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의 첫 실험이 시작됐다. 국민은행의 영업점 체계 전반을 뜯어고치면서다. 당장 이달 중으로 광역점주권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영업망이 시범운영에 들어간다.
윤 회장은 취임 후 줄곧 무너진 직원들의 사기와 영업력, 그리고 실적을 끌어올리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어찌보면 영업에 있어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 뚜껑을 열어봐야겠지만 현재까지 나온 2분기 실적 전망치는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가 많다.
KB의 난제였던 희망퇴직도 정례화했고, KB손해보험(옛 LIG손보)도 성공적으로 출범했다. 사실 그동안 현안 해결에 주력하면서 윤종규 회장 만의 색깔을 드러내기엔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급한 숙제를 상반기 안에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으면서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반기부턴 본격적으로 윤종규식 색깔 내기에 돌입했다.
◇ 영업망 5개 군으로 재편성
그 출발이 영업망 재편성이다. 전국 1047개 영업점을 점주권 환경과 고객기반에 따라 기업형, 기업·자산형, 자산형, 개인형, 일반형 등 5개 군으로 분류한다. 윤 회장은 이달 초 국민은행 조회사에서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애초 조회사 초안엔 한 줄 정도로 짤막하게 언급하는 정도였으나 윤 회장의 뜻에 따라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 추가됐다는 후문이다. 실제 윤 회장은 긴 시간을 할애해 영업망 재정비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과 의미를 강조했다. 그만큼 이에 대한 의지와 기대가 크다는 것이다.
5개의 점포 형태 중 기업형은 공단들이 분포한 지역에서 기업금융을 더욱 강화한 유형이다. 기업·자산형은 주변에 기업들이 밀집해 있으면서 고자산 고객들이 많은 곳의 점포 형태다. 가령 강남 지역처럼 오피스 건물이 밀집해 기업금융의 수요가 높으면서 주변 거주지역엔 자산가들이 많아 자산관리 고객층도 두꺼운 지역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반형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점포 유형으로 기업이나 개인 등 한쪽 특성을 강하게 갖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점포들이 속한다. 이렇게 나뉘어진 영업점은 그 특성에 따라 전문인력을 집중 배치하고 고객 특성에 맞는 영업활동이나 영업방식을 적용하게 된다.
◇ 5~6개 거점 점포를 하나의 클러스터화..협업
윤 회장의 생각은 이들 점포를 분류해 해당 점포를 특화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개인형, 기업형, 자산형 등 강한 특성을 가진 점포 5~6곳을 하나의 클러스터로 묶는 게 핵심이다. 점주권을 광역화하는 것이다. 하나의 클러스터 안에 있는 거점 점포들 간 협업을 통해 각자 전문화된 영역에서 인근 점포의 고객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광역 점주권을 만드는 것이다.
가령 특정 기업이 기업형 점포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대출 이외에도 신규 사업 진출, 해외진출, 운영자금 관리, 퇴직연금, 혹은 직원들과 관련한 부분 등 금융과 관련한 다양한 니즈가 발생한다. 기존엔 전문인력 부족 등으로 이런 니즈를 한 점포에서 모두 충족시키는 게 힘들었다. 이 때 광역 점주권 내 자산형, 혹은 개인형, 기업·자산형 등 다른 거점점포 등과 협업해 해당 기업의 다양한 수요를 한 자리에서 해결해 주는 식이다. 고객 중심의 영업망으로 재편성 된 셈이다.
윤 회장이 조회사에서 "개별점포가 갖기 어려운 기업금융, 자산관리 등의 전문역량을 지역 거점 점포에 집중하고, 지점 간의 상호협업을 통해 고객의 생활권 내에서 편리하고 더욱 전문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 이달 안산, 인천, 판교, 부천 등 4곳 시범운영
이를 위해 국민은행은 이달 전문인력 배치 등 인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파일럿 운영을 시작한다. 안산, 인천, 판교, 부천 등 4곳에 각각 5~6개의 점포를 묶은 광역 점주권이 탄생하는 것이다.
'내 고객'에 대한 개념이 강한 영업 일선에서 다른 점포와 협업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협업이 잘 되려면 결국 상호 노력을 모두 인정해주는 쪽으로 성과보상체계를 맞춰가야 한다"며 "파일럿 운영을 통해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이런 거점 중심의 영업망이 본격 가동하면 성과중심의 문화가 정착되고 영업점의 생산성 논란도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근 국민은행이 5개 영업점에 WM지점장을 신설한 것도 궁극적으론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WM지점장은 기존의 영업지점장과는 별개로 수석팀장급으로 영업점 내 자산관리 업무를 총괄한다. 인근의 다른 점포 고객이라도 협업을 통해 고객 수요에 대응하고 자산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영업 정상화·실적 자신감 기반
윤 회장이 이런 변화를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은 영업이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오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리딩뱅크를 탈환하고 변화하는 고객 니즈에 맞춰 기존 영업방식을 바꿀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에서다. 이것이 윤종규 회장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KB금융은 올해 1분기 6050억 원의 이익을 내면서 5921억 원의 이익을 낸 신한지주를 제치고 분기 1위에 올랐다. 1800억 원대의 법인세 환급이란 일회성 이익이 한몫을 했지만 영업실적도 양호했다. 2분기엔 희망퇴직 비용 3300억 원이 발생하면서 표면적인 이익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KB금융의 올해 2분기 실적에 대한 시장 컨센서스는 2908억 원에 이른다. 희망퇴직 비용을 고려한다면 실질적으로 신한지주를 제쳤을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신한지주의 시장 컨센서스는 5389억 원이다.
KB금융 내부에선 순이자마진 하락과 1분기 특별이익으로 인한 기저효과 등으로 순익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지만 최근 생각 밖의 양호한 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중소기업, 소호대출을 중심으로 한 자산성장과 건전성 관리로 인한 대손비용 감소 등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증권사들은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