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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진 10년 뚝심 '한옥호텔' 결실

  • 2020.03.06(금) 14:37

서울시와 기나긴 규제 줄다리기 '통과'
이달에 첫 삽 예정…2025년 완공 목표
먼저 한옥호텔 꿈꿨던 조현아는 '눈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10년 뚝심이 드디어 빛을 본다. 이달부터 호텔신라가 한옥호텔 건립을 시작한다. 

호텔신라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한국전통호텔 및 부대시설 건설 안건을 처리했다. 한옥호텔에 대한 총투자비는 2318억원으로 호텔신라 자본금의 30% 규모다. 시공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맡는다. 

호텔신라의 한옥호텔 건립은 지난 10년 동안 포기하지 않던 결과다. 그 도전기를 훑어봤다.

한옥호텔은 지난 2010년 이부진 사장이 취임 직후부터 추진한 사업이다. 

하지만 한옥호텔을 지으려는 위치가 문제였다. 당시 남산은 자연경관지구로 지정돼 20년간 관광숙박시설 건축이 불허됐다. 기존 시설은 증축과 신축은 불가, 수리만 가능했다. 

특혜 논란 끝에 서울시는 2010년 자연경관지구 내 너비 25m 이상 도로변에 위치하는 지역에는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관광숙박시설을 지을 수 있다는 내용의 조례를 만들어준다.

이어 호텔신라는 해당 부지에 전통호텔을 짓기 위해 건축규제를 추가로 완화해 달라고 요청한다. 

조례 개정으로 일사천리로 풀릴 줄 알았던 전통호텔 건립은 다른 규제에 막힌다. 당초 호텔신라는 2층 높이인 면세점 부지에 지하 4층~지상 4층 규모의 호텔을 새로 만들고 면세점은 지하 6층 규모 주차장의 지상에 4층 높이로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는 높이는 3층까지만 가능했다. 부지와 가까운 서울성곽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라는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 때문이었다.(유네스코는 지난 2017년 서울성곽에 '등재불가' 판정을 내렸다)

해당 규제를 걷어내지 않고서는 전통호텔 건립이 불가능했다. 당초 목표대로라면 호텔은 지상 4층 규모였다.

2015년 5월7일 서울 중구 호텔신라에서 열린 '국내 최초 5성급 호텔' 현판식에 참석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현판 앞에서 미소짓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규제를 두고 긴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호텔신라는 남산 자연경관지구 내 한국전통호텔을 지을 때 층수를 4층까지 상향해 달라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호텔 신축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도시계획위원회는 계획안이 숙박보다는 면세점에 치중됐다며 한양도성과 인접한 입지 요건을 고려해 층수를 줄이고 도성과의 거리도 벌리라고 주문했다. 자연경관지구 내에는 주차빌딩을 건설하는 것도 안된다는 게 반려 이유 중 하나였다.

결국 호텔신라는 전통호텔의 건립계획을 수정한다. 높이는 지상 4층에서 3층으로 줄이고, 이에 따라 객실 수도 207개에서 91개로 크게 줄인다. 한양도성과의 이격거리도 늘렸다.

시공방법도 기둥과 보 등을 만들 때 나무를 이용해 마감하는 공법을 써 한옥 기준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그 밖에 관광버스 주차장 확보와 안내 표지석 설치 등에도 협조할 계획을 추가한다. 이에 서울시는 해당안을 가결해준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명근 기자 qwe123@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서울시의 교통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허가 등이 남아 있었다. 

호텔신라 측은 이를 통과하기 위해 선설 계획을 추가로 손본다. 노후 건물을 철거한 뒤 다산성곽길로 이어지는 진입로를 새로 조성하고, 지역 주민과 협력해 명소화하기로 했다. 호텔 층수는 한 층 더 낮춘 2층으로 바꾼다. 객실 수는 43개로 줄었다.

그럼에도 2018년 열린 교통영향평가에서 제동이 걸린다. 호텔신라는 일대가 교통 혼잡지역이어서 차량 출입구를 2개에서 1개로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일부 구역이 사유지와 국유지가 섞여 있어 정리부터 하라는 의견이 나왔다.

문화재청은 해당 건설계획이 한양도성의 경관과 장충단 지역의 역사성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의견을 낸다. 해당 문제들은 2018년 말에야 합의에 이르렀다. 이제 마지막 관문인 서울시의 건축 심의만 남겨뒀다.

▲호텔신라 한옥호텔 조감도

건축심의 통과를 위해 호텔신라는 신라호텔의 정문 일대를 기부채납한다. 조건은 건폐율(토지면적 중 건물면적)의 상향(30%→40%)이다. 부지 내 건폐율이 꽉 차 있어 해당 규제를 완화하지 않고서는 건물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신라호텔의 주 출입로는 현재 호텔 면세점으로 올라가는 장충체육관 왼편 길로 바뀌게 된다. 기부채납된 정문 일대 부지는 공원으로 조성되고 지하에는 장충체육관이 사용할 주차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의 주문은 끝나지 않았다. 한옥호텔 부대시설 내에 전통정원을 만들고 남산제비꽃 및 꽃창포 등을 심으라는 디테일한 요구도 나왔다.

결국 이를 수용한 호텔신라는 지난해 10월 전통호텔 건설을 위한 건축심의를 통과한다. 전통호텔 건립을 시도한 지 10년 만에 호텔신라는 한옥호텔 건립을 위한 모든 허가를 획득했다. 

유능극강(柔能克强)

이부진 사장의 뚝심이 10년 만에 빛을 보면서 배가 아플 사람이 있다. 서울 시내에 대형 한옥호텔을 짓는 것은 이 사장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먼저 품었던 꿈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8년 경복궁 옆 당시 미국 대사관 부지를 사들이고 이듬해인 2009년 이 자리에 한옥호텔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은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일하던 조 전 부사장이 주도했다. 1년 뒤 호텔신라의 계획이 발표되면서 당시 언론에서는 두 여성 CEO의 한옥호텔에 대한 숙원을 조명하며 경쟁을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보건법이 발목을 잡았다. 경복궁 부지 인근에  풍문여중과 덕성여중·고 등이 있어 학교보건법상 호텔 등 유흥시설이 들어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은 해당 규제에 대해 헌법소원까지 내는 등 강공을 펼쳤지만 결국 패소했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여론이 크게 악화한 게 결정적이었다. 

결국 최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누님의 꿈이 서린 해당 부지를 올해 안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조 전 부사장의 실패를 굳혀 그룹 내 패권을 정비하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뚝심으로 기다리며 차근차근 해법을 찾아온 이부진 사장과 헌법소원 등 맹공으로 기세를 떨치려 했던 조현아 전 부사장은 결국 다른 결말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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