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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박근혜와 은행원 "나 지금 떨고 있니"

  • 2015.10.20(화) 15:39

40년 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은행원 연봉삭감 또 회자

"전세살이 설움이 컸다고 합니다. 그 집 주인이 은행원이었다네요. 나중에 대통령이 돼서 은행원 봉급을 확 깎았다고 하더라고요."

과거의 얘기인지, 지금의 얘기인지 조금 헷갈리기도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은행원의 악연에 대한 얘기인데요. 또 다른 버전도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집 건너편에 은행 대리가 살았는데, 씀씀이가 너무 커 그때부터 은행원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생겼다는 겁니다. 박 전 대통령이 전세살이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집 건너편에 은행원이 살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그런 감정적인 이유가 은행원 임금 삭감의 이유로 꼽혔고, 실제 삭감되기도 했습니다. 더 의아한 것은 이 얘기가 또다시 은행원들 사이에서 회자하고 있다는 겁니다. 최근 만난 은행 한 임원이 들려줬습니다. 지금은 은행을 나가신 선배한테 들었다더군요. 다 같이 한참을 웃었는데요. 뒷맛은 개운치 않았습니다.

딱 40년 전의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다시금 벌어지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하고 있으니 말이죠.

한번 찾아봤습니다. 당시에 정말 은행원 연봉이 일시에 깎였는지를요. 1975년 4월이네요. 당시 동아일보(1975년 4월 21일)에 '은행원 월급 30~40% 줄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재무부가 서정쇄신작업의 하나로 각 금융기관 직원의 시간외수당을 전액 삭감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입니다. 수당이 삭감되면서 은행원 월급이 기존보다 30~40%나 줄게 됐다는 겁니다.

 

▲ 동아일보 1975년 4월 21일 자 신문(네이버 라이브러리)


그해 11월 매일경제(1975년 11월 4일)는 '현실조정이란 결국 인하를 의미'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간외근무수당을 깎아놓고 이제 다시 경조비 지급조차 금지한다는 것은 너무하다는 것이 은행원들의 주장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금융기관의 경비절감에 관한 재무부지침이 시달됐다는 내용도 눈에 띕니다.

논란이 되긴 한 모양입니다. 동아일보(1975년 11월 11일)는 한 국회의원의 발언을 인용해 재무부가 은행 서정쇄신을 이유로 봉급에 관한 지침을 시달한 것은 근로기준법에 의한 단체협약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는 내용을 실었습니다.

이런 조치는 1983년에야 풀렸습니다. 동아일보(1983년 10월 27일)의 '은행원 봉급 자율화 방침' 기사를 보면 '정부는 은행원 봉급을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 동아일보, 1983년 10월 27일 자 신문(네이버 라이브러리)


한자 일색에다 세로쓰기 신문이 이제는 참 생소하죠. 그런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재무부가 내세운 서정쇄신(庶政刷新)인데요. 어려운 말인데, 간단히 얘기하면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없애자는 내용이더군요. 내용은 다르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세우는 금융개혁과 왠지 모르게 오버랩됩니다.

 

40년 전 서정쇄신과 은행원 연봉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는데요. 최 부총리가 페루에서 '10년차 은행원 1억 연봉' 발언도 금융개혁을 강조하면서 나온 얘기인데 역시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힘듭니다. 이것이 금융개혁의 핵심이 될 사안인지도 말이죠. 다만 최 부총리의 말마따나 은행원 연봉이 깎이거나 은행 영업시간이 늘어나는 게 금융개혁이라면 가뜩이나 체감 안 된다고 난리인데 체감은 확실히 되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지난 15일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등 고용 관련 학회가 '임금피크제 도입 일반모델 안'을 발표하면서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은행원의 연봉을 50%를 깎아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최 부총리를 비롯한 정부와 관련 단체에서 은행원의 연봉 삭감을 얘기하기 시작했다는 건데요.

은행원들의 연봉이 논란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연봉보다는 호봉제라는 임금체계의 문제일 텐데요. 하지만 그것과 정부와 관련단체가 마치 입을 맞춘(?) 듯 구체적인 수치를 가이드라인인양 제시하는 문제는 달라 보입니다. 2015년에 자꾸만 40년 전의 일을 떠올리는 게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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