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맥주는 말 오줌 맛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한 외신의 한국 특파원이 북한 맥주와 한국 맥주를 비교하며 했던 말입니다. 워낙 워딩이 자극적이어서인지, 이 말은 한국 맥주를 표현하는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가 됐습니다.
반대 의견도 한 번 들어 볼까요.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고 말한 기자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고 싶다"는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셰프 고든 램지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고든 램지는 오비맥주의 카스 모델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니 진정성을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고든 램지가 "한국음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완벽한 맥주"라고까지 말하는 데는 또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사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한국 맥주, 그 중에도 카스나 테라 등 대기업 라거를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다들 수입맥주, 수제맥주만 마시는 것 같구요. 카스는 기껏해야 '소맥용' 맥주라는 게 호의적인 평가죠.
그런데 맥주 시장을 살펴보면 이같은 반응과는 큰 차이가 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지난해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 1위는 오비맥주의 카스 프레시입니다. 점유율이 무려 41.3%입니다.
카스 프레시의 점유율은 수입맥주의 득세, 수제맥주의 시장 확대 등으로 차츰 줄어들다가 지난해 다시 반등합니다. 투명병과 '콜드브루' 공법을 적용한 리뉴얼 효과도 있고, 색다른 맥주를 찾던 소비자들이 다시 익숙한 카스로 돌아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수치가 놀라운 건 이 점유율이 술집이나 식당 등 유흥시장을 제외한 가정용 시장 점유율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소맥용' 소비가 적은 대형마트·편의점 등이 주 판매처죠. 이 시장에서도 카스는 40%대 점유율을 기록 중입니다. 하이트진로의 테라와 하이트, 롯데칠성의 클라우드 등 다른 국산 맥주 브랜드까지 합하면 점유율은 더 치솟습니다.
실제 A편의점 브랜드의 맥주 매출 비중을 보면 2019년 2.5%에서 2020년 6.2%, 2021년 15.5%로 급성장했던 수제맥주가 지난해엔 16.4%로 0.9%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이보다 먼저 정점을 찍었던 수입맥주는 2018년 60.4%에서 지난해 41.4%로 급락했습니다.
다양한 수입맥주와 수제맥주가 편의점과 대형마트 매대를 채우고 있는 지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카스를 집어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쯤되면 무조건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주장만 강조할 게 아니라, 한국 맥주가 어떤 매력이 있는지 찾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우선, 흔히 이야기하는 '말 오줌 맛'은 사실 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칸 라이트 라거'를 이야기할 때 말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버드와이저, 밀러 등이 대표적인 아메리칸 라이트 라거죠. 딱히 국산 라거 맥주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란 얘기입니다.
카스와 하이트 등도 아메리칸 라이트 라거입니다. 아메리칸 라이트 라거는 19세기 미국에서 독일 이민자들이 양조장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에 흔한 쌀과 옥수수를 맥아와 혼합해 만든 데서 유래된 맥주입니다.
쌀과 옥수수는 보리보다 분해 효율이 높아 잔당감·바디감이 낮은 게 특징입니다. 이 때문에 맥주의 맛이 깔끔하고 부드럽게 넘어가죠. 청량감이 높은 것도 장점입니다. 그만큼 음용성이 넓습니다. 어느 음식과 함께 먹어도 거슬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보리만 사용한 올몰트 맥주보다 풍미가 떨어진다는 약점도 있죠.
이런 특징은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이 많은 한국 음식과 잘 맞았습니다. 푸짐한 안주를 다양하게 차려 놓고 술을 함께 마시는 한국식 음주 스타일도 아메리칸 라이트 라거에 잘 맞습니다. 실제 에일 맥주를 좋아하는 분들도 에일을 찌개나 치킨, 탕, 곱창 등 대표적인 한국식 안주와 즐겨 드시진 않을 겁니다. '페어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가볍다'고 말하는 카스의 맛 역시 이런 한국의 음주 현실에 맞춘 의도적 설계입니다. 잔당감을 낮춰 청량한 맛을 강조하고 탄산감은 높여 입 안의 짜고 기름진 안주 맛을 씻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카스의 맛을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취향은 모두 다르니까요. 누군가는 아메리칸 라이트 라거의 청량한 맛을 즐기고, 다른 누군가는 에일의 묵직한 맛과 풍미를 좋아할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과 다르다 해서 상대방이 즐기는 술을 무시할 필요는 없겠죠. 수제 에일 맥주가 범람하고, 전세계의 인기 맥주가 넘쳐나는 지금도 내 옆의 누군가는 카스를 집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