새로운 화두 하나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화해'입니다. 발단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입니다. 신 전 부회장이 신 회장에게 화해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롯데그룹으로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 사이에 균열이 생긴 것은 지난 2015년부터입니다. 이후 형제는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펼칩니다. 그 과정에서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민낯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동생인 신 회장이 패권을 쥐었지만 형제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됐습니다.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과정에서 서로에게 큰 생채기를 낸 탓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신 전 부회장이 동생에게 화해하자고 편지를 보냈다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일단 외형적으로만 본다면 틀어진 형제 관계를 복원하자는 메시지로 보입니다. 서로에게 냈던 생채기를 봉합하자는 대승적 차원의 제안으로도 들립니다. 신 회장도 최근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을 방문한 자리에서 '화해'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수년간 이어져 온 형제간의 갈등이 봉합되는 것일까요?

이 부분에서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 전 부회장이 보냈다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일각에서 제기된 신 전 부회장 편지의 주요 골자는 ▲경영권 분쟁 중단 ▲일본 롯데홀딩스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 해소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의 분리 경영입니다. 편지 내용의 핵심은 맨 마지막입니다. 일본 롯데는 신 전 부회장이, 한국 롯데는 신 회장이 담당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신 전 부회장의 편지는 화해를 표방한 일종의 제안인 셈입니다. 신 전 부회장 입장에서는 종전보다 많이 후퇴한 제안입니다. 당초 신 전 부회장은 롯데 전체의 경영권을 확보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때문에 신 회장과 지난한 싸움을 벌여왔습니다. 하지만 현재 신 전 회장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진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총 다섯 번의 표결에서 신 전 회장은 주주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주식회사에서 경영자가 주주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더불어 신 전 부회장은 이미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 롯데 관련 지분 대부분을 처분했습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신 전 부회장이 한국을 포기하고 일본을 집중공략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망은 이번 편지 내용을 통해 사실임이 증명됐습니다.

신 전 부회장이 일본에 집중하려는 이유는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 간 지분이 얽혀있어서입니다. 한국 롯데의 경우 신 회장이 지주사 전환을 통해 지배구조를 명확히 정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롯데는 일본 롯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호텔롯데를 매개로 일본 롯데는 언제든 한국 롯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신 전 부회장이 노리는 게 이 부분입니다.

이런 속내를 알고 있는 신 회장이 신 전 부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일 리 만무합니다. 신 전 부회장의 편지 내용이 공개되자 롯데지주가 이례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롯데지주가 신 회장의 롯데그룹 지배에 있어 최고 정점임을 고려할 때 롯데지주의 반박은 곧 신 회장의 반박으로도 볼 수 있을 겁니다. 롯데그룹은 신 전 부회장의 화해 시도가 일종의 '쇼(show)'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신 전 부회장측은 신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패해 입지가 좁아지자 '우군(友軍)'을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신 회장을 향한 십자포화를 날려야 하는데 대포를 확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신 전 부회장 측은 자신들의 논리를 알리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이번 편지도 그 일환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신 회장은 왜 공개석상에서 신 전 부회장의 화해 제스처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변했을까요? 신 회장은 궁극적으로 한국 롯데나 일본 롯데 중 어느 한 곳을 신 전 부회장에게 내줄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공식적으로 회장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은 데다, 주주들도 신 회장을 지지하고 있어서입니다. 신 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롯데그룹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작년 롯데지주를 출범시키고 롯데그룹의 지주사 체제 전환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명실상부한 롯데의 '원 톱'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롯데그룹은 신 전 부회장의 화해 제스처에 대해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 회장은 신 전 부회장의 메시지에 대해 굳이 "난 생각이 다르다"라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럴 경우 신 전 부회장 측이 "화해를 요청했음에도 신 회장이 거절했다"는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어서입니다. 신 회장이 신 전 부회장의 화해 제안에 대해 "가족이니까 그렇게 해야죠"라고 두루뭉술 답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신 회장으로서는 '신 전 부회장의 뜻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고 큰 틀에서 화해할 뜻은 있다'는 정도만 피력해도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눈여겨볼 부분은 신 회장의 다음 발언입니다. 그는 "내가 지분 70%, 100%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지 주총에 돌아와서 본인의 비전, 실적, 전략을 말하고 기존 이사진 등으로부터 신뢰를 받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신 회장의 이 발언은 신 전 부회장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자신감입니다. 주주들과 이사진들에게 먼저 자신의 논리와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지지를 받아내라는 것이 신 회장의 주문인 셈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다면 화해를 생각해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화해도 순수한 의미의 화해일뿐입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알고 있습니다. 주주들과 이사진들이 신 전 부회장을 지지할 일은 없을 것임을 말입니다.

현재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의 주주 및 이사진들은 신 회장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신 회장이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근거입니다. 현재 롯데그룹은 신 회장이 그린 큰 그림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신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자마자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내놓고 인사에 변화를 준 것도 모두 신 회장의 의지입니다. 신 회장은 이미 롯데의 '원 톱'으로서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했습니다.

결국 이번 일은 형제간에 '화해'를 두고 얼마나 다르게 해석, 사용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신 전 부회장은 화해를 자신이 일본 롯데를 가져가겠다는 복안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한 반면 신 회장은 자신의 우위를 재확인시키는 '증거'로 활용했습니다. 같은 단어를 두고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한 두 형제. 그들은 정말 사전적 정의에 걸맞은 화해를 할 수 있을까요? 무척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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