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서울 신용산역 앞을 지나가 본 적 있으신가요. 역을 나오면 정육면체의 반짝이는 한 건물이 시선을 확 휘어잡죠. 뭔가 창문의 발을 내린 것처럼 건물 외벽이 정체불명의 무언가로 덮여 있습니다. 건물 위와 옆, 뒤 편에는 큰 구멍이 뚫려있고요. 밤이면 흰 빛으로 건물이 빛나기도 합니다. 이곳은 바로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의 사옥입니다. 건물이 우아해 용산의 랜드마크로도 불리는 곳이죠.
전 이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지날 때마다 궁금한 게 참 많았습니다. 사옥 겉면을 가까이서 보면 긴 바늘처럼 생긴 핀들이 건물을 촘촘히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게 뭘까 참 아리송했고요. 건물에 구멍은 왜 만들어놨을까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일반인이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도 알고 싶었죠. 그래서 이번주 생활의발견의 주제는 '아모레퍼시픽 사옥에 담긴 비밀'입니다.
아모레퍼시픽에 직접 궁금한 것들을 문의해봤습니다. 가장 먼저 외벽의 핀들의 정체에 대해 물었는데요. 의외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 핀들은 바로 '햇빛 가리개'였습니다. 전문용어로 루버라고 하는데요. 현재 사옥 겉면에만 2만1511개가 둘러싸고 있고 길이가 4.5~7m로 다양하다고 합니다. 이 루버의 무게를 다 합치면 총 3300톤에 달합니다.
이 핀들은 햇빛이 직접 건물 내부로 유입시키는 것을 줄여준다고 합니다. 반대로 햇빛이 잘 닿지 않는 공간에는 빛을 들게 합니다. 해가 이동하면서 루버에 햇빛이 반사돼 빛 유입이 적은 측면 공간에 빛을 유입시키는 원리입니다. 이 루버는 디자인적 요소도 큽니다. 핀이 건물 외벽에 불규칙하게 배열된 덕분에 단조롭지 않게 느껴지고, 또 밤에 측면에서 보면 실내 조명이 마치 커튼을 친 듯 은은하게 퍼지는 효과를 냅니다.
사옥 세 면에 왜 구멍이 있는지도 알아봤습니다. 이는 내부에 옥상 정원을 만든 영향입니다. 현재 사옥 5층, 11층, 17층에는 세 개의 정원이 있습니다. 정육면체 형태 건축물의 세 면을 뚫어 공간을 비워내 조성했다고 합니다. 한옥의 마당과 같은 공간을 만든 겁니다. 실제로 외부 경치를 안으로 들여오는 차경(借景) 등을 적용했습니다.
사옥은 직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걸까요. 회사는 일반 시민들도 건물에 출입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은 사옥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를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공용 문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1층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이 대표적입니다. 이곳에서는 세계 각국의 전시도록을 열람할 수 있는 전시도록 라이브러리(apLAP) 등 누구나 예술과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설계한 사람이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라는 것도 알고 계신가요. 그는 올해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블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인물입니다. 지금까지 100여 건의 건축 상을 수상하며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는 한국의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설계했다고 합니다.
한국적인 미와 편안함, 지역과의 소통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치퍼필드는 2018년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옥이 단순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서경배 회장의 생각에 적극 공감했다. 사옥 사방의 문은 사람들을 하나의 공간으로 모으는 역할"이라며 "직원 뿐 아니라 지역 사람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까지 아모레퍼시픽 사옥에 대해 알아본 비밀입니다. 평소 그냥 지나쳤던 건물에 이런 비하인드가 많은 줄 몰랐습니다. 저도 주말에 따로 방문해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둘러볼까 합니다. 여러분도 가셔서 오늘 얘기를 떠올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모쪼록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다음에도 재미난 얘기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