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시장의 글로벌 트렌드는 화학 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의약품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에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 전문기업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 영향으로 국내 다수 바이오기업들의 바이오의약품(생물의약품) 위탁생산(CMO) 사업도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해외 CMO 수주에 성공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가 대표적입니다.
◇ 삼성바이오로직스, 올해만 1조8087억 규모 수주
국내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을 선도하고 있는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입니다. 올해 상반기 위탁생산 계약을 줄줄이 따내면서 9월 2일 기준 올해 수주액만 1조 8087억 원에 달합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수주액의 4배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현재 1‧2공장은 풀가동 중입니다. 3공장도 수주가 급증하면서 같은 부지인 인천 송도 5공구에 4공장을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4공장의 생산량은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25만 6000리터에 달합니다. 1~4공장으로 이뤄진 제1단지만으로도 글로벌 CMO 시장의 약 30%를 점유하게 됩니다. 여기에 송도 11공구에 33만 579m² 규모의 부지를 추가 확보해 제2단지를 조성할 계획도 밝혔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잇따라 러브콜을 받은 배경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미국식품의약국(FDA), 유럽의약품청(EMA),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 등 세계 각국에서 요구하는 글로벌 제조승인을 무려 60건 가량 획득했습니다. 해외 제약사의 CMO를 위해서는 글로벌 제조승인이 필수적인 만큼 가장 큰 경쟁력을 갖춘 셈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규제기관 검사(Inspection)와 고객사의 실사(audit)가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라이브 가상투어(Virtual Live Tour) 시스템까지 갖췄습니다. 또 공장 전체를 온라인으로 둘러 볼 수 있는 가상현실(VR) 견학 시스템도 구축했습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믿고 맡길 만한 생산시설과 시스템을 갖추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위탁생산 전문 업체로 거듭났습니다.
◇ SK그룹, 세계 1위 CMO기업 도약 목표
SK그룹도 CMO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원래 SK그룹에서 제약·바이오 사업을 영위하고 있던 관계사는 5곳이었습니다. SK바이오팜은 ‘신약 개발’, SK바이오텍 ‘원료의약품 생산 ’, SK케미칼 ‘신약 개발’,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SK플라즈마는 ‘혈액제제’ 사업을 각각 맡고 있었죠. 이중 SK바이오텍과 해외 생산시설을 통합한 자회사를 추가로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CMO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SK는 지난 2018년 미국의 원료의약품 개발 및 생산 기업인 앰펙(AMPAC)을 인수하면서 미국에 생산기지를 마련했습니다. 미국에서 SK 자회사들의 CMO 수주 건을 포함한 의약품 생산을 담당하는 전초기지인 셈입니다.
SK바이오텍은 2017년 아일랜드에 위치한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의 생산시설을 인수하며 유럽에 생산기지를 확보했습니다. 해당 공장에서는 BMS뿐만 아니라 노바티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의약품을 생산, 공급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각각 16만리터와 32만리터를 생산할 수 있는 대전 대덕단지와 세종 신공장을 보유 중입니다.
이처럼 SK의 CMO 사업은 미국 앰팩과 SK바이오텍, SK바이오텍 아일랜드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SK는 지난해 9월 이 세 곳을 통합 운영할 CMO 통합법인 ‘SK팜테코’를 미국에 설립했습니다. 지난해 CMO 사업으로만 4873억 원의 매출을 거뒀습니다. 국내‧외 CMO 사업을 전문적으로 영위하면서 향후 세계 1위 CMO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게 SK 목표입니다.
별도로 백신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해 온 SK바이오사이언스도 최근 CMO 사업에 발을 디뎠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의 위탁생산을 맡기로 한 건데요. 2012년 경북 안동에 완공한 L하우스를 통해섭니다. L하우스는 최첨단 무균 생산시스템을 갖춘 백신 생산시설입니다. 증권업계는 이번 CMO 계약으로 SK바이오사이언스의 백신 CMO 사업 가치가 1조 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 생산공장 건설 대신 위탁생산 ‘인기’
‘신약 개발’을 주창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최근 들어 CMO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바이오의약품은 사람이나 다른 생물체에서 유래된 것을 원료나 재료로 사용한 의약품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백신, 혈장분획제제(혈장에 포함된 성분을 병합‧분리해 정제),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 바이오의약품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하면서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지난 올해 2700억 달러에서 오는 2023년 356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국내 업계도 바이오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제약기업들이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었고 신규 바이오벤처들도 대거 쏟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바이오벤처의 경우 당장 발생하는 매출이 없거나 자본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연구개발 자금 확보를 위해 주식 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유망한 신약 후보물질만으로 상장이 가능한 ‘기술성장기업 특례상장’을 통해서입니다. 다만 이는 모두 연구개발 단계 이야기입니다.
바이오의약품은 일반적으로 합성의약품에 비해 크기가 크고 복잡한 고분자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물체를 이용해 복잡한 제조공정을 거쳐야 되므로 변화에도 민감합니다. 따라서 생산 시설도 까다롭습니다. 연구개발은 작은 연구소에서도 가능하지만 생산시설은 다릅니다. 시중에 출시하려면 대량 생산이 가능해야 합니다. 최첨단 시설과 대량생산 설비를 갖춘 생산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바이오벤처들은 연구개발 자금도 부족해 외부에서 투자를 끌어와야 하는 실정입니다. 생산 공장을 지을 여력이 없습니다. 결국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을 갖춘 기업에 위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들도 바이오의약품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생산시설이 부족합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CMO 기업에 눈을 돌리는 이유입니다.
국내 기업들의 CMO 사업은 국내외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흐름에 발맞춰 동반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인천 송도에 바이오의약품 생산기지를 확대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해외 거점을 속속 마련한 ‘SK’. 국내 CMO 양대산맥으로 떠오른 두 회사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글로벌 CMO 1‧2위 기업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