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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제주맥주의 '김빠진' 비전 선언

  • 2022.05.17(화) 06:50

라거·무알코올 맥주 시장 진출 계획 밝혀
"맥주업계의 애플·나이키 되고 싶다"
거대한 화두 뒷받침할 전략적 근거 부족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지난 16일 수제맥주 시장 1위 제주맥주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한국맥주 2.0 비전과 포트폴리오'라는 거대한 이름이었습니다. 제주맥주는 이 자리에서 향후 수제맥주 포트폴리오 확대 계획을 밝혔습니다. 라거맥주를 통한 유흥용 시장 공략과 무알코올 맥주 출시 계획도 알렸죠.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지배하는 라거 시장에 '균열'을 내겠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수제맥주를 넘어 종합 주류 제조사로 발전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죠.

제주맥주는 향후 수제맥주를 오리지널·캐주얼·넥스트 등 3개 포트폴리오로 구성할 계획입니다. 오리지널 라인은 '제주 위트 에일' 등 현재 제주맥주의 주력 상품들로 구성됩니다. 캐주얼 라인에는 맥주의 ‘문화 콘텐츠’화 전략이 담겼습니다. 최근 힙합 뮤지션 사이먼 도미닉과 협업했던 'AOMG 아워에일'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제품은 캔 표면 QR코드를 스캔해 뮤지션의 특정 곡과 맥주를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됐습니다. 2주 만에 42만 캔이 팔리는 성과를 냈죠.

넥스트 라인은 '4캔 1만원' 구조를 깨기 위한 시도입니다. 커피 등 타 식품을 활용해 색다른 고급 맥주를 내놓는 것이 골자죠. 정리하면 오리지널 라인으로 브랜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나머지 라인업을 영역 확장을 위해 쓰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합리적 전략입니다. 제주맥주는 수제맥주 시장 점유율 1위입니다. 매출 70% 이상이 자체 브랜드에서 나옵니다. 제주맥주의 로고를 달고 나온 수제맥주라면 '연계 구매'를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연계 구매는 신사업으로 내세운 라거 맥주 시장 공략의 핵심 전략이기도 합니다. 제주맥주는 이날 첫 라거 제품 '제주라거 프로젝트 001'을 선보였습니다. 캔·병 등 모든 라인업을 내놓아 유흥·외식 시장까지 공략하겠다는 의지도 밝혔습니다. 제주맥주를 좋아하는 MZ세대 소비자가 이 제품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고요. 제주맥주의 연계 구매율이 타 브랜드의 3배를 넘는다는 나름의 구체적 근거도 내놨습니다.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제주맥주는 왜 라거 시장에 눈독을 들일까요. 수제맥주에만 집중한다면 지속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물론 수제맥주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800억원대였던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오는 2024년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2015년 전국 72개 정도였던 수제맥주 제조사는 지난해 159개까지 늘어났습니다.

이런 가운데 제주맥주는 지난해 매출 288억원, 영업손실 7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매출은 전년 대비 33.9%나 성장했지만 영업적자가 7.4% 늘었죠. 광고선전비 등 투자 비용 증가가 원인이었습니다. 시장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이런 비용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불어 코로나19가 엔데믹에 접어들며 유흥용 주류 시장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가정용 시장이 주력인 제주맥주에게는 다른 시장이 필요한 상황이죠.

실제로 제주맥주는 지난해 수제맥주 업체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한 후 사업을 활발히 확대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등 해외 시장을 활발히 노크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에는 CJ제일제당과 손잡고 싱글족을 겨냥한 사업을 전개하기로 하기도 했죠. 이를 통해 오는 2024년부터는 전 세계에 한국 맥주 문화를 알리는 'K-맥주 대표주자'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떤 시도든 새로운 수익원 창출에는 도움이 될 겁니다. 무의미한 도전은 없습니다.

하지만 유흥·외식용 맥주 시장 공략은 다른 문제입니다. 제주맥주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수제맥주 시장은 전체 맥주 시장의 약 5% 수준입니다. 유흥·외식 시장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워 시장 비중이 높지 않죠. 왜일까요. 일단 수제맥주 생산 업체는 규모가 작습니다. 제주맥주조차도 연간 자체 생산량은 2000만 리터에 불과합니다. 위탁생산(OEM) 등을 포함하더라도 주요 업체의 10%도 되지 않습니다. 많이 생산되지 않으니 많이 보기 어려운 셈이죠.

생산량이 해결되더라도 과제는 남아 있습니다. 카스·테라는 탄탄한 영업·유통망을 활용해 유흥·외식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게다가 이 시장에서 맥주는 관성적으로 소비되는 제품입니다. 특정 제품을 굳이 찾으려는 니즈가 크지 않습니다. 이 탓에 롯데칠성음료도 이 시장에서만큼은 고전하고 있죠. 롯데칠성음료보다도 후발 주자인 제주맥주가 이 시장을 공략하려면 생산·유통·영업 전반에 엄청난 투자가 필요할 겁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비관적 분석이 더 많습니다.

제주맥주가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고, 수익성을 개선하려면 신시장 개척이 필요합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간담회에서도 관련 질의가 많이 나왔습니다. 제주맥주는 답변을 피했습니다. 수익성에 대한 질문에는 "중요 경영과제 중 하나이며 지속성장성을 강화할 것"이라는 원론만 내놨습니다. 구체적인 라거 사업과 해외 시장 공략 전략에 대한 질문은 지금 밝히기 곤란하다며 회피했죠. 반면 성장성은 적극 어필했습니다. 차별성을 내세우면서 "맥주 시장에는 선택지도 없고 변화도 없다"는 도발에 가까운 멘트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계획보다 자신감이 앞서는 모습이죠.

물론 전략과 관련된 사안은 쉽게 밝힐 수 없고, 밝혀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제주맥주의 라거 시장 진출은 너무 거대한 화두였습니다. 특히 지난 3월에는 제주맥주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스톡옵션 1만3000주를 매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미래 전략 발표를 앞둔 임원진의 자사주 매도는 부정적 신호로 비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략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더 필요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제주맥주의 비전 발표가 다소 공허해 보였던 이유입니다.

제주맥주의 목표는 수제맥주계의 애플·나이키입니다. 간담회에서 "애플과 나이키는 대표적인 레드 오션 시장의 업체임에도 브랜드력을 앞세워 현 위치에 올랐다"고 강조하기도 했죠. '반'만 맞는 말입니다. 브랜드력은 주도면밀하게 기획된 제품이 만드는 겁니다. 애플에게는 '아이폰'이, 나이키에게는 '에어 조던'이 있었습니다. 제주맥주는 이런 제품을 먼저 내놓아야 비전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제주맥주의 미래를 결정짓는 '키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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