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융이 제3기로 돌입했다고 본다. 변화의 속도는 빨라졌고 시장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도 늘어나며 경쟁이 거세지고 있다. 그간 느낀 점은 '편리함의 중요성'이다.
최근 만난 은행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현재까지 금융권을 둘러싼 디지털 환경 변화를 두고 ▲ 제1기 2015년 핀테크의 대두 ▲제2기 2017년 인터넷 전문은행의 출범 ▲제3기 2020년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 산업 출범 등으로 나눠 진단했다.
이 기간 동안 금융회사들이 느낀 핵심은 금융 소비자의 일관된 태도였다. 옛 금융소비자들은 관성에 의해 주 거래 금융회사만 이용한 반면 최근 몇 년 사이 금융 소비자들은 편리하고 쉬운 금융 서비스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관성을 저버리고 새로움을 찾아 나선다. 금융소비자에게 최우선 순위가 '편리함'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 1000만, 1200만, 4000만
금융당국은 지난 2015년을 기점으로 '핀테크'를 화두로 제시하고 핀테크 기업 육성에 나섰다. 그러면서 은행을 비롯한 제도권 금융회사에서만 받을 수 있던 금융서비스의 장벽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장벽이 무너지는데 결정타를 날린 것은 바로 '편리함' 이라는 키워드다.
2015년 출시 된 간편송금 애플리케이션 '토스'가 대표적이다. 토스는 송금 과정을 그간 인터넷뱅킹 가입,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입력 등과 같은 복잡한 절차를 비밀번호 입력으로 간소화한 서비스를 내놨다. 이 서비스는 '편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사용자를 끌어모았고 2018년 가입자수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토스는 이제 간편결제 등으로 운신의 폭을 넓힌데 이어 은행업 진출도 꾀하고 있다.현재 토스를 중심으로 하는 토스 컨소시엄(토스, 하나은행, SC제일은행, 한화투자증권, 중소기업중앙회, 이랜드월드, 웰컴저축은행, 한국전자금융, 벤처캐피탈사 등)은 금융위원회의 인터넷 전문은행 예비인가를 획득했으며 본인가 획득을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2017년 문을 연 인터넷 전문은행의 흥행 역시 '편리함'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해 5월에 출범한 대표적인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는 편리함으로 무장한 모바일 뱅킹 앱을 공략으로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고 출시 1년 만에 633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최근 모바일뱅킹 앱을 전면 개편한 카카오뱅크는 지난달 말 1200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면서 국내 인구 중 4분의 1이 사용하는 대중적인 은행으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단순 고객 수 뿐만 아니라 재무적인 성과도 냈다. 지난해 흑자 전환(순익 137억원)에 성공했는데, 출범 당시 예상했던 목표 시점(5년)을 3년이나 앞당긴 것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올해 하반기 IPO(주식공개상장)에도 나설 예정이다.
올해 금융당국이 적극 추진해 밀어붙인 '오픈뱅킹(하나의 모바일 뱅킹 앱이나 핀테크 앱에서 전 은행 계좌 조회 및 출금‧이체가 가능한 서비스)'이 출시 6개월 만에 4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점도 금융소비자가 얼마나 '편리함'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오픈뱅킹' 서비스는 지난해 12월 정식 서비스를 출시한 이후 4000만 명이 넘게 가입했다. 중복 가입자를 제외하더라도 2032만 명에 달해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72%나 된다.
◇ '깜놀'한 은행들, "더 편하게 혜택도 듬뿍"
핀테크 기업들이 새롭게 금융시장에 진입할 당시만 해도 은행은 안일함에 젖어있었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목소리다.
은행 관계자는 "2015년 금융당국이 핀테크 데모데이 등을 적극적으로 열며 디지털금융 시대로의 변화를 촉구했고 이에 많은 핀테크 기업들이 시장에 등장했지만 은행은 큰 위기감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은행의 경우 충성고객 혹은 주거래고객을 폭넓게 보유하고 있고, 핀테크 기업들이 등장해도 고객 이탈이 본격화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대형 핀테크 기업들의 가파른 성장세와 인터넷 전문은행의 흥행에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기류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은행들도 금융소비자와의 최대 접점이 된 모바일 뱅킹 앱 개편에 나섰다. 신한은행 '쏠', KB국민은행 '리브', 하나은행 '하나원큐', 우리은행 '우리WON뱅킹', 농협은행 '올원뱅크'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은행 모바일 앱 개편 당시 사용자 경험을 중점으로 UI를 전면 개편하는 등 편리함을 중점에 두고 개편했다"며 "새로이 금융시장에 진입하는 플레이어 들이 더욱 편리하게 내놓는 만큼 은행 고객들 역시 더욱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누릴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로는 부족했다. 은행들은 이벤트, 특판 등에 나서며 적극적인 마케팅도 병행했다. 일례로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의 2015년 광고선전비는 2853억9600만원에서 꾸준히 상승하며 지난해에는 3864억8000만원으로 1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KB국민은행은 광고선전비를 공시하고 있지 않으나 일반관리비가 꾸준히 늘어난 만큼 광고선전비 역시 상승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는 "최근 금융소비자는 편리함 뿐만 아니라 혜택도 적극 찾아나서고 있다. '금융노마드'라는 말이 생길정도"라며 "이에 금융·비금융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특판, 이벤트 등을 적극 유치해 고객 이탈 방지 및 신규고객 창출에 나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 편리함의 그림자
금융서비스가 갈수록 편해지고 있지만 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따른다. 바로 보안 문제다. 금융서비스가 편하고 쉽게 바뀔수록 정보유출, 정보도용 등 보안문제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안수현 은행법학회 회장은 "디지털금융 환경에서 보안은 금융소비자가 가장 우려하는 리스크 중 하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장 지난달 초 토스는 무단도용으로 인한 부정결제가 발생했다. 토스를 통해 정보가 유출된 것이 아닌 제3자가 타인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발생한 사건이었으나, 금융서비스가 편리해 질수록 보안 문제에서는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에 토스 측은 도용된 정보로도 결제가 불가능 하도록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FDS)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토스 관계자는 "회사는 업계 최고 수준의 보안 투자를 유지하고 있으며, 높은 수준의 글로벌 보안 인증을 자발적으로 획득하고 있다"며 "이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고객 정보 보호에 앞장서고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단 토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은행업계 역시 두텁게 쌓아올린 보호의 장벽을 뚫기 위한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은행이 국내 금융권 최초 국제표준 개인정보보호 인증인 'ISO27701'을 획득하는 등 은행권의 정보보호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고객의 자산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종종 외국 해킹 집단의 표적이 되고는 한다"며 "결코 뚫을 수는 없도록 보안을 강화하고 있지만, 이들의 수법도 날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보안을 강화하고 있고 정보도용 등으로 인한 피해 예방을 위해 FDS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보안 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역시 최근 있었던 '정보보호의 날 기조연설을 통해 보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은 위원장은 "불법 취득한 개인정보를 도용한 부정결제 사고, 대포폰과 악성앱 등을 통한 보이스피싱 등 혁신과 편리성의 이면에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국민의 재산과 개인정보가 안전하게 지켜지지 않는다면 디지털 금융혁신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