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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 김태희·이승기·류현진도 못 살린 프로그램

  • 2015.10.30(금) 16:59

청년희망펀드 연예인·유명인 동참 줄 잇지만…
일반 기부 사실상 '전무'…정부, 흥행 참패 골머리

20%에 육박하는 평균 시청률을 기록해 올해 '대박 흥행작'으로 꼽히는 드라마 '용팔이'. 김태희는 극 초반 혼수상태라며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도 10% 이상의 시청률을 견인하는 기염을 토했죠. 그러다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눈을 뜨자 시청률은 18%까지 올라가며 '흥행 배우'의 진가를 보여줬습니다.

흥행에서 가수 이승기도 뒤처지지 않죠. 누적 조회 수 5000만 건을 넘긴 신서유기에 강호동 등과 함께 출연해 '흥행 보증수표'의 면모를 재확인했습니다. 류현진 역시 야구 중계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시청률이 껑충 뛰어오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 스타·총수 줄줄이 참여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청년희망펀드'에 동참했다는 점입니다. 청년희망펀드는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것으로 공식 명칭은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입니다. 기부금 형태로 은행에 돈을 맡기면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쓰겠다는 취지입니다.

동참한 스타들은 더 있습니다. 손연재, 박인비, 박세리, 주현미, 김수미, 손창민, 송해 등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의 '기부' 소식이 최근까지도 줄을 잇고 있는데요. 흥행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면면입니다.

 

▲ 가수 이승기가 지난 12일 국민은행 압구정중앙지점에서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KB국민은행)


여기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도 동참했고, 추기경과 스님 등 종교계 수장들도 청년희망펀드의 취지에 공감하며 기부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이런 화려한 동참 행렬에도 불구하고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일반인들의 동참은 사실상 없다는 점인데요. 동참은 고사하더라도 관심 끌기조차 못하고 있어 이를 추진하고 있는 청와대와 국무조정실,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부처가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 은행과 '돈독한' 광고 모델 스타만 동참

사실 이런 흥행 참패는 예견된 일입니다. 청년희망펀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은 뒤로하고, 다루기 쉬운 은행을 압박해 홍보에 나서도록 한 '구시대적' 방식 때문입니다. 홍보 방식도 정부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한다고 하기에는 조금 구차합니다. 스타들의 면면을 다시 보죠. 금세 알아차릴 수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은행과 '관계'가 있는 스타라는 점입니다.

손연재와 박인비 선수는 KB금융의 후원을 받고, 이승기는 KB 광고 모델입니다. 류현진 선수는 농협은행 모델이고, 박세리 선수는 하나금융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송해 아저씨도 기업은행 광고에 나옵니다.


합병 국민은행의 광고 모델이었고, 하나금융 광고에도 출연해 어느 은행을 선택할지 궁금했던 배우 김태희의 경우 부친 김유문 한국통운 회장을 따라 기업은행을 통해 가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홍보 행사의 일환인지, 자발적인 기부인지 헷갈리는 이유입니다.

은행 광고 모델인데 아직 동참하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국민 영웅이자 기부 천사로도 알려진 김연아(KB금융) 선수, 최고의 한류 스타 김수현(하나금융), 흥행 영화배우 하지원(하나금융) 등입니다. 앞으로 연예인 가입 소식에 이들의 이름이 오르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스타의 마음을 따라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합니다.

대기업들의 참여도 개운치 않습니다. 애초에 정부는 대기업의 기부는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삼성에 2000억 원 내라고 하고 기업에 돈을 내라고 하면 금방 1조 원을 모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기업이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제한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대기업이 기부를 시작한 겁니다.

 

기부 과정에서 조금 구차해 보이는 모습이 벌어졌습니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총수들이 돈을 은행별로 나눠 기부한 겁니다. 한 은행에만 몰아주면 다른 은행에 미안하기 때문이겠죠. 은행들의 실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벌어진 촌극으로 보입니다.

◇ 대기업 총수 다음엔 누구?

흥행 실패를 예감한 정부는 지난 15일 은행 홍보 담당 실무자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일반인의 참여를 끌어낼 아이디어를 모아보자는 취지입니다. 정부는 일반인이 펀드에 가입하면 스타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이벤트를 개최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김연아 선수와 점심을 먹거나, 박인비 선수에게 골프 레슨을 받는 등의 혜택을 주자는 거죠. 또 스타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기부 인증샷'을 올리도록 유도해보자는 얘기도 했습니다.
 
은행들은 뜨악했습니다. 일단 이런 광고 모델을 행사에 동원하는 데에는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모델 계약에 행사 참석 횟수가 포함돼 있는데, 청년희망펀드 행사에 참석하면 횟수가 하나 줄어듭니다. 또 이런 식으로 연예인을 동원하면 '자발적 참여와 나눔'이라는 취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정부도 이래저래 답이 안 나오는 겁니다.

물론 청년희망펀드의 취지 자체가 잘못됐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 방법이 너무 '촌스럽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김태희와 이승기, 류현진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기부도 하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해 대중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퍼네이션(fun·재미 + donation·기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부도 재미있고 공감이 가야 참여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광고 모델들을 '동원'해 홍보 행사 같은 기념사진을 찍고(아버지를 따라 IBK기업은행을 선택한 배우 김태희는 그 흔한 가입 홍보 사진도 없습니다만^^), 대기업 총수가 업계 순위에 맞춰 돈을 기부한 뒤 딱딱한 어투로 보도자료를 내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겁니다. 흥행 보증 수표를 전부 동원했는데, 참 재미없고 지루한 프로그램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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