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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칠성의 '갈팡질팡' 맥주사업…'헤리티지'와 '리뉴얼' 사이

  • 2025.01.18(토) 13:00

[주간유통]롯데칠성의 맥주 포트폴리오
클라우드 리뉴얼, 디자인 전면 개편
'크러시' 가정 전환·'클라우드 생'은 단종

그래픽=비즈워치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헤리티지

지난해 여름의 일입니다. 이탈리아 로마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로마는 첫 방문이었는데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인 만큼 기대가 매우 컸습니다. 콜로세움의 웅장함, 포로 로마노의 쓸쓸함, 온 도시를 수놓은 조각상과 '모든 길'이 통하는 로마의 포석. 그런 것들을 기대했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모든 것들도 보고 왔지만, 저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로마의 기억은 바로 엘리베이터였습니다. 제가 묵은 호텔은 1박에 약 20만원 정도 하는 5층짜리 호텔이었는데요. 캐리어를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에 문은 무려 수동이었습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나 봤던 그런 물건이었죠. 잊을 수 없는 엘리베이터였습니다.(다행히 멈춤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로마 한복판에서 만난 100년 묵은 엘레베이터. 로마에서 이정도면 신식 엘레베이터에 속한다./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유럽을 방문해 보신 분이라면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수천년 된 도로 옆에 늘어선 수백년 된 건물들. 그 안의 백년 묵은 설비들. 하루가 멀다하고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는 매우 어색한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이런 오래됨이 곧 자부심입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공간을 가꾸고 아껴왔는지에 대한 증명입니다. 이런 자부심과 증명이 브랜드에 적용될 때 우리는 '헤리티지(Heritage)'가 있다고 말합니다. 

헤리티지는 원래 '인류가 쌓아 온 유산'이라는 의미인데요. 어떤 브랜드가 만들어 온 역사와 전통을 표현할 때도 헤리티지라는 단어를 씁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헤리티지입니다. 아무리 잘 팔리고 인기가 있어도 헤리티지가 없는 브랜드는 명품이라 불리지 못합니다. 

또 바꿨다

이번 주 한 제품의 리뉴얼 소식을 들으며 문득 로마의 엘리베이터 생각이 났습니다. 바로 롯데칠성이 대표 맥주 브랜드 클라우드의 패키지와 맛을 전면 리뉴얼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맥주의 쓴맛을 위해 약 7:3의 비율로 사용하던 아로마홉과 비터홉을 풍미와 향을 더해주는 아로마홉 100%로 바꿔 클라우드만의 깊고 풍성한 향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유광이었던 캔 재질은 무광으로 교체하고 라벨 역시 골드-화이트 컬러에서 골드-블루 컬러로 바꿨습니다. 

리뉴얼 자체는 업계에서 늘상 있는 일입니다. 클라우드의 경우 최근 점유율이 하락하면서 재도약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패키지와 맛을 바꾸는 것만큼 소비자들에게 인상을 줄 수 있는 움직임은 많지 않죠. 해 볼 만한 일입니다.

이번에 리뉴얼된 클라우드/사진제공=롯데칠성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리뉴얼 소식을 듣고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클라우드가 처음 출시된 게 2014년 4월이니. 이제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클라우드가 국내 맥주 시장에 남긴 유산은 적지 않습니다. "국산 라거는 소맥용"이라는 인식을 바꾼 것도 진한 맛의 클라우드였고요. 요즘 유행하는 '쫀쫀한 거품' 역시 클라우드가 선도했습니다. 점유율은 카스와 하이트, 테라 등에 밀렸지만 클라우드만을 찾는 마니아들도 꽤 있었습니다. 

틈만 나면 패키지를 바꿔대는 다른 브랜드들과 달리 클라우드는 고급스런 골드&화이트 디자인을 10년이나 이어왔습니다. 실제로 론칭 당시의 클라우드 캔 디자인과 리뉴얼 직전의 디자인을 비교해 보면 다소 변화는 있지만 '헤리티지'를 유지해 왔음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여러 맥주 사이에 섞어 놔도 단번에 클라우드임을 알아볼 수 있죠. 리뉴얼 후에도 그럴까요. 일각에선 골드&블루 조합의 캔 모양이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와 비슷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단종의 벽

클라우드의 리뉴얼이 아쉬운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이번 리뉴얼에서 클라우드는 기존의 화이트 대신 짙은 푸른색(감색)을 이용했는데요. 이는 지난해 단종된 클라우드 생 드래프트와 비슷합니다. 클라우드 생 드래프트는 가정 시장을 공략할 맥주로 출시돼 꾸준히 팔린 스테디셀러였습니다. 롯데칠성의 신제품 맥주 '크러시'가 가정 시장으로 목표를 바꾸면서 단종이 결정됐습니다. 가뜩이나 낮은 점유율에 여러 라인업을 돌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죠. 실제로 롯데칠성은 지난해 여름 저칼로리 맥주인 '클라우드 라이트'도 단종시킵니다.

바꿔 말하면 클라우드 생 드래프트와 클라우드 라이트의 단종, 클라우드 오리지널의 리뉴얼은 모두 크러시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크러시는 당초 유흥 시장 공략을 위해 개발된 맥주였습니다. 하지만 카스·테라·켈리의 경쟁에 밀려 자리조차 잡지 못하고 밀려났죠. 이후 롯데칠성은 가정 시장으로 타깃을 전환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가정 시장을 차지하고 있던 클라우드 생 드래프트의 단종이 결정됩니다. 

롯데칠성 맥주 사업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 원흉. 피츠 수퍼클리어./사진제공=롯데칠성

더 이전으로 시점을 옮기면 롯데칠성의 맥주 포트폴리오를 망가뜨린 원흉인 '피츠 수퍼클리어'가 등장합니다. 클라우드가 출시 4년차로 한참 점유율을 높여가던 2017년 출시돼 5년 만인 2022년 단종됐습니다. 당시 업계에선 롯데칠성이 신제품인 피츠를 키우기 위해 기존 클라우드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요.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피츠는 실패하고, 점유율 20%를 목표로 하던 클라우드까지 점유율이 뒷걸음질쳤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느낀 건 브랜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다는 겁니다. 클라우드가 '소맥용'이 아니라는 지적에 피츠를 만들고, 5년 만에 단종시킵니다. 유흥 시장 공략을 위해 크러시를 출시하고는 반 년 만에 가정용으로 전환하고, 그 여파로 또다른 제품을 단종시킵니다. 10년간 중심을 지켜 왔던 핵심 브랜드도 여지없이 어색한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헤리티지는 어불성설입니다. 

코카콜라 병 디자인 변천사./사진=코카콜라 홈페이지

오래된 엘리베이터는 좁고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 구형 엘리베이터를 타는 로마 시민들은 최신식 엘리베이터를 타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브랜드 역시 그렇습니다. 코카콜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독특한 굴곡의 병은 1915년 처음 만들어져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코카콜라를 상징합니다. 우리도 이제 그런 브랜드를 가질 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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