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나섰다.
정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 차원의 큰 틀에서 구조조정에 나서겠다는 게 핵심이다. 특히 정부 차원의 협의체를 신설해 큰 그림에 따라 더 효율적이고, 집중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반면 이런저런 변수에 휘둘릴 공산도 커졌다. 정치권을 비롯한 외부의 입김에 따라 구조조정의 방향과 내용이 좌지우지되거나 아예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이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 주도권
금융위원회는 엄정 평가와 자구 노력, 신속 집행 등 3대 원칙을 제시하면서 산업 차원의 고강도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특히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감독원, 국책은행 등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를 맡는다.
산업 자체가 불황에 빠졌거나 경쟁력 회복이 요원한 경우 개별 기업 차원의 구조조정만으론 한계가 분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산업 차원의 큰 틀에서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면 정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정책적 판단을 내려줄 필요도 있다.
정부가 구조조정의 키를 쥔 만큼 앞으로 기업 내지는 산업 차원의 구조조정이 더 속도를 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세계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산업 간 교통정리가 필요한 만큼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자체에 의미를 둘 수도 있다.
◇ 오히려 불확실성 더 커졌다
반면 정부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오히려 구조조정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우선 금융위 스스로 인정한 대로 회색지대가 너무 많다. 금융위는 일시적 애로가 있지만, 자구노력으로 정상화가 가능한 기업은 예외로 꼽았다. 또 기간산업과 대기업은 고용과 협력업체, 지역경제 등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릴 기업과 아닌 기업의 옥석을 가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다만 구조조정 시작 전부터 이런저런 예외를 늘어놓으면서 과연 구조조정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벌써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 협의체가 이런저런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이다. 부처 간, 채권은행 간 이해관계가 일차적인 걸림돌이다. 살아있는 기업에 대해 갑자기 지원을 끊거나 구조조정을 시도하면 해당 기업의 거센 반발을 살 수 있다.
구조조정의 객관성을 둘러싼 논란도 예상된다. 정부가 컨트롤타워를 맡은 만큼 시장 친화적인 구조조정보다는 청와대를 비롯한 정권 수뇌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이나 정치권의 로비나 외압이 구조조정의 방향과 내용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 내년 4월 총선 가장 큰 변수
특히 내년 4월 총선이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고용이나 지역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구조조정에 나서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당장 올 연말부터 선거 국면으로 들어가면 ‘기업 구조조정 촉진법’ 상시화 법안과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연합자산관리(유암코) 확대 개편안 등은 구조조정 법안의 국회 통과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표를 의식한 여당과 재벌 특혜 저지 등의 명분을 내세운 야당의 필요가 맞아떨어지면 하세월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을 비롯해 파장이 큰 구조조정은 내년 총선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벌써 나오고 있다. 문제는 내년 총선 후에도 정치적인 지형에 따라 여전히 구조조정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부에선 내년 총선 출마가 유력시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업 구조조정의 화두만 던지고 뒤로 빠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은 외환위기처럼 급성위기가 아니라 만성위기 상태여서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선 갈 길이 멀어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