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와인시장이 해외 브랜드를 수입·판매하는 '단순 유통'에서 해외 양조장인 와이너리를 통한 '직접 생산'으로 확장하고 있다. 유통 마진을 줄이고 제품 포트폴리오를 늘리기 위해서다. 2조원 규모로 커진 와인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너도나도 와이너리 인수
롯데칠성음료는 작년 4분기 IR자료를 통해 국내외 와이너리 인수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그간 해외 와이너리와 협업한 사례는 많았지만 직접 인수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 측은 "구체적인 지역은 알 수 없지만 와이너리 시장을 둘러보면서 매물을 탐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3월부터는 와인전문매장 '오비노미오'를 열고 직접 유통에 나서기도 했다.
유통업계도 와이너리 인수에 나섰다. 한화솔루션은 작년 12월 미국법인을 통해 미국 와이너리 '세븐 스톤즈'를 인수했다. 세븐스톤즈는 서부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 소재 와이너리로 유럽 고급와인 수준의 양조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마트는 작년 2월 지분 100%를 보유한 신세계프라퍼티를 통해 미국 와이너리 '셰이퍼 빈야드'를 인수했다. 셰이퍼 빈야드는 한해 30만~40만병 와인을 생산하는 대형 와이너리다. 이마트는 그간 신세계 L&B를 통해 해외 와인을 수입하고 이마트에 유통해왔다. 일명 '정용진' 와인으로 불린 자체상표 와인 'G7'처럼 해외 와이너리와 협업한 사례는 있지만 직접 생산까지 나선 건 처음이다.
수입 맥주 제친 와인, 직접 생산한다
이처럼 국내 대기업들이 앞다퉈 와이너리 인수에 나선 이유는 와인시장이 성장하고 있어서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와인시장 규모는 2021년 1조5000억원을 넘어서 작년 2조원 규모를 돌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이후 와인을 찾는 젊은 층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와인은 맥주를 제치고 최대 수입 주종에 올랐다.
이는 국내 와인 시장에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이마트에 따르면 미국 내 와이너리 수는 2009년 6357개에서 2022년 1만1546개로 늘었다. 미국 내 와인 소매시장은 2000년 263억 달러에서 2022년 670억 달러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국내 와인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성장 방식'도 바뀌고 있다.
그동안 국내 와인시장은 성장 방식은 '유통'에 머물렀다. 해외브랜드를 수입하고 현지 생산업체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한 제품을 국내 유통하는 방식이었다. 기후 특성상 국내에서 와인을 대량 제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수입 와인은 △2020년 3억3001만 달러 △2021년 5억5980만 달러 △2022년 5억8532만 달러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해외 와이너리 인수를 통한 직접 생산 방식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양조 노하우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글로벌 시장도 공략할 발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와이너리를 직접 인수한다면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반적인 단가조정이 가능하단 점에서 수입물량을 늘리고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며 "양조 관련 노하우를 확보하고 글로벌 유통망까지 확대한다면 해외 와인 시장까지 빠르게 공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 기회를 넓히고 생산 유통의 밸류체인을 완성해 보다 안정적인 공급, 판매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사와 시너지 기대
국내 주류 제조사와 와이너리 간 시너지효과도 기대된다. 롯데칠성음료가 생산하는 와인브랜드 '마주앙'은 제조사만의 강점이 발현된 사례다.
이 회사는 칠레 현지에서 와인 원액만 수입한 후 국내 양조설비를 통해 마주앙을 생산하고 있다. 마주앙은 △카버네소비뇽 △라세느 △메도크 △모젤 △샤도네이를 비롯해 천주교 특수주 미사주 등 6종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주류 제조사들은 양조설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와이너리를 직접 인수하면 기술적인 시너효과가 커질 것"이라며 "다양한 양조기술을 접목해 상품 개발 활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