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그룹이 와인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지난 3월 설립한 와인 수입·유통사 비노에이치를 통해섭니다. 얼마 전 비노에이치는 프랑스 등에서 프리미엄급 와인 100여 종에 대한 수입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와인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운다는 계획입니다. 눈여겨볼 점은 현대백화점의 전략입니다. 가성비 와인이 대세인 상황에서 '프리미엄'을 꺼내든 겁니다.
와인은 코로나19 기간 '혼술·홈술' 트렌드로 대중적인 술이 됐습니다. 최근에는 중저가 와인을 넘어 프리미엄 와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는 게 현대백화점의 설명입니다. '보복 소비', '스몰 럭셔리' 트렌드가 수요 증가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여가 활동에 제한이 생기면서 보상심리가 작용했던 겁니다. 현대백화점은 이 부분을 파고들어 기존 와인 시장에 균열을 내겠다는 구상입니다.
실제로 와인 시장의 성장세는 여전히 높습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내 와인 수입량은 4년 연속 증가세입니다. 지난해 수입된 와인은 5억5981만 달러(약 7219억원)로 전년 대비 68%가량 증가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이 본격화되기 전인 2019년 2억5925만 달러(약 3345억원)와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국내 와인 시장 규모를 2조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장이 커진 만큼 경쟁자도 많습니다. 가장 큰 적은 현재 국내 와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신세계입니다. 그동안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와인 사업에 공을 들여왔습니다. 신세계는 지난 2008년부터 주류유통전문기업 신세계L&B를 세우고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을 발판으로 '가성비'를 앞세워 시장을 선점했습니다. '4900원' 초저가 와인이 대표적입니다.
반면 현대백화점은 신세계에 맞서 '고급화 전략'을 꺼내들었습니다. 와인 시장에서 현대백화점은 후발주자입니다. 특히 와인 수입·유통은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유럽의 유명 와이너리와 거래를 하려면 오랜 신뢰가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미 국내 다른 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 뚫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존 경쟁사와 차별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현대백화점이 프리미엄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현대백화점은 프랑스 부르고뉴, 이탈리아 토스카나 등 유럽 와이너리에서 만든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고급 와인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가격대는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50만원 이상의 고가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가격 거품 없는 가성비 와인' 마케팅을 펼쳤던 신세계와는 정반대 움직임입니다.
현대백화점의 프리미엄 전략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프리미엄 제품 편중으로 오히려 시장 장악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떤 상품이든 판매를 꾸준히 유지하려면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을 갖춰야 합니다. 프리미엄 제품만으로는 이름을 알리기 어렵습니다. 신세계가 초창기 가성비 전략을 취했던 것도 이때문입니다. 저가 상품으로 진입장벽을 낮추고 점차 비싼 제품으로 옮겨가도록 했습니다.
와인 열풍이 계속 이어질지도 미지수입니다. 일시적인 현상일지 아니면 앞으로도 꾸준한 인기를 이어갈지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가장 큰 변수는 엔데믹입니다. 거리 두기 해제로 사람들의 외출이 늘고 있습니다. 와인 열풍을 주도하던 20·30세대가 맥주·소주 등 기존 주류로 다시 돌아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되면 와인 시장의 성장세는 꺾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백화점에게는 큰 악재일 겁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와인 시장은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며 "하지만 이젠 일상 회복으로 기록적 성장세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하늘길이 열리면 수입 와인 판매 채널도 더 늘어나게 된다"면서 "현대백화점 입장에서는 썩 좋은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과거 와인은 과거 기념일이나 중요한 날에만 즐기는 술이었습니다. 영화 등 매체에서 '고급술'로 등장하며 쉽게 접할 수 없는 주류였습니다. 반면 요즘에는 가볍게 와인을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고급 와인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이들을 향한 현대백화점의 도전은 이제 시작됐습니다. 현대백화점의 프리미엄 전략이 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