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화는 해외시장 진출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국내에서 크게 히트한 상품이라도 '치밀한' 현지화가 없으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현지화에는 그 나라의 문화·역사 등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제품 본연의 색깔은 살리면서 현지 문화를 잘 조화시켜야 합니다. 특히 식품이야말로 현지화는 절대적입니다. 먹는 것인 만큼 이질감은 최소화하고 친밀감은 높여야 합니다.
최근 CJ제일제당이 미국 현지용 비비고 만두를 국내에 한정판으로 선보였습니다. '비비고 치킨&고수만두'입니다. 미국 내 시판 만두 가운데 매출 1위입니다. 미국프로농구(NBA) LA레이커스의 유니폼을 포장지 콘셉트로 활용했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포장지의 선수 등번호인 '18번'입니다. 얼핏보면 단순한 숫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CJ제일제당의 현지화 전략이 녹아있습니다.
비비고는 지난 2001년 LA레이커스와 글로벌 마케팅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LA레이커스는 북미와 아시아, 유럽, 중동 등에서 2억8000만명의 팬덤을 보유한 농구팀입니다. 소셜미디어 팔로우 수는 현재 6000만명이 넘습니다. 팬의 절반 이상이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일 정도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은 팀이기도 합니다.
LA레이커스에는 18번을 단 선수가 없습니다. 가장 유명한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의 등번호는 6번입니다. 보통 등번호를 기업 마케팅에 활용하면 가장 유명한 선수의 것을 씁니다. 그렇다면 CJ제일제당은 왜 18번을 포장지에 넣었을까요. 이유는 '우승 기원'에 있습니다. LA레이커스는 NBA 통산 18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은 LA레이커스의 우승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18번'을 넣었다고 합니다. 현지의 정서를 '이해'한 겁니다.
이외에도 미국에선 18번은 흔히 '에이스 선수'로 인식합니다. 이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영향입니다. MLB에 진출한 일본 에이스 투수들이 18번을 주로 쓰면서 이런 인식이 생겼습니다. 대표적으로 1997년 일본 프로야구팀 히로시마 카프에서 데뷔해 MLB에 진출한 구로다 선수가 있습니다. 그는 LA다저스, 뉴욕 양키스까지 20년 가까이 등번호 18번을 고집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숫자 18에 담긴 인식도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생명을 뜻하는 단어인 'chai'를 숫자로 치환해 읽으면 18이 됩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18을 행운의 숫자로 여깁니다. 18달러를 선물로 주면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숫자 '4'를 한자의 '죽을 사(死)'와 비슷하다고 느껴 꺼리는 것과 비슷한 이유입니다. 이쯤 되면 CJ제일제당이 왜 18번을 넣었는지 수긍이 가기 시작할 겁니다.
CJ제일제당은 국가별 맞춤형 전략을 치밀하게 전개합니다. 미국 시장 첫 진출 당시에는 현지인에게 익숙한 한 입 크기의 미니 완탕 판매에 주력했습니다. 이후 'mandu'(만두)로 표기한 제품을 계속 노출시켜 친밀도를 높였습니다. 가짜 음식이 많은 중국에서는 피를 얇게 만들었습니다. 고기와 야채가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유럽에서는 아시아 식문화가 익숙한 영국과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유통 채널을 확대하는 전략을 펴는 중입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성과도 좋습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020년 비비고 만두 매출 1조원을 돌파했습니다. 비비고 만두 매출은 2017년 5060억원에서 2018년 6600억원, 2019 8680억원으로 매년 급증했습니다. 특히 2020년에는 해외 매출이 6700억원으로 전체의 65%에 달했습니다. 미국(4200억원), 중국(1600억원), 일본 (650억원) 등 순으로 매출이 높았습니다.
CJ제일제당은 더 많은 해외시장 개척을 고민 중입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8년 냉동식품 기업 '슈완스'를 인수했습니다. 현지 유통망으로 비비고 만두를 공격적으로 알리는 발판이 됐습니다. 일본에서도 2020년 냉동 만두 기업 '교자계획'을 인수해 더욱 영향력을 넓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유럽의 스칸디나비아와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에도 진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현재 비비고 만두가 진출한 시장은 70개국이 넘습니다.
물론 CJ제일제당의 현지화 전략이 전부 성공했던 것은 아닙니다. CJ제일제당은 1996년 '다시다'로 중국 조미료 시장에 진출했다가 쓴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닭 육수로 국물을 주로 내는데 이를 간과했던 겁니다. 2006년 '닭고기 다시다'를 출시해 뒤늦게나마 빛을 봤습니다.
이처럼 18번에는 '현지화'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국내 식품 기업들의 미래는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여러 기업들이 해외 진출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CJ제일제당이 해외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현재 CJ제일제당은 더 많은 해외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2의 비비고 만두'가 필요합니다. 다음 제품은 무엇일까요?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