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행장이 이처럼 동분서주하듯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우리은행 민영화를 위해서다. 주가를 끌어올려 민영화의 명분을 만들고, 정부의 동력도 확보하려는 셈법에서다.
사실 우리은행 민영화의 주체는 지분 절반을 가진 정부다. 가치를 극대화해서 팔아야 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는 소관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복지부동이다. 처음엔 주가 핑계를 대더니, 이제는 매수자 핑계를 댄다.
물론 제반 여건이 우호적이지 않고 (정부 마음에 드는) 살 사람이 없다는 측면에서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동분서주해야 할 주체는 분명히 바뀌었다. 이것이 정부의 의지를 방증하기에 이광구 행장이 더 안달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올 연말 임기, 직접 뛰는 이광구 행장
이 행장이 이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또 다른 이유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다. 올 연말이면 임기가 끝난다. 느긋하게 앉아서 주가가 오르기를 기다릴 수 없는 처지다. 특히 민영화는 이 행장이 취임하면서 약속한 일이기도 하고, 어느 CEO에게나 숙원사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가가 1만원 밑으로 떨어지면서 정부의 민영화에 대한 관심은 멀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력도 떨어졌다. 민영화를 위한 제반 여건들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올해부터는 이 행장이 직접 뛰기 시작했다. ☞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꽃보다 주가
지난 2월 유럽 IR 이후 주가도 1만원 대로 올라섰고, 외국인투자자 비중은 20%대에서 25%대 가까이 올라갔다. 하지만 갈수록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최근 속도를 내는 조선·해운 등의 기업 구조조정도 은행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 행장이 지난주 초 3일간 한기평, 한신정, 한신평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를 돌며 직접 설명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최근 신평사에서 낸 기업 구조조정과 은행 익스포져에 대한 보고서들이 자칫 대내외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전달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우리은행의 조선·해운업 익스포져와 충당금 등에 대해 설명하며 추가적인 충당금 부담이 크지 않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은행장이 신용평가사 실무자를 직접 방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절박함이 크다는 얘기다. 특히 같은 주 일요일(지난 15일) 미국 IR을 앞둔 시점이어서 더욱 그렇다.
◇ 애써 모른 체하는 임종룡 위원장, 구조조정 현안 급급
이 행장의 이런 이례적인 행보와 적극적인 움직임이 민영화에 대한 시장의 관심을 어느 정도 끌어올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 내 분위기는 다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여전히 복지부동이다. 우리은행 민영화는 사실상 현안에서 완전히 밀려난 상태다.
정부의 관심은 온통 기업 구조조정에 쏠려 있다. 특히 정부가 지난 4월 총선 참패 이후 기업 구조조정으로 이슈를 전환하면서 금융위도 올해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내년엔 사실상 대선 정국으로 들어서고 올해를 마지막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은행 민영화를 추진할 여력은 없어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정부에서 우리은행 민영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없다곤 할 수 없겠지만 실질적으로 큰 덩어리로 살 수 있는 매수자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요원해 보인다.
주가가 1만원대로 올라서긴 했지만 여전히 정부에서 생각하는 비공식적인 매각 하한선인 1만 3000원(공적자금 회수 가능 금액)과의 격차는 크다. 지난해 중동 국부펀드와의 협상이 틀어진 이후엔 잠재 매수자를 포함해 뾰족한 매수자도 보이질 않는다. 임종룡 위원장은 이광구 행장의 바쁜 움직임을 애써 모른체 하는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