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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소맥 1만원 시대'가 의미하는 것

  • 2022.03.02(수) 06:50

주요 소주 가격 '릴레이 인상'…다음은 맥주?
출고가 인상 폭보다 체감 가격은 더 높아 '원성'
대안 없는 시장…소비자 부담 배려해야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소맥 1만원 시대'가 가까워졌습니다. 소주가 그 시작입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18일 참이슬·진로의 출고가 인상 계획을 밝혔습니다. 인상폭은 평균 7.9%, 인상 시기는 지난달 23일이었습니다. 곧이어 롯데칠성음료도 오는 5일부로 처음처럼·청하의 출고가를 평균 7%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무학·한라산 등 지역 소주업체도 일제히 가격을 올렸습니다.

유통업계도 움직였습니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가 하이트진로의 가격 인상 다음날부터 제품 가격을 100원씩 올리기로 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소주런'에 나섰습니다. 이마트의 지난달 18일~23일 소주 매출은 직전 2주 대비 79%나 뛰었습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의 소주 매출은 34% 늘었고요. 일부 매장에서는 소주 매대가 텅 비기도 했습니다.

소주 가격 인상은 예상됐던 일입니다.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난으로 밀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때문에 밀로 만드는 소주의 핵심 원료 '주정'의 가격이 10년만에 올랐죠. 알루미늄도 공급난을 겪으며 병뚜껑 가격까지 평균 16% 올랐습니다. 여기에 환경부는 빈병 보증금과 취급수수료를 올렸고, 인건비·물류비 부담도 커졌습니다. 업체가 비용 절감만으로 버티기엔 한계에 다다른 셈입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반발은 어느 때보다도 큽니다. 같은 '서민 음식'인 라면의 가격 인상 때보다도 원성이 높습니다. 소주의 체감 가격이 라면보다 더 크게 올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번 가격 인상으로 참이슬의 병당 출고가는 약 82원 올랐습니다. 그런데 식당들은 출고가 부담을 이유로 소주 가격을 1000원 넘게 올리려 하고 있죠. 서울 강남 등 임대료가 비싼 지역에서는 소주가 8000원인 식당도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식당의 소주 가격 인상 폭은 유통 구조를 고려해도 다소 큰 편입니다. 소주는 제조사→전문 도매상→소매상 순서로 유통됩니다. 제조사는 출고가로 도매상에 소주를 넘깁니다. 도매상은 마진을 붙여 소매상에 팔고요. 이번 가격인상이 반영된 전문 도매상의 소주 판매 가격은 병당 1600원 안팎입니다. 소주를 6000원에 파는 식당이 병당 4000원을 남기고 있는 셈입니다. 소비자들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한 결과죠.

식당들도 사정은 있습니다. 외식업은 코로나19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진 영업제한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식당이 많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원재료 가격 폭등을 메뉴 가격에 쉽사리 반영하지도 못했습니다. 손님이 끊길까봐 겁났으니까요. 소주 가격을 공급가 대비 크게 올리면 이때 본 손해를 메울 수 있습니다. 특히 소주는 반드시 주문하는 메뉴도 아닙니다. 따라서 식당은 실속을 챙기면서도 비판을 줄일 수 있죠.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겠지만요.

다만 맥주 가격까지 곧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 소비자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맥주도 소주처럼 원재료·알루미늄 가격의 영향을 받습니다. 4월부터는 전년도 물가인상률이 반영되는 개정 주세법이 맥주에 적용돼 세금도 오릅니다. 일부 수입 맥주들은 이를 선반영해 가격을 올리기도 했죠. 국내 맥주 업체들 역시 가격을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이 경우 식당에서 판매하는 맥주 1병의 가격은 6000원 전후가 될 겁니다. 자연스럽게 소맥 가격은 1만원을 훌쩍 넘기게 되겠죠.

지난 주말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열린 원소주 팝업스토어는 높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소맥 1만원 시대 우리의 음주 문화는 어떻게 바뀔까요. 업계에서는 '홈술 트렌드'가 더 확산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실제로 가정용 주류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와인·위스키가 시장 성장을 견인하고 있지만, 고급 증류식 소주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죠. 실제로 하이트진로 '일품진로'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78% 뛰었습니다. 가수 박재범이 만든 '원소주' 팝업스토어가 젊은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들은 소맥의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주류 시장에서 소맥은 '생필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가격이 오르더라도 와인·위스키·증류식 소주에 비교한다면 가성비가 더 낫죠.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직장인들에게 소맥을 대신할 수 있는 술은 사실상 없습니다. 담배와 마찬가지로, 가격이 오르더라도 소맥을 마실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소주값 인상에 소비자가 더 크게 분노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업체들은 원가 부담을 비용 절감으로 상쇄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합니다. 가격 인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호소하죠. 부족한 지원 속에서 코로나19를 버텨 온 자영업자들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다만 최근 먹거리 가격 상승의 쓰나미 속에서 '소맥 1만원 시대'가 소비자들에게 안길 상실감의 파급력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가볍게 소맥 한잔'이 옛말이 될 날이 머지 않은 시점에서, 소맥 가격이 너무 빠르게 오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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