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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에 웬 재고? 미리 산 항공권 어찌할꼬

  • 2020.03.26(목) 08:15

1분기 항공권 재고 대거 발생 예상
환불 어려워 고스란히 손실로 반영
항공권 환불 못 받아 카드사도 '불똥'

#회사원 A씨는 코스피에 상장된 한 여행사의 주주다. 주주총회에 가기 전 회사 재무제표를 찬찬히 뜯어보던 A씨는 특이한 내용을 발견했다. 지난 2018년 1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재고자산이 지난해엔 41억원으로 급증한 것이다. 공장 하나 없는 여행사에 지난 수년간 영업이익 평균을 뛰어넘는 재고가 갑자기 생기자 의구심이 들었다. 주석을 보니 해당 재고는 항공권 등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제때 팔리지 못한 항공권이 재고로 잡혀있던 것이다. A씨는 걱정이 커졌다. 항공권은 무형의 소멸자산으로 다 팔지 못하면 모두 휴지조각이 된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여행 취소가 잇따르고 있는 만큼 회사의 부실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서다.

코로나19에 직격당한 여행업계가 미리 사둔 항공권 처리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이 항공권들은 환불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고스란히 손실로 떠안을 수밖에 없어서다.

최근 베트남항공 등 일부 항공사의 경우 항공권 환불시스템이 아예 접속 차단되면서 여행사에 대한 책임론까지 불거지고 있어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 미리 사둔 항공권 '낭패'

최근 롯데관광개발은 지난해 재고자산이 총 41억원 규모라고 공시했다. 2018년 1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재고자산이 1년 만에 4000%나 급증했다.

재고자산이 갑작스레 증가한 이유는 대부분 항공권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항공사에서 미리 사뒀는데 고객에게 미처 팔지 못한 항공권이 수십억원어치나 쌓였다는 얘기다.

여행사는 기업회계기준서 1115호 '고객과의 계약에서 생기는 수익'에 따라 회사가 매입한 전세기 항공권과 항공기 '하드블록' 좌석 중 고객에게 판매되지 않은 금액을 재고자산으로 분류하게 된다. '하드블록'은 항공권을 미리 한꺼번에 대량으로 구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문제는 올해는 작년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여행업계에선 미리 사둔 항공권 처리가 올해 1분기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1~2월 국적항공사의 여객수(출·도착 총합)는 1649만 2682명으로 전년동기대비 20%(413만명)나 줄었다. 3월 수치까지 합하면 80%이상 감소가 예상된다는 게 여행업계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미리 사둔 항공권 처리가 발등의 불이 됐다. 항공권 구매는 여행상품을 기획하는 여행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다. 일정 확정과 요금, 서류 처리, 예약, 발권 등 복잡한 절차를 진행하려면 항공권을 미리 확보하는 과정은 필수다.

◇ 대량 구매한 '하드블록' 항공권 골치

일부 여행사의 경우 '하드블록'을 많이 이용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등 대형 항공사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지만 중소형 항공사들은 여행사를 통해 '하드블록' 항공권을 파는 게 관행이다.

보통 여행사들은 성수기에 실적을 만회할 생각으로 비수기 때 미리 확보한 항공권을 싼 가격에 내놓는다. 항공권 판매 부분은 적자를 보더라도 숙박과 식당, 이벤트, 기념품 등의 수수료 수익으로 만회할 수 있어서다.

만약 '하드블록' 등으로 여행사가 확보한 항공권이 출발 날짜가 임박하도록 팔리지 못한다면 땡처리 항공권으로 팔리기도 한다. 최근 일본 등 일부 여행상품이 10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쏟아진 것도 이런 이유다.

만약 여행사가 미리 산 항공권을 팔지 못하고 비행기 내 빈자리로 남겨둘 경우 항공사로부터 페널티를 받는다. 페널티를 많이 받는다면 향후 해당 항공사와 계약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 여행사는 손해를 보더라도 아주 싼 가격의 항공권을 내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여행상품이 아예 안 팔리거나 대량 취소가 나오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이렇게 쌓인 재고 항공권은 다시 현금으로 만드는 게 어렵다.

재고 항공권을 현금화하려면 항공사에 다시 환불해야 하는데 항공사와 갑-을 관계를 맺고 있는 여행사 입장에서 쉽지 않다. 그러면 항공권은 그냥 허공으로 날아가게 된다. '하드블록'으로 판매된 항공권이라면 처음부터 항공사와 여행사 간 환불불가 조건이 붙어있을 가능성도 높다.

대형 항공사의 경우 불가피한 상황을 고려해 환불을 받아주거나 페널티를 줄이는 방법으로 여행사와의 상생을 모색 중이지만, 경영난에 내몰리고 있는 일부 항공사들은 여지없이 환불 불가와 페널티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 항공권 환불금으로 카드사도 '불똥'

항공권 환불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서 카드업계까지 비상이 걸렸다. 고객이 항공권 카드 결제를 취소했는데 여행사나 항공사로부터 결제대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어서다.

고객이 결제를 취소하면 카드사는 고객에게 일단 해당 금액을 환불하고 이 금액을 다시 여행사나 항공사에 반환청구를 하는 게 일반적인 절차다. 하지만 여행사나 항공사가 카드사에 환불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최근 발생하고 있다.

카드사 한 관계자는 "항공권 취소에 따른 미수금 발생은 처음 겪는 일"이라며 "정확한 미수금 규모는 밝힐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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