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텔러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다이어터'에게 탄수화물은 가장 큰 적으로 꼽힙니다. 최근엔 탄수화물을 줄이고 지방 섭취를 늘리는 '저탄고지' 식단 열풍이 불기도 했죠. 하지만 탄수화물은 우리 몸의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원입니다. 주식인 밥을 아예 먹지 않을 수 없죠.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렇다면 좀 더 건강하게 탄수화물을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요.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읽었던 글이 떠올랐습니다. "갓 지은 밥을 얼린 뒤 해동해 먹으면 살이 안 찐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궁금해졌습니다.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탄수화물이 정말 존재하는지요.
찾아보니 '소문'은 사실이었습니다. 핵심은 전분(녹말)에 있었는데요. 전분은 포도당(글루코스) 분자가 사슬처럼 연결된 다당류입니다. 감자, 고구마 같은 뿌리식물이나 쌀, 밀 등 곡류 속 탄수화물이 모두 전분이고요. 우리의 소화계는 전분을 포도당 단위까지 분해한 뒤 흡수합니다. 이때 높아진 혈당을 낮추기 위해 몸은 인슐린을 분비하는데요.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비만이나 당뇨 등의 질환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분 중엔 소화계가 분해할 수 없는 전분도 있습니다. 소화에 저항하는 전분인 '저항성 전분'입니다. 저항성 전분은 소장에서 흡수되지 않고 바로 대장으로 내려갑니다. 소장에서 소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혈당을 높이지 않고요. 저항성 전분의 칼로리는 1g당 2kcal로, 일반 전분의 절반 정도입니다. 포만감도 높은 데다 장 건강을 돕는 장점도 있고요. '착한 탄수화물'인 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밥을 차게 만드는 과정에서 저항성 전분이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저항성 전분은 1~4도에서 가장 활성화되는데요. 냉장고에 6시간 이상 보관한 밥은 갓 지은 밥보다 저항성 전분이 3배 정도 많다고 합니다. 한번 생긴 저항성 전분은 잘 사라지지 않아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도 괜찮고요.
류기형 공주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밥을 차게 식히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아밀로오스 함량이 높은 전분일수록 저항성 전분이 더 많이 생긴다"면서 "차갑게 식은 밥엔 저항성 전분이 많아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냉동이 아닌 냉장한 밥이어야 한다는 걸 강조했는데요. 류 교수는 "밥을 냉동할 경우 전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저항성 전분의 효과를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햇반'이나 '오뚜기밥' 같은 상온 즉석밥은 어떨까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CJ제일제당과 오뚜기에 물었습니다. 즉석밥의 제조 원리는 무엇인지, 즉석밥엔 저항성 전분이 얼마나 들어있는지요.
업체에 따르면 즉석밥의 제조 원리는 집에서 밥을 짓는 방법과 같습니다. 솥의 크기만 다를 뿐이죠. 가마솥에 지은 밥을 용기에 나눠 담는 방식인데요. 업계 관계자는 "즉석밥은 보존을 위한 수단"이라며 "수소이온농도(pH)를 조절하고 무균상태에서 제조·가공해 상온 상태에서 미생물 증식과 부패를 막는 공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즉석밥에 저항성 전분이 추가로 들어있진 않다고 합니다. 진공 포장해 실온에서 판매하는 제품이기 때문인데요. 반면 냉장 온도에서 보관하는 삼각김밥이나 냉동 볶음밥의 경우 저항성 전분이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항성 전분은 살이 '덜' 찌는 것이지 안 찌는 것은 아닙니다. 또 찬밥을 먹을 땐 밥 자체의 칼로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흡수'되는 칼로리가 줄어드는 것이고요. 보통 하루 20g 정도의 저항성 전분을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위와 소장에서 소화가 잘 되지 않아 과다 섭취하면 소화 불량을 겪을 수 있고요. 가끔은 찬밥을 먹으며 마음 놓고 탄수화물을 즐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
*[食스토리]는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가고픈 콘텐츠입니다. 평소 음식과 식품, 약에 대해 궁금하셨던 내용들을 알려주시면 그중 기사로 채택된 분께는 작은 선물을 드릴 예정입니다. 기사 아래 댓글이나 해당 기자 이메일로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