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CJ제일제당의 납품가 협상 결렬에서 시작된 쿠팡의 '햇반 보이콧' 사태가 100일을 훌쩍 넘기고 있다. 연초 협상이 마무리되리란 전망과 달리 1분기가 끝나가는 시점까지 발주가 재개되지 않는 상황이다.
당장은 햇반이 다른 주요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서 판매되고 쿠팡에서도 자체 매입 경로 외엔 구입이 가능해 양측 모두 겉으론 크게 급하진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오래 끌면 끌수록 서로 손해란 점에 공감하는 만큼 전격 화해 가능성도 점쳐진다.
팔 곳은 많다
쿠팡이 CJ제일제당의 햇반과 비비고 만두 등 주요 브랜드 상품의 판매를 중단한 건 지난해 12월 초다. 11월 말 'CJ제일제당이 약속한 물량을 맞춰주지 않는다'며 발주를 멈췄고 며칠 만에 재고가 바닥나며 '로켓배송' 햇반이 사라졌다.
반면 CJ제일제당은 쿠팡 측이 과도한 마진율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보복을 했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쿠팡이 요구하는 마진율을 맞춰 주면 아무리 팔아도 남는 게 없는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CJ제일제당은 G마켓과 네이버 쇼핑, 티몬, 위메프 등 다른 온라인 쇼핑 플랫폼으로 물량을 돌리며 쿠팡으로 갈 물량을 소화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4분기 컨퍼런스콜에서 "특정 유통업체(쿠팡)에 대한 의존도가 심각하게 높은 건 아니다"라며 "다른 플랫폼, 채널에서 충분히 상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자사몰의 성장과 B2B, 편의점에서의 성장도 쿠팡에서의 단기적 차질을 상쇄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햇반만 밥인가
쿠팡 역시 자체 판매 중인 경쟁 브랜드 제품들이 많은 만큼 햇반이나 비비고 만두가 없다고 해서 영향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26조원에 달하는 전체 매출에서 CJ제일제당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낮다.
또 쿠팡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특정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쿠팡에 접속하기보다는 해당 상품군 내에서 제품들을 비교한 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햇반이 없다면 다른 플랫폼을 찾기보다는 오뚜기의 오뚜기밥이나 쿠팡 PB인 곰곰, 하림 더미식밥 등을 구매한다는 의미다.
쿠팡의 경우 자체 매입은 중단했지만 제트배송을 통한 익일 배송 판매와 일반 판매자 상품 등으로 햇반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 제트배송은 쿠팡이 아닌 판매자가 직접 판매하는 상품이지만 배송은 로켓배송과 마찬가지로 새벽~익일에 배송된다. 일반 판매자 배송 역시 대부분 2~3일이면 받을 수 있다.
실제 8일 기준 쿠팡의 즉석밥 판매 순위에서 햇반은 7위(48개입), 8위(18개입)에 각각 올라 있었다. 두 상품 모두 오후에 주문하면 다음날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로켓배송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전격 화해' 이뤄질까
양 사는 현재 마진율 협상을 여전히 이어나가고 있다. CJ제일제당으로서는 국내 최대 이커머스 중 하나인 쿠팡을 배제한 채 온라인 영업을 이어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컨콜에서 쿠팡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매출을 다른 곳에서 충분히 상쇄하고 있다고 밝힌 것 역시 '쿠팡이 없어도 된다'는 자신감이 아닌, 쿠팡을 향한 협상 카드라는 해석도 있다.
이 상황을 빨리 해소하고 싶은 건 쿠팡도 마찬가지다. 매출 악화 문제도 있지만 '유통사 갑질' 프레임이 더 불편한 상황이다. 쿠팡에 늘 따라다니던 '입점 브랜드 갑질' 이미지가 고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쿠팡은 이미 LG생활건강, 크린랲 대기업·중견기업 제조사들과 비슷한 문제로 여러 차례 소송을 치렀다. 흑자 기업 만큼이나 상생 기업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쿠팡으로서는 마진율·발주 문제가 자꾸 발생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협상이 상당 부분 진전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LG생건의 경우처럼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