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롱과 크루아상 등 서양식 베이커리가 중심이던 국내 디저트 시장에도 'K디저트' 열풍이 불고 있다. 인절미와 호두과자, 약과 등 전통 간식들이 다시 소비자들의 눈에 들어오며 새로운 먹거리로 발굴되는 풍경이다. 라면과 만두 등 K푸드가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 먹거리'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K디저트가 뜬다
지난 8일 경기도 수원 스타필드 1층 푸드 편집숍 '바이트 플레이스' 앞엔 긴 줄이 늘어섰다. '이장우 호두과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호두과자 전문점 '부창제과' 3호점이 오픈했기 때문이다.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이 넓은 홀을 가득 채웠다. 이날 부창제과에 방문한 사람은 3000여 명에 달했다.
'이장우 호두과자'의 인기는 우연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10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스위트파크에 1호점을 열었을 땐 대기 시간이 4시간에 달했다. 12월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에 연 2호점은 한 달 만에 100만봉 이상이 팔렸다. 해외 진출도 목전이다. 연내 일본 유명 백화점 입점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말엔 SPC삼립이 꿀떡을 수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해외 SNS에서 우유에 시리얼과 함께 꿀떡을 넣어 먹는 '꿀떡 시리얼'이 유행하자 떡 프랜차이즈 '빚은'을 운영하는 SPC삼립이 재빨리 이 시장에 올라탔다. 시리얼과 함께 먹기 좋도록 한입 크기로 만든 꿀떡을 개발해 미국과 유럽, 동남아, 중동 등으로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약과와 호빵, 인절미, 붕어빵 등도 K디저트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업계에서는 K디저트가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본다. 오징어게임에 등장한 '달고나'가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약과와 붕어빵, 떡 등 한국의 간식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K디저트의 인기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쌀가공식품 수출액은 지난해 2억9920만달러로 2020년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SPC삼립은 미국 코스트코와 일본 돈키호테에 약과를 수출한다. 팔도도 지난해부터 '비락식혜'를 인도네시아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BBQ는 CJ제일제당과 손잡고 필리핀에 비비고 붕어빵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컬리에 따르면 지난해 떡과 한과, 약과 등 전통 간식 관련 상품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30% 증가했다. 떡이 30%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한과와 약과도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백화점들은 명절에 약과·주악·떡 케이크 등 한식 디저트 세트를 선보이고 있다.
베이글·도넛 지겹다
K디저트의 인기는 수 년 동안 이어졌던 도넛·베이글 등 서양식 베이커리 열풍이 그치기 시작하면서 생긴 반사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2017년 노티드가 이끈 도넛 열풍, 2021년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시작한 베이글 열풍이 비슷한 콘셉트의 브랜드를 양산해내면서 1020에게 식상함을 불러일으켰다는 해석이다.
배우 이장우와 함께 부창제과를 만든 이경원 FG 대표는 "베이글과 도넛 등 유럽·미국식 디저트에 식상함을 느낀 한국 소비자들이 K디저트로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젊은 소비자들에겐 약과나 호두과자 등의 디저트가 오히려 더 신선함을 주는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K푸드의 인기가 올라오면서 외국인들이 재발굴한 한국 디저트를 다시 한국인이 즐기는 '역수입' 현상도 나타났다. 우리에겐 너무 익숙해서 손이 가지 않던 디저트가 외국인에게 'K디저트'로 인기를 끄는 모습이 '우리 간식'에 대한 관심으로 돌아왔다는 설명이다.
외국인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K디저트를 재해석해 현지화하면서 그동운 우리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았던 약과와 떡 등이 '힙한 간식'으로 탈바꿈한 효과도 있다. 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꿀떡 시리얼의 경우 우유에 꿀떡을 넣는 음식이다. 한국인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조합이지만 미국에서는 이를 '코리안 버블티'라고 부르며 인기다. 떡의 쫄깃한 식감이 버블티에 넣는 타피오카와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한 조합이다.
다만 지금의 K디저트 열풍이 이어지려면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급 재료를 이용한 프리미엄 제품이나 꿀떡 시리얼처럼 새로운 조합을 통한 메뉴를 개발하는 등 '전통 음식'의 틀을 벗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예전 간식을 재발굴해 소비하는 '할매니얼' 콘셉트에 그친다면 K디저트 열풍이 장기화하기 어렵다"며 "옛 전통만을 고집하기보단 다양한 방식으로 K디저트를 비틀고 진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